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코펜하겐
프랑스 툴루즈와 그리스 아테네, 그리고 덴마크 코펜하겐이라는 세 옵션 중 나는 코펜하겐을 선택하기로 했다. 동선상 툴루즈가 훨씬 가까웠지만, 생각보다 비행편이 몇 개 없었다. 아테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나는 바르셀로나에서 노르웰지언 항공을 타고 코펜하겐을 가기로 했다. 내 생애 첫 북유럽이었다.
발렌시아-바르셀로나까지의 여정은 순탄했다. 하지만 바르셀로나 공항에 도착해 체크인을 마치고, 게이트에서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느닷없이 비행기가 지연되었다는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2시간으로 지연되었다가 5시간, 결국 7시간이나 지연된 탓에 내 모든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오후 4시 출발이 밤 11시 출발로 변경이라니, 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원래라면 지금쯤이면 도착해서 먼저 가있는 동생과 합류하고도 남았을 시간에 바르셀로나에서 발이 묶여 아무것도 하지 못하다니.. 화가 난 승객들은 직원들에게 항의하며 적절한 보상을 요구했지만 우리에게 주어진건 딸랑 밀쿠폰 하나.
유달리 순탄한 면접투어라고 생각했는데 7시간 비행기 지연은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마음을 다잡으려 다이어리를 정리하고, 면접답변 준비를 하려고 애썼다. 제발 결항만 되지 않기를.. 코펜하겐에 제발 무사히 도착만 할 수 있기를 빌며.
코펜하겐 공항에 도착한건 새벽 3시반이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문제는 다음날이 바로 코펜하겐 면접인데 면접은 아침 9시, 숙소에 도착해서 얼마 눈도 붙이지 못하고 면접을 가야하는 거였다. 당연히 비행기에서도 자지 못했고 피곤이 온몸에 엄습했다.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코펜하겐의 시내는 너무나 어둑어둑했고 추웠고 어딘가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더구나 5월이라 얇은 옷들만 가져왔던 탓에 가지고 있는 옷을 모두 껴입어도 추웠다. 겨우겨우 예약한 숙소를 찾아가는데 가뜩이나 피곤한 몸인데 숙소는 찾아도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먼저 도착해 있는 동생에게 연락했지만 와이파이조차 약했다. 숙소를 겨우 찾아 들어갔을땐 거의 새벽 5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동생은 늦게 오는 나를 걱정하다가 잠이 든 모양이었다. 나역시 짐을 풀자마자 쓰러지듯 잠을 청했다.
두시간 남짓 자고 일어나 다시 면접. 온몸이 몸살이 날것 같이 쑤셨고, 눈가의 다크서클은 아무리 가리려해도 가려지지 않았다. 그렇게 면접장에 도착하자,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브리스톨에서 만났던 그 면접관이었다. 망했다.
내가 면접을 보는 에미레이트 항공사에는 CV드롭에서 탈락하면 사실상 패널티라는게 주어져서 같은 면접관에게서는 면접을 볼 수가 없다. 워낙 많은 지원자가 모이기에 어떻게 얼굴을 다 기억하겠냐고 하겠지만, 그 면접관을 만난 건 일주일 밖에 되지 않았고, 눈에 띄는 한국인인 나를 눈썰미 좋은 면접관이 기억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거다. 아니나다를까 CV드롭에서 의미심장하게 나를 쳐다보는 그녀를 보며 왜 하필 내가 코펜하겐으로 오겠다고 결정했을까, 후회해봤지만 이미 늦었다.
결과야 뻔하겠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기다렸지만, 결과는 당연히 탈락이었다.
면접장을 터벅터벅 걸어나오며 왜 새벽에 잠도 못자가며 지연된 비행기를 타고 코펜하겐에 대체 뭘 위해 온 것일까, 깊은 탄식만이 나왔다.
애초에 나는 이 면접에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었던 것을.
기분전환하려 코펜하겐 시내를 돌아보려고 했지만 좀처럼 기분이 나아지지가 않았다. 여행할 만한 여유도, 기력도 남아있지 않았던 나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2시간밖에 자지 못해서 정신력으로 가까스르 붙잡고 있던 내 체력은 바닥이 났고, 뭔가를 먹지 않으면 안될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북유럽의 어마어마한 물가.. 정말이지 모든게 살인적인 가격이었다. 제대로 된 식사를 먹으려면 거의 1인당 4-5만원 정도를 내야했다. 겨우겨우 작은 골목의 식당에서 그나마 저렴한 누들로 대충 식사를 하고, 당장 오늘 밤 묵을 숙소를 예약해야했다. 지금 숙소는 정말 작은 방인데도 더블룸 1박에 20만원가까이의 방이였고, 그마저도 그나마 저렴한 수준이었다. 한참을 호텔 예약사이트를 뒤져보다 발견한 곳은 크루즈 분위기로 꾸며진 호텔이었다. 말이 크루즈지 직접 가보니 2층 침대는 손바닥만했고 욕실조차 한사람이 서면 꽉 찼다. 그마저도 그곳이 코펜하겐 시내에서 가장 저렴한 숙소였다.
체크인을 하고 저녁을 먹으러 나갈 힘도, 돈도 없던 우리는 대충 빵과 음료수를 사서 저녁을 해결하기로 했다. 힘없이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려고 하는데 동생이 한국에서 방영하는 예능프로그램을 노트북으로 보고 있었다. 그 당시, 걱정말아요, 그대를 이적이 리메이크한 노래가 유행하고 있었다.
그대여,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라는 따뜻하고 담담한 가사에서부터 눈물이 터져나왔다.
아무 걱정하지 않기에 내 현실은 너무나 참담했다. 대체 나는 왜 이곳에서 이렇게 고생을 해야하는건지 억울했다. 고생을 감수하겠다고 했지만 이 정도일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두 번째로 온 유럽이었고, 이젠 마지막이라고 생각했기에 내 모든 것들을 쏟아부으려 안간힘을 쓴 면접들이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으며, 난데없이 비행기 지연을 겪으며 고생고생 온 코펜하겐에서는 아예 지원자격까지도 박탈당해 그야말로 돈 낭비, 시간낭비를 자처했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고 우리 둘은 그 노래를 들으며 정말 한참동안 엉엉 울었던 것 같다.
왜 승무원이라는 꿈은 이다지도 아득하고 손에 잡히지 않는지, 내가 정말 가질 수 없는 것에 오기와 집착을 부리고 있는 건 아닌지, 온갖 생각들이 나를 괴롭혔다. 나의 첫 북유럽, 덴마크 코펜하겐에서의 그날은 내 인생에 가장 추웠던 날들 중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