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오나 공주, 대여, 월드컵
세 번째로 회상할 게임은 창세기 외전 2 - 템페스트입니다. 창세기전 시리즈 전체를 회상하는 대신, 지난 글에서 다룬 창세기전 3 - 파트 2와 본 작품에 대한 이야기만 하기로 한 것은 제 글의 목적이 단순한 게임 리뷰가 아니라 게임을 통해 옛 기억을 다시 떠올린다는 의미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게임 '리뷰'가 아니라 게임 '회상'인 것도 그 이유입니다. 저는 오랜 시간 동안 많은 게임을 해온 베테랑 게이머도 아니고, 전문 리뷰어는 더더욱 아닙니다. 그러기에 게임 선정 기준과 그 평가, 그 외의 이야기 모두 극도로 주관적인 내용이 들어갑니다.
잡소리가 길었군요. 세 번째 회상 시작합니다. 이번 회상은 부제로 써놓은 세 개의 키워드인 피오나 공주, 대여, 월드컵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해 보겠습니다.
가장 먼저 표지 이미지로 사용하고 있는 CD의 사진에 이야기부터 시작하지요. 템페스트는 총 4장의 CD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표지 이미지로 채택한 CD는 2번 CD입니다. 무언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셨나요?
그렇습니다.
캐릭터의 피부 색깔이 녹색입니다.
다른 CD의 컬러 캐릭터들과 달리 제가 가지고 있는 2번 CD의 컬러 자리를 차지한 캐릭터 "앤 밀레니엄"(캐릭터의 이름입니다.)의 피부색만 녹색으로 출력되어있습니다. 이 녹색 앤 CD가 제게만 나타난 인쇄 실수(불량품이라기엔 CD 자체의 동작은 정상입니다. 지난 글에서 이야기한 'Wrong Readsize in Cfread' 같은 에러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인지 보편적인 현상이었는지는 잘 알 수 없습니다만, 나름 희귀본을 가졌다는 느낌이 있어서 그냥 소장 중입니다. 구입 당시에는 이 CD를 녹색 인종 CD라고 불렀습니다만, 지금은 유명한 애니메이션 영화 「슈렉」에서 따서 '피오나 공주 CD'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템페스트는 제가 다른 사람에게 빌려준 최초의 게임입니다. 중2였던 당시, 조별 과제하면서 조원들을 다 같이 집에 불러놓고 과제를 하던 때가 있었는데 아마 그때 친구 눈에 들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여튼 이후 친구에게 게임을 빌려주었습니다. 한 1주일 정도요. 처음에는 친구가 게임한 이야기를 해주기도 해서 꽤 유쾌했습니다. 그런데 약속한 날이 지나도 친구가 게임을 안 돌려줘서 말이죠. 저는 마냥 기다리다가 안 되겠다 싶어서 친구에게 CD 돌려달라고 달라붙었습니다. 결국 템페스트를 돌려받았습니다.
제가 무언가를 빌리고 돌려받는 행위에 민감한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 문구점에서 준비물을 외상으로 사고 돈을 안 줘서 부모님께 혼난 기억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이 강하게 각인되어서 후에는 가급적이면 '남에게 무언가를 빌리는 행위'는 잘 하지 않습니다. 빌리더라도 일찍 갚을 수 있는 쪽으로 하려 하죠. 알바 인생에 돈이 궁하긴 하지만 대출 같은 것도 잘 안 합니다.
제가 이 게임을 접하고 플레이한 시기는 2002년. 그렇습니다. 월드컵의 '그' 해였죠. 그 월드컵의 영향을 제 게임도 받았습니다. 이 게임은 여성 캐릭터들을 훈련을 통해 육성하고 그 안에서 한 명과 호감도를 쌓아서 엔딩에 영향을 주는, 이른바 육성 미연시 RPG입니다. 캐릭터는 모두 사용하게 되기 때문에 모든 캐릭터의 레벨을 적당히 올려줄 필요가 있죠. 레벨은 전투에서 올릴 수도 있고 훈련시켜서 올릴 수도 있습니다. 거기서 월드컵의 영향력이 게임에 들어가게 됩니다.
거스 히딩크 당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도입하여 화제가 되었고, 지금도 여러 스포츠 팀에서도 자주 하는 훈련 중 하나인 20미터 왕복 달리기, 속칭 '공포의 삑삑이'를 세상에 널리 알린 '히딩크식 파워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국가대표 축구팀의 체력을 키우기 위한, 당시로서는 아주 획기적인 프로그램이었죠. 이 '히딩크식 파워 프로그램'이라는 단어를 듣고, 게임 내에서 적용(?)시켰습니다. 에디트를 해서 체력을 올리는 아이템을 멤버 전원에게 풀로 착용시킨 다음, 그대로 기본훈련만 돌려주면 캐릭터들의 체력은 10만은 우습게 찍어줍니다. 게임은 치트키를 난사해서 깬 주제에 왜 이렇게까지 했냐면 말입니다.
무지막지한 수치로 올라가는 캐릭터들의 체력을 보는 것이 그냥 좋았습니다.
실제 월드컵 기간이 되었을 때는 게임 내부 BGM까지 건드려서(파일만 바꿔치기하면 의외로 간단했습니다.) YB의 '오~필승 코리아'를 들으면서 게임했습니다. 제게 이 게임은 월드컵을 즐긴 또 다른 추억의 하나입니다.
창세기 외전 2 - 템페스트는 게임 자체를 재밌게 즐긴 기억보다는 그 게임과 저를 두고 얽힌 에피소드 자체가 즐거운 추억이었던 경우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플레이한 게임 중에 게임과 현실이 얽혀 이런 에피소드를 만들어낸 게임은 아마 템페스트 하나뿐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이 게임은 제게 명작이 아니지만 소중한 작품입니다.
다음에 회상할 게임은 유명한 무협소설을 게임화한 대만 게임입니다. 2편을 하나의 글로 소개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