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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원철 Dec 08. 2016

성장과정(3)-공익근무요원 생활

부제 없음.

성장과정에 대한 글은 이것이 마지막이다. 이 글에서는 나의 공익근무요원 판정에 관한 일, 그리고 근무에 대해 쓸 것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받은 1년간의 정신과 진료 기록이 다행히도 인정되어서, 나는 '심리적 발달장애와 소아청소년기 장애' 사유로 4급 판정을 받았다. 다만, 내가 4급 판정을 받은 시점은 아직 정신 관련 사유로 4급 판정을 받은 사람에게 기초 군사훈련을 면제하는 법이 제정되기 전이었으므로, 어쩔 수 없이 4주 훈련은 받아야 했다. 기초 군사훈련을 받은 상태이기 때문에 소집해제 이후, 예비군 훈련 대상으로도 들어가는데, 2016년에 법이 개정되어 정신 관련 기록이 남아있는 사람은 훈련을 받지 않게 되었다.


성격도 사연도 많은 나인지라 4주 훈련도 큰 난관이었다. 쉽게 말하면 폭탄 같은 트러블메이커... 였다. 상황에 따라서는 나에게 중도 귀가조치도 내려졌을 거라고 본다. 다행히 훈련소 동기들과 조교님들, 교관님들의 도움으로 어떻게든 훈련을 마칠 수는 있었다. 관심 훈련병이 되긴 했지만. 훈련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못 사건'이다. 유격훈련 중 모두가 힘들어하고 있을 무렵, 우연히 바닥에 떨어져 있던 녹슨 못을 주웠다. 그때는 내가 정신적으로 한계에 몰려있을 무렵이었다. 못을 보고 순식간에 많은 장면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놀란 조교님이 나를 불러서 여러 가지를 물었다. 불려 나온 나는 횡설수설했다. 괴물이 어쩌고 이빨이 어쩌고... 옛날 내가 한 일이 참 부끄럽다.


천신만고 끝에 기초 군사훈련을 마치고 근무지를 배치받았다. 덕진구청이었다. 정확히는 덕진구청 건설과 재난방재계. 2년 동안 한 일을 간략히 말한다면 민방위 훈련 관리 일이다. 민방위 소집훈련 대상자에게 통지서를 보내고 훈련일에는 민방위 훈련장인 덕진 예술회관으로 출근해서 진행보조 일을 했다. 훈련 이후에는 훈련 참가자들로부터 받은 필증을 동별로 분류해 주민센터로 넘기고, 이쪽에서 관리하는 직장민방위대의 경우에는 직접 훈련 참가 기록을 남기는 일도 했다. 플러스로 건설과 전체의 우편물 발송 업무도 자원해서 맡았다. 그런대로 일을 잘 해나갔고, 주사님과 계장님과도 좋은 사이를 유지했다.


이렇게 2011년과 2012년을 보내고, 2013년. 2년 동안의 공익 생활을 마치고 소집해제날도 어느새 가까이 다가왔다. 다만, 내가 하는 일은 처음부터 그때까지 변함이 없었는데, 내 후임을 맡아줄 사람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소집해제에 관계없이 내가 후임이 들어올 때까지 며칠 정도 일을 계속하면서 후임에게 일을 가르치는 것을 논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내 후임이 없는 상태로 나는 소집해제일 날 구청을 떠나게 되었다. 떠나는 날, 구청 직원분들께 인사하고, 제2의 근무지였던 덕진 예술회관도 따로 찾아 훈련 진행을 위해 나와계신 완산구청 직원분들과, 안면을 튼 예술회관 직원분들께도 인사했다. 떠나기 전, 누군지 모를 나의 후임을 위해 기본적인 업무와 우편 발송 일을 간략하게 적어둔 A4용지 1장 분량의 메모를 만들어서 책상에 남겨두었다. 후임 분과는 소집해제로부터 대략 2개월 이후에, 당시 주사님과 계장님의 도움으로 만나서 이야기했다.


이 글을 끝으로 성장과정에 대한 글은 마친다. 최대한 사실 위주로 담담하게 쓰려고 노력했다. 사실 내가 취업 자소서를 쓸 때 가장 많이 숨긴 사실이 바로 공익근무요원 판정 사유이다. 많은 사람들이 정신과 관련 일은 최대한 숨기는 게 낫다고 이야기하기 때문에 나는 자소서나 면접 자리에서는 '사고'라고 대충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취업을 위해서는 이게 낫다고 자기 최면을 걸어왔다. 하지만, 송곳은 감추더라도 언젠가는 뾰족한 부분이 튀어나오는 법. 언제까지나 숨기고 살아갈 수는 없을뿐더러 그것이 드러났을 때, 주변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주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4급 판정 사유를 밝히기로 했다. 이렇게 쓰니 마음이 후련하다.


나는 나의 어떤 부분들에 대해서는 절대로 진실을 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만일 내가 진실을 말한다면, 그건 나를 두 번 죽이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이제 나는 깨닫는다. 그것은 나를 죽이는 게 아니라는 것을. 진실을 숨기면서 살아가는 것, 그게 바로 나를 죽이는 일일 것이다.

- 「나의 라디오 아들」 중


다음 글부터는 내가 최근 몇 년동안에 겪은 실패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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