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느 따뜻했던 런던의 오후

-영국, 런던

by 셜리shirley

London, 드디어 런던에 도착했다.

브리스톨에서 런던으로 다시 온건 다음 여정지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함이었지만, 사실 나는 그보다 런던이 너무 보고팠다.


리버풀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시절, 짧은 여행으로만 몇 번 왔었던 런던은 그래서 늘 아쉬웠었다. 돈 없는 가난한 유학생이라 어마어마한 물가를 감당할 수 없어서 비록 살아보지는 못했지만 올 때마다 매력이 넘치는 이곳은 내게 항상 즐거움을 선사했다.



짧은 2박3일간이지만 나는 혼자만의 여행을 즐길 생각에 신이 나 있었다. 도착한 첫날은 너무나 늦은 저녁이라 어쩔 수 없이 바로 잠들어야 했고,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조식을 먹고, 곧장 하이드파크로 향했다.

공원러버인 나에게 하이드파크는 정말이지 천국과도 같았다. 동생과 함께 이곳에 처음 왔던 때가 생각이 났다. 모든 게 신기하고 재밌었던 동생과의 런던여행이 생각나자 한국에 있는 동생이 너무 보고싶었다. 언젠가 승무원이 돼서 비행으로, 또 다른 여행으로 온다면 또 지금이 그렇게 생각나겠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설레었다. 아무렴 어때, 나는 이 초록이 주는 행복감만으로도 이 시간들을 잘 이겨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코벤트 가든을 제대로 둘러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기자기한 상점들과 골동품들을 파는 자그마한 마켓들 구경하자 정말 런던에 온 기분이 들었다. 나는 마켓을 둘러보다가 100년도 더 전에 쓰여진 엽서를 샀다. 1903년 8월 23일에 쓰여진 엽서. 하나는 내가 6개월간 살았던 리버풀 박물관이 그려진 엽서, 하나는 피카딜리 서커스가 그려진 런던의 엽서였다. 그 시절로 돌아간 기분에 괜시리 특별해지는 순간이었다.


지금은 한국에도 있는 쉑쉑버거가 왜 먹고싶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혼밥으로 먹기엔 수제버거가 딱이었다. 런던에서 드물게 날씨가 좋은 날이었기 때문이었을까, 늘 야경으로 보던 타워브릿지를 낮에 보고 싶어졌다. 열심히 버스를 타고 걷고 걸어 도착한 런던의 랜드마크 타워브릿지.

이 거대한 다리를 건너며 홀로 사진을 찍는 내 모습은 어딘가 슬픈 미소를 감출수가 없었다. 아마 혼자서 이 런던을 즐기기엔 너무 외로웠기 때문이 아닐까.


외로움에 잠식되어 서글퍼지기 직전, 브리스톨에서 만난 언니가 일하는 카페에 놀러가기로 한 약속이 생각이 났다. 런던 시내의 카페에서 일하고 있다는 언니를 만날 생각에 다시금 마음이 설렜다. 구글 지도를 잘 따라가고 있었는데 내가 도착한 곳은 전혀 시내가 아니었다. 오히려 조용한 교외 지역에 가까웠다. 알고보니 언니가 일하던 the coffee tree 카페는 두 개가 있었고 나는 다른 곳으로 잘못 찾아간 것이었다. 역시 내가 길을 잃지 않으면 길치가 아니지...




열심히 다시 찾아간 곳은 런던 소호, 번화가 거리에 있는 아주 작은 카페였다.

작지만 손님은 정말 많은 카페였고, 혼자서 일하고 있는 언니는 굉장히 바빠보였다. 나는 햇빛이 잘 들어오는 창가 자리에 앉아 라떼 한잔을 주문했다. 따뜻한 오후의 런던을 지그시 바라보며 나는 오랜만에 여유로웠다. 마치 내가 런더너가 된 것처럼, 곧 있을 면접에 대한 압박과 부담감은 모두 내려놓고 그 시간을 즐기고 싶었다. 익숙한 단골들이 카페로 들어와 언니와 즐거운 담소를 나누고, 커피를 만드는 언니의 모습을 보는것도 재밌었다. 그러다보니 언니의 시프트 시간이 끝나갔고, 함께 한식당 비빔밥을 테이크아웃해서 저녁을 먹었다. 한국에서의 비빔밥보다는 아니지만 오랜만에 쌀이 들어가니 밥을 제대로 먹은 느낌이었다.

내일이면 런던을 떠나야 하기에, 오늘이 사실상 런던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 마지막 밤에 야경이 빠질수가 없지, 우리는 빅벤과 런던아이를 보러 길을 나섰다.



빨간 2층버스를 타고 내리자 황금빛으로 빛나는 빅벤과 국회의사당이 보였다. 그리고 템즈강너머 런던아이가 빨갛고 둥그렇게 빛나고 있었다. 2년 전 그때와 그대로였다. 이곳은 달라진 게 없는데, 나는 2년 전 그때와 많이 달라진 모습이었다.


2년전 , 영국 유학시절엔 내가 정말 뭘 하고 싶은지 잘 알지 못했다. 그저 유럽을 여행하고, 영국에서 공부하며 살아보고 싶었던 게 다였던 짧은 6개월의 시간이 내겐 못내 아쉬웠다.

2년이 지나 헤매고 헤매다 비로소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게되고, 그 꿈을 위해 그때보다 더 무모하게 떠나온 내 모습은 분명 그때와는 달라진 것 같았다. 그 꿈 하나를 붙잡고 두 번째로 온 유럽, 런던의 야경은 너무나 화려하고 아름다웠지만, 여전히 내일이 두려운 승무원준비생의 마음은 무겁고 고단했다.



내일은 이제 다시 면접을 보러 스페인 발렌시아로 떠난다. 여전히 상황이 좋지 않고, 또다시 실패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또 국경을 넘는다. 런던에서의 짧지만 행복했던 여행의 순간이 나를 지탱해주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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