너무 끔찍하지만 이야기하겠습니다.
나에게 공황이란, 내가 마치 한밤중에 벌어진 존속 살인사건의 가해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을, 그 이미지를 누군가가 내게 계속 주입하는 것 같은 두려움을 말한다.
그것은 어느 순간, 내 마음속 아주 작은 곳에서 똬리를 틀고, 서서히 내 마음의 다른 영역을 갉아먹어갔다. 너무도 끔찍하고 패륜적이고 무시무시한 생각이기에 나는 속된 말로 심하게 쫄았다. 심할 때는 누워 있는 부모님 모습도, 요리기구가 보관되어있는 싱크대 밑 서랍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할 정도로 괴로웠다. 딱히 부모님을 미워하는 것도 아니고, 평소의 나도 지극히 폭력적이거나 잔인한 장면은 꺼리는 편인데 어째서 그런 이미지가 보여버리는 걸까? 나는 수많은 가설을 세워보았다. 혹시 평행세계의 나는 극악무도한 범죄자여서 그 악당의 기억을 내 기억인 것처럼 느끼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내가 건담의 '뉴타입' 마냥 특수한 감각이 발달해서 이 세계 안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슬픈 사건들 중 한 사건의 이미지를 나도 모르게 수신해버린 것일까?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내가 처음부터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불확실하고 흐릿한 '아픔'에 내가 멋대로 그런 이미지를 씌워 '인지적 오류'를 스스로 발생시킨 것은 아닐까?
그렇게 내가 내면의 공황에게 휘둘리고 있다 보니 당연히 내가 하고 싶은 일도, 내가 해야 하는 일도 못하게 되어버렸다. 이상과 현실은 사실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고, 그 두 개념과 대립하는 진정한 적은 공황이었던가. 나의 이상이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당연히 작가이다. 내 이름으로 된 책을 써서 소소하게 북 토크를 여는 것이 내 이상적인 꿈이다. 나의 현실이며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당연히 일자리이다. 나는 품 속에 행정안전부 홈페이지에서 뽑은 지역주도형 청년 일자리 사업 계획 리스트를 지니고 다닌다. 그중 어느 하나라도 붙어서, 제대로 월급을 받아서, 내 방을 리모델링하는 것이 내 현실적인 꿈이다. 그것을 위해 뛰어도 모자랄 판에, 공황은 나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내 내면과의 싸움에만 정신이 팔려서, 정작 나의 모든 것들을 잊고 있었다니.
뛰어야 할 시기에 뛰지 못하고 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