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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원철 Feb 22. 2017

버추얼 보이

VR의 밑거름

VR(가상현실) 기기 시장은 이제 막 꽃을 피우려 하고 있다. 오큘러스 리프트를 시작으로, HTC 바이브,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VR, 구글 데이드림, 그리고 삼성 기어 VR 시리즈까지. 코스트 다운 등을 통한 더욱 광범위한 대중화나 VR만의 킬러 콘텐츠의 창조 등 해결해야 할 문제는 산더미다. 하지만, 새로운 시장은 태동했고, 앞으로 만개할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꽃은 결코 공기 중에 피어나지 않는 법.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밑거름이 필요하다. 그 밑거름 속에 있는 것이 바로 닌텐도가 무려 22년 전 내놓은 최초의 VR 기기. 바로 버추얼 보이이다.


버추얼 보이는 닌텐도가 Reflection Technology, Inc. (RTI)라는 회사에서 개발한 3D LED 디스플레이 기술이 가상현실 표현에 유용할 것이라고 평가하여 라이선스권을 취득하였고, 1991년 경부터 개발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개발 당시부터 기술에 대한 우려가 많았다. 무엇보다도 1990년대 초반에는 LED 기술 자체가 매우 비싸고 아직 불완전했다는 것이 큰 문제였다. 청색 LED는 당시에는 막 기술개발이 진행 중인 단계였기 때문에(청색 LED 기술을 개발한 연구원들이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을 정도로 당시에는 LED로 청색을 만들어내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투사할 수 있는 색은 적색과 녹색만이 남는데, 500달러 이상의 고가가 되어 팔리지 않게 될 것을 염려한 닌텐도와 RTI는 코스트 다운을 위해 녹색을 빼기로 결정하여 결국 흑색과 적색만이 남는다.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바로 멀미와 어린이의 안구 건강문제이다. 지금도 VR 기기를 사용할 때 멀미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두 색밖에 표시할 수 없는 당시에는 더욱 큰 문제였을 것이다. 안구의 피로는 더 말할 것도 없고. 결국 본래 계획했던 헤드 트래킹 기술을 제외하고, 고글처럼 쓰고 벗게 하는 대신 받침대를 만들어서 어지러움을 느낄 경우 언제라도 기기에서 눈을 떨어트릴 수 있도록 했다.


버추얼 보이의 게임 화면의 하나.


개발과정에서 여러 어려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버추얼 보이는 1995년에 출시되었다. 닌텐도는 버추얼 보이를 휴대 가능한 게임기로 보고 그것에 맞게 마케팅 전략을 짰다. 그리고 그 결과는 속된 말로 '폭망'이었다. 개발 당시부터 제기되었던 기술의 난점, 그리고 판촉과는 다르게 휴대가 거의 불가능한 점, 콘텐츠의 부족,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 그리고 당시 기준으로 가격(대략 200달러)이 너무 비싼 점등이 단점으로 지적되었다. 결국 버추얼 보이는 1년 동안 북미와 일본에 단 77만대만이 판매되는, 아주 처참한 판매실적을 남기고 조용히 묻혔다. 아타리가 무너진 이후, 게임 시장을 제패해온 닌텐도에게는 아주 치욕적인 결과였다. 버추얼 보이의 개발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요코이 군페이는 버추얼 보이의 실패로 인해 닌텐도를 떠나야만 했다.


버추얼 보이는 의미 있는 성과를 내지 못하고 조용히 사라졌다. 하지만, 버추얼 보이가 구현하려 했던 VR의 개념 자체는 남았다. 그리고 가상현실 기술의 연구도 지속되었다. 그리하여 당시에 구현하지 못했던 삼원색의 온전한 LED 표현과 헤드 트래킹 기술의 구현을 성공하고, 컴퓨터와 스마트폰, 콘솔의 발전된 처리속도를 더하여 만들어진 것들이 이 글 처음에 나열했던 VR 기기들이다. 버추얼 보이라는 밑거름이 양분이 되어 지금 꽃이 피어난 것이다. 장장 20여 년에 걸친 긴 시간을 거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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