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 서울은 크게 기뻐할 수 없었다
11월 6일부로 2016년 K리그는 모든 정규 리그 일정을 종료하였습니다.(아직 성남 FC와 강원 FC의 승강 플레이오프 2경기가 남아있기 때문에 K리그 자체가 끝난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전북 현대와 알 아인의 AFC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과 '슈퍼매치'로 치러지는 FA컵 결승이 있습니다.) 줄곧 2위를 달리던 FC 서울은 마지막 경기에서 전북 현대를 1:0으로 물리치고 K리그 클래식 역전 우승에 성공하였습니다. 하지만, 승장인 황선홍 FC 서울 감독은 코칭스태프에게 자중하라는 지시를 하면서 "내년에는 완벽하게 우승하고 싶다"는 소감만 짧게 밝혔다고 합니다. 승자들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전북 현대의 스카우트가 2013 시즌에 심판에게 돈을 건넨 정황이 발각되었고, 그것 때문에 징계를 받아 승점 9점이 감점되면서 어부지리로 따낸 우승 트로피라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심판 매수, 그리고 그 시도 행위는 그 어떤 변명을 한다고 해도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그 죄는 아주 오랫동안, 아니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당장 다른 팀의 팬들이 전북을 가리켜 '매북'이라고 부르는 것이 증거입니다. 명문 구단으로서 K리그를 선도하는 위치에 있는 전북의 잘못이기에 비난의 수위는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전북 팬들도 타 팀 팬들도 'K리그의 팬'이라는 전체집합의 부분집합입니다. 전북은 자기 팀의 팬뿐만이 아닌, K리그의 팬 모두를 위해 조금 더 몸을 낮추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면,
심판 매수 행위에 대해 K리그 팬 전체에게 사과하는 뜻에서 연맹의 조사에 성실하게 협조할 것이며, 잘못된 행동에 대한 반성의 의미를 담아 이번 시즌에 우승한다고 해도 다음 시즌 유니폼에 별을 추가로 달지 않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팬들의 분노를 진정시키기 위한 접근이 부족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합니다.
FC 서울이 누려야 할 챔피언으로서의 기쁨을 반감시킨 것에는 연맹도 많은 책임이 있습니다. 연맹의 징계는 너무 성급했고, 팬들을 우롱하였으며, 계산적이었습니다. 성급했다는 것은 징계안을 2016 시즌에 바로 적용한 것입니다. 더욱 많이 조사하고, 법원의 판결까지 충분히 반영하여 2017 시즌 시작부터 징계를 적용해도 결코 늦지 않으며, 훨씬 자연스럽습니다. 그리고 승점 9점 삭감과 벌금이라는 징계는 팬들을 달래는 데 역부족이었습니다. 이탈리아 프로축구 리그 세리에 A의 심판 매수 사건인 '칼치오폴리' 때 이탈리아 축구협회는 해당 구단인 유벤투스의 당해(심판 매수가 자행되었던 해) 우승 기록을 말소하고, 하부리그 강등과 승점 삭감을 동시에 적용시켰죠. 팬들의 기대에 충족하려면 이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높은 수위의 징계가 꼭 필요하였는데, 연맹은 그러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계산적이라는 것은, 전북의 승점을 시즌 중에 감점시켜 억지로 우승 경쟁 판도와 흥행 거리를 만든 것을 말합니다. 이것도 어찌 보면 승부조작 행위이지요. 결국 판도와 경기 구도를 '만든' 행위이니까요. 이런 '만들어진' 구도 속에서 FC 서울의 역전 우승이라는 멋진 피날레의 감동은 반감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승부조작, 심판 매수 같은 행위는 각본 없는 드라마로 불리는 스포츠 경기에 각본을 짜려는 시도입니다. 이번 연맹의 승점 감점 소급적용도 본질적으로는 각본 만들기 행위이지요. 하지만, 그렇게 짜인 각본 하에서의 승리는 스포츠가 주는 감동을 전혀 살려내지 못하고, 진실이 밝혀졌을 때 배신감만 키우고 맙니다. 스포츠에서 나오는 승리의 기쁨, 패배의 눈물, 기록 달성의 성취감, 감동적인 명장면의 순수함은 그것에 관계하고 있는 모든 구성원들의 자산이며, 동시에 함께 지켜나가야 할 가치이기도 합니다.
2017년, 아니, 그 이후에도 대한민국 스포츠에 '각본 만들기' 시도가 없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