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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셜리shirley Feb 23. 2021

잊고 있던 승무원이라는 꿈, 그리고 마지막 기회

-꿈을 내려놓기 위한 마지막 도전

그날도 여느 때처럼 출근을 하고, 홀 청소를 하고 손님들을 맞고, 그리고 잠시 브레이크 타임에 쉼을 가지고, 디너 준비를 하던 평범한 날이었다.     

 

한국인으로 보이는 손님 한분이 가게로 들어왔다. 사장님 혹시 계시냐고 하는걸로 보아 사장님의 지인분 같았다. 사장님과 반갑게 인사하더니 음식을 시키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걸 어쩌다 보니 엿듣게 되었는데, 그녀는 에미레이트 항공 승무원으로 일하고 있었고, 비행으로 멜버른에 왔다가 잠시 가게에 들른 것 같았다. 어쩐지 분위기라던지 인상이 어딘가 묘하게 익숙하더라니... 그녀에게 음식을 서빙 하는데 접시와 컵등 식탁을 깨끗하게 정돈하길래 제가 하겠다고 하니까 아니라면서 이게 직업병이라 비행기에서 하던 버릇이 있어서... 라며 웃는데 그순간 뭔가 잊고 있던 무언가가 머리를 스치는 느낌이 들었다.     


그랬다. 나 역시 승무원을 준비했던 사람이었지.

그것도 에미레이트 항공은 내가 너무나 가고싶던 회사였다. 면접을 보기 위해 유럽을 두 번이나 건너갔고 아직도 그 꿈을 놓지 못해 마지막 면접을 보기위해, 호주에서 열리는 면접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즈음 호주에서 면접이 좀처럼 열리지 않았고, 매일 나가던 스터디를 나가지 못하게 되니 면접에 대비한 답변준비도 감을 잃어가고 있었다.     

 

만약 내가 작년 유럽 면접에서 합격해서 에미레이트 항공 승무원이 되었더라면 오늘 그녀처럼 멜버른에 비행으로 오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과 그와 동시에 홀서버로 일하며 이곳에 있는 내 자신이 견딜수 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컵을 닦다가 눈물이 툭- 떨어졌다. 호주에 와서 처음으로 느낀 감정이었다. 나는 분명히 이곳에서의 생활에 너무나 만족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갑자기 내가 그토록 간절했던 승무원이라는 세 글자가 날카로운 가시처럼 내 마음을 후벼팠다. 지금 너 여기서 뭐하고 있는거냐고, 이럴려고 호주까지 온 거냐고 환청처럼 나를 비난하는 것 같았다.    


일하는 도중 눈물을 들키면 안되기에 홀 구석에서 눈물을 참으며 평정심을 찾으려 애썼다. 그녀의 얘기를 들어보니 그저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닌 직업이 승무원이기에 비행은 굉장히 힘들다고 했다. 특히나 호주비행은 모두들 힘들어하는 비행이라 내일 다시 돌아가는 비행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피곤하다고 했다. 그마저도 부럽게 느껴지는 건 역시 나는 어쩔 수 없는 승무원 준비생이었다.       


퇴근길, 많은 감정들이 교차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더 이상 이 승무원이라는 꿈에 맹목적으로 매달리는 건 나를 위해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거란 걸. 그렇게 간절한 이름이 꿈이라는 명목으로 나를 괴롭히는 건 내가 원치 않았다. 승무원을 향한 도전은 이제 마지막을 준비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몇 주 뒤, 우연히 확인한 메일함에 영어로 된 메일이 와있었다.

확인해 보니, 호주에 오기 전 해외구직사이트에 이력서를 지원한 에어아시아라는 항공사에서 온 메일이었다. 워낙 많은 이력서들을 지원하고 탈락한 경험이 있던터라 대수롭지 않게 잊고 있었는데, 메일을 읽어보니 이달 말에 열리는 cabin crew invitation day에 정식으로 invited 되었다는 확인 메일이었다. 여느 오픈데이(인비테이션 없이 자유롭게 참가하는 면접)이 아닌 인비테이션을 받은 지원자들만 참여하는 면접은 처음이었다. 갑자기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면접장소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에어아시아 본사. 멜버른에서 쿠알라룸푸르까지는 꼬박8시간 비행기로 날아가야 하고, 아무리 타이트하게 일정을 짜도 1박을 해야했다. 일하는 곳에 오프를 내는 것부터 쉽지 않은 일인데다 티켓값도 만만찮았다. 하지만 나는 이게 승무원을 위한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이 면접을 마지막으로 이 꿈을 놓아주어야 한다는 마음이 들자 뭔가 짓눌리던 무언가가 사라지며 홀가분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이상했다. 분명 간절한 이 꿈을 놓겠다고 마음먹으면 마음이 아플 줄 알았는데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느낌이 들다니.


결국 나는 내 꿈인 승무원이라는 이름의 감옥을 스스로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다. 분명 나는 그 이름 덕분에 많은 도전과 실패를 통해 내면의 성장을 이뤘던 사람인데, 어느 순간부터 그 이름에 갇혀 스스로를 패배자로 만들고 있었고,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던 내 모습을 스스로 낮추며 스스로 괴로움을 자초하고 있었던 거다.

이렇게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아마 무엇이 더 가치 있는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기에 이전보다 더 단단해 졌기 때문이라 믿고 싶었다.


또한 마지막 기회에 최선을 다하고 나면 나는 비로소 이 감옥에서 자유로워 질것이라는 믿음이 들었다. 분명 그전의 나와는 더 마음이 여유로워졌고, 여전히 간절하되 집착하지 않는 마음이 생겼기에 이 면접을 긴장하지 않고 볼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그래서 충분히 승산이 있는 면접이라는 생각역시.          




고민은 길지 않았다. 그날 나는 그주에 받은 주급을 전부 털어 쿠알라룸푸르까지의 티켓을 결제했다.

드디어 나는 승무원 면접을 위해 국경을 넘는 마지막 비행기에 오른다. 꿈을 이루는 것보다 꿈을 놓는 용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그 어려운 걸 해내기 위해 그꿈을 놓기전 모든 걸 쏟아부을 각오가 되있었다. 또 다른 의미로 설렘을 주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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