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원철 Dec 15. 2016

실패 일기(1)-직장생활

3일 만에 나오다

공익근무요원에서 소집 해제된 2013년 5월 이후, 다른 사람들처럼 취업을 위해 뛰어야 하게 되었다. 당장 근처의 국비지원 컴퓨터학원에서 웹과 앱 개발자 교육을 받았다. 이렇게 2013년을 보낸 나는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취업시장에 뛰어들었다. 남들처럼 여러 군데에 이력서와 자소서, 그리고 필요하면 포트폴리오도 제출해서 냈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이력서 대비 면접 제의 비율이 1/10 이하였다. 면접장에 가서도 나름 심도 있게 면접을 보는 경우도 있었고, "할 수 있겠어요?" 한 마디만 하는 게 끝인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다 보니 어느 날, 우연히 면접에 합격하였다. 그 회사는 핸드폰 판매업체였다. 무언가 너무 일이 잘 풀려서 이상했지만, 합격은 합격이었다. 다음 날부터 출근했다. 회사에서는 인턴과정을 거친 후 정규직 채용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그리고 핸드폰을 바꿔주었는데,  그것이 지난 9월, 배터리 풍선 현상으로 수명을 다하게 된 LG G Pro 2이다.) 하여튼, 나는 나름 적응을 위해 일찍 버스를 타고 출근하기도 하고, 회사에서 제시한 핸드폰 판매정책에 대한 글도 자세히 읽었다. 하지만, 나의 첫 직장생활은 채 3일을 넘지 못했다.


가장 큰 문제는 내가 '회사 체질'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내가 공익근무요원으로 구청에서 일하면서 나름 사무실의 체계에는 적응한 사람으로 생각했지만, 회사의 사무실과 공공기관의 사무실은 엄연히 달랐다. 직장 동료들과의 식사예절이라는 것도 몸에 제대로 익히지 못했으니까.(이것은 나의 한순간의 실수일 가능성도 있으나, 직장예절에 관하여 누구에게 가르침 받지도 않았고, 나도 특별하게 의식한 적이 없었다는 점에서 예절을 배우지 못했다는 말은 성립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공익근무요원 일도 나는 첫 1개월가량을 제외하면 전적으로 혼자 일했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일도 적어서 인지하지 못한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당시 팀장님의 말을 빌려 말하자면, "다른 사람들은 5를 받는데 나는 50을 받는 상태." 바로 마음의 상처가 다른 사람보다 더 깊게 박히는 상태를 의미하였다. 


그리고 결정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공익근무요원 진단 사유를 숨긴 것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나의 진단 사유를 숨기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으므로, 내가 4급을 받은 이유를 '사고'로 얼버무렸다. 입사 이후 팀장님께 실제 사유를 말했는데, 팀장님께서는 이것은 일종의 위장취업에 해당한다고 이야기해주셨다. 그리고 3일간의 나에 대한 평가자료도 같이 보여주셨다. 위의 내용이 포함된 평가자료 말이다.


결국 나는 그 회사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에게 회사가 몸에 맞는 옷이 아니라는 것을 온전히 깨닫기까지는 아주 긴 시간이 걸렸다.

 

매거진의 이전글 성장과정(3)-공익근무요원 생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