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사랑받을 거에요 - 소도시가 준 위로

-체코 올로모츠, 독일 드레스덴

by 셜리shirley


올로모츠, 체코하면 프라하밖에 모르는 나에게 너무나 생소한 도시였다.

프라하에서도 기차로 2시간을 넘게 가야 하는 곳, 하지만 도착하자마자 나는 이 도시와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일단 코펜하겐에서 호되게 당한 북유럽의 물가와는 다르게 동유럽 체코의 물가는 너무나 착했다. 호텔 부다페스트 영화를 연상케 하는 건물의 호텔도 거의 코펜하겐 숙소의 반값에 예약할 수 있었고, 침대에 놓여있는 작은 웰컴쿠키 하나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특히나 호텔 주인이 추천해준 레스토랑에서의 식사는 코펜하겐에서 춥고 배고팠던 우리를 위로하듯 너무나 훌륭했다. 체코의 전통음식인 꼴레뇨는 우리나라 족발 같은 느낌의 요리인데 너무나 부드럽고 쫀득쫀득한 식감이었다. 거기에 맥주까지 합세하니 이렇게 완벽한 조합이라니.!

배부르게 먹고 작은 시가지를 둘러보는데 역시 동유럽답게 아기자기하고 화려한 건물들이 펼쳐졌다. 오랜만에 잠시나마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고, 잔뜩 움츠러들었던 마음이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다음날, 나름대로 회복한 컨디션과 정신력을 다잡고 면접장으로 향했다.

면접관은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끊임없이 주시하며 여러 가지 질문을 내게 던졌다. 긴장됬지만 최선을 다해 답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혹시나 다음 단계로 올라가지 않을까, 잠시의 희망을 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나는 그녀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이럴거면 질문을 많이해서 기대나 하게 하지 말지, 원망도 밀려왔지만 이제 더 이상 이런 거절감에 큰 의미를 두지 않기로 했다. 그냥 오늘이 나의 날이 아닌 것 이라고 생각하자. 그렇게 스스로 다독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의 마음을 흔들리게 한건, 오늘 열렸던 다른 면접지인 독일 뮌헨에서 몇 명의 한국인 지원자가 다음단계로 올라갔다는 소식이었다. 역시 뮌헨을 갔어야 했는데.. 라는 아쉬움이 들었지만 이미 돌릴 수 없었다. 나는 다시 다음 면접지로 향해야 했다. 다음은 독일의 수도,베를린이였다.



베를린 면접까지 3일의 시간이 남았다. 나와 동행인 동생은 동선을 고민하다가 중간지점인 드레스덴이라는 곳에 잠시 머물기로 했다. 드레스덴은 체코의 국경 가까이에 있는 독일의 작은 도시였다. 버스로 2시간 남짓 도착한 이곳은 독일이라기보단 동유럽의 느낌이 많이 살아있는 곳이었다. 올드타운의 건물들, 기념탑, 벽화들.. 고풍스럽고 웅장한 중세시대부터의 역사가 남아있었고 보는내내 신기해하며 연신 사진을 찍었다. 오랜만에 이런 여행의 시간을 가지자 또다른 탈락으로 인해 힘들 것 같은 마음이 생각보다 괜찮아졌다.


저녁이 되자 어둠이 옅게 깔리기 시작했다. 불빛들이 하나씩 켜지자 이 도시의 매력은 더욱더 정점을 찍는 듯 했다. 예술가들이 많이 모여 사는 드레스덴은 건물 곳곳에 벽화와 그래피티가 그려져 있었고, 카페나 바 들도 건물이 아기자기했다.


천천히 거리를 돌아보던 중, 어디선가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음악소리를 따라가보니 아주 작은 바에서 한 밴드가 공연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바로 들어섰을 즈음 제프 버클리의 ‘Hallelujah’ 라는 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쓸쓸하면서도 어딘가 사람의 마음을 잔잔하게 만드는 이 곡은 워낙 좋아하는 곡이기도 했지만, 이곳 먼 땅 독일 드렌스덴에서 들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여전히 나는 면접에 떨어져 다음 면접을 기약해야 하는 한국에서 온 동양인 지원자일 뿐이었고, 가진 돈은 점점 떨어져 가는데 차마 이 꿈을 접을 수 없어 버티고 버티며 유럽땅을 헤메이고 있었다. 포기하려면 얼마든지 포기하고 돌아갈 수 있었지만, 아직은 내게 남겨진 기회들에 최선을 다하고 싶어졌다. 이어지는 밴드의 공연은 그런 내 마음을 응원하는 듯 했다.


중학교 시절 빠져있었던 에이브릴 라빈의 ‘complicated', 데미안 라이스의 ‘volcano’ , 런던에서 콘서트 까지 보러갔던 존메이어의 ‘waiting for the world to change'...

그리고 마지막 곡인 마룬파이브의 ’she will be loved'는 앉아있던 관객들이 모두 떼창을 하며 콘서트 분위기를 연상케 했다.

‘그녀는 사랑받을거에요-’ 라는 말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지금 내 모습 그대로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말로 들려서 더더욱 내게는 눈물날 것 같은 가사였다.


내게는 너무나 낯선 도시였고, 바의 이름도, 밴드의 이름조차 몰랐다. 하지만 끊임없는 거절감에 지치고 상처받았던 마음들을 잔잔한 노래로 위로하는 그날 저녁의 공연은 내게 잊을 수 없는 따뜻함이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