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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원철 Apr 05. 2019

미리 쓰는 어버이날 편지

부모님  공황 전상서

부모님, 어버이날은 아직 한 달 이상 남았지만,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아 오늘 이 편지를 씁니다. 

오늘 이 시간, 제가 편지를 쓰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지난 수개월 동안 제 마음에 벌어진 일들을 소상하게 밝히기 위함입니다. 제 마음에 벌어진 재난. 그것은 공황입니다.


공황은 지난해 10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습니다. 평소처럼 모임에 나가는 부모님을 배웅하던 어느 날 저녁이었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부모님을 보는 순간, 식칼을 든 누군가가 부모님을 해치는 듯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누군가는 저 같았습니다. 매우 당황하고 공포를 느낀 저는 황급히 제 방으로 들어와 숨었습니다. 그 날부터 악몽이 시작되었죠. 나가는 부모님을 보는 것이 너무 이상하게 두려웠습니다. 부모님을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습니다. 싱크대 문 뒤에 비치된 식칼들은 모두 흉기로 보였습니다. 요리의 목적이라고는 해도 식칼을 손에 쥐는 것이 죄악처럼 느껴졌습니다. 대략 10일 정도의 시간이 지나 공황은 잠잠해졌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공황은 불안을 남겼습니다. 언제고 찾아올지 모르게 만들었습니다. 조금씩 불안이 저를 잠식해갔습니다. 누워 있는 어머님 모습을 보기 어려웠습니다. 해를 입히고 입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어머님이 요리를 위해 꺼내 둔 식칼을 본 순간, 극심한 공포가 다시 저를 덮쳤습니다. 이번에는 저번처럼 잘 넘어가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설 연휴 시작 때, 부모님께 어렵게 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때 부모님이 제게 불안해하지 말라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마음이 허해서 그런 거라고 격려해주시던 말씀은 아직 제 기억에 생생합니다. 부모님의 말씀을 버팀목 삼아, 저는 두 번째 공황을 버텨나갔습니다. 


공황은 항상 불안을 남깁니다. 남겨진 아주 작은 불안이 제게 세 번째 공황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번에는 한밤중에 부모님을 해치는 이미지가 잠을 자려고 하면 떠올라 괴로웠습니다. 무심코 부모님 앞에 '죽여버리고 싶은'이라는 접두어를 붙이고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죠. 첫 번째와 두 번째 공황에 비하면 강도는 약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 블로그에 제 상황을 자세하게 글로 적어낼 생각을 했습니다. 공개된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떳떳하게 밝히고, 저의 내면을 직시하기 위한 방법이었죠. 다행히 첫 번째와 두 번째 공황보다는 예우가 좋았습니다. 제가 블로그에 쓴 글을 다시 읽어보니 내가 보았던 이미지가 정말 이것이 맞는가 하는 의문이 생겼고, 그 의문이 생긴 시점에서 불안이 많이 사라져 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것이 지난 수개월 동안 앓은 저의 공황입니다. 저는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아무리 공황 상태라고 해도 부모님을 해치는 이미지를 떠올리다니. 이유야 어찌 되었건 이것은 자식 된 입장에서 크나큰 죄입니다.


이 편지를 빌어 부모님께 죄송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못난 아들 심원철

......

이 글은 어제 내가 부모님께 쓴 편지이다. 원래는 자필로 쓴 것을 그대로 드릴 생각이었는데, 내가 자필로 글씨를 잘 못 쓰는 것은 내 오랜 특징 중 하나라 가독성을 위해 컴퓨터로 옮겼다. 그 과정에서 자필 버전이 초고, 컴퓨터 버전이 제 2고가 되었다. 이 편지를 쓰는 과정에서 내가 어떤 상황을 겪어왔고, 그 상황을 어떻게 이겨냈는지에 대해 명확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지금의 불안을 이겨내는 데 또 하나의 큰 걸음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부모님을 지금보다 더욱 신뢰하게 되었고, 부모님의 지지도 얻었다. 파멸적인 떠올림도 줄었고, 부정 접두사를 긍정 접두사로 바꾸는 것도 가능해졌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상담을 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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