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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원철 Feb 10. 2017

'한국형' 포켓몬 고와 양무운동

동도서기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국

「포켓몬 고」가 한국에 상륙하자,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한국에서 각종 AR 모바일 게임들이 등장하려 하고 있다. 언론에서는 이런 AR 모바일 게임들에게 '한국형 포켓몬 고' 타이틀을 붙이기에 여념이 없다. 포켓몬 고가 한국에 상륙하면 벌어질 일들 중 하나라면서 누리꾼들 사이에서 돌고 있던 웃픈 농담 같은 말들은 현실이 되었다. 무언가 놀라운 것이 외국에서 혜성같이 등장하여 패러다임을 바꿀 때마다 한국에서는 "왜 이런 거 못 만드냐?"라는 말부터 시작하여 시간이 지난 후 '한국형' 이름을 붙인 카피캣들이 나타나는 광경을 몇 번이고 보아왔기 때문이다. 이른바 '명텐도'도 그중 하나다. 하지만, 이 '한국형 카피캣'들은 대부분 시장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내지 못하고 사라져 갔다. 이 과정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이런 실패 사례는 사실 아주 먼 옛날에도 존재했다. 바로 청나라 말기에 시도되었던 '양무운동'이다.


아편전쟁과 애로호 사건이라는 두 개의 충격파가 청나라를 강타하였다. 서양의 군사력과 기술력 앞에 청나라는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청나라 내부에서는 서양의 기술력을 받아들여 강해지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양무운동이다. 양무운동은 '중체서용(中體西用)'의 기치를 내걸었다. 중국의 정신을 그대로 두고 서양의 기술만을 수용한다는 논리이다. 이 양무운동을 주도한 이들은 태평천국 운동을 제압하는 데 공을 세웠던 신흥 군벌세력과 지방의 하급 관리들이었다. 이들은 각지에 근대식 공장과 신지식을 가르치는 학교를 세웠다. 유럽과 미국에 유학생들도 보냈다. 이들의 노력으로 청나라의 국력은 크게 성장하는 듯하였다. 하지만, 그들이 처음에 내세운 중체서용의 기치는 처음부터 그들의 한계를 규정하는 것이었다. 발전된 기술을 낳은 서양의 정신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그저 기술의 진보만으로 부국강병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던 그들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 선진 기술을 받아들이는 것은 물론 정신을 새로이 무장한 일본 앞에 무너지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그렇다. 청일전쟁이다.


중체서용의 다른 이름은 '동도서기(東道西器)'라고 한다. 동양의 정신을 그대로 서양의 기술만 수용하는 것. 지금 '한국형 포켓몬 고'를 주창하는 이들은 바로 이런 동도서기적 사고방식 하에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발전된 증강현실 기술을 사용하는 게임을 한국적인 색채를 조금만 넣어서 만들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히트작으로 할 수 있다. 그들의 생각은 이럴 것이다. 하지만, 이런 '한국형 포켓몬 고'를 시도하는 사람들 중 그 원류인 포켓몬 고가 어떻게 태어났느냐에 대해 진지한 고찰을 하는 사람들은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애당초 「포켓몬스터」라는 IP가 어떻게 탄생했느냐에 대한 생각도 잘 하지 않는 것 같다. 포켓몬스터는 타지리 사토시라는 사람이 자신의 이상을 게임으로 구현한 것이다. 그의 이상은 '어린 시절 자연 속을 뛰어다니며 동물과 곤충을 채집하던 자신의 경험과 감성을 도시화로 인해 누리지 못하는 현대의 아이들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포켓몬 고는 발전된 GPS 기술과 증강현실 기술 등을 이용해 타지리 사토시가 포켓몬스터를 만들 때 품었던 이상을 구현한 게임이다. 동도서기적 사고방식을 고수하는 한, 뛰어난 기술에 눈이 멀어 그 속에 존재하는 정신과 이상을 보지 못하는 한, 한국형 포켓몬 고는 커녕 제대로 된 증강현실 게임조차도 만들 수 없다.


청일전쟁의 패배는 지금으로부터 122년 전인 1895년이었다. 청일전쟁의 패배는 양무운동이 최종적으로 실패했다는 선고였다. 기술만 진보시킨 자들은 정신을 함께 진보시킨 자들을 이길 수 없었다. 그리고 이 패배는 지금의 한국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청일전쟁의 패배를 겪고 정신을 동반한 진보의 필요성을 깨달은 중국인들에 비해 지금의 한국은 계속되는 '한국형 카피캣'들의 패배 속에서도 122년 전 중국인들이 얻은 깨달음에 도달한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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