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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셜리shirley Feb 21. 2021

호주에서 주6일을 일하면서도 행복했던 이유

-나를 지탱하던 작은 일상의 행복들.


  돌이켜보면 주5일제가 한국에서 시행된지 얼마 되지 않았다. 토요일을 쉴 수 있다는 건 삶의 질을 높여주는 획기적인 변화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레스토랑과 같은 요식업은 주말에 더더욱 바쁠 수밖에 없는 직종이라 토요일에 쉰다는건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더구나 내가 일하는 레스토랑은 크리스천인 사장님은 일요일은 레스토랑 문을 닫기 때문에 토요일은 가장 바쁘고 손님이 많은 날이었다.

나의 토요일 근무는 오후 3시에 출근해 12시가 마감이었다. 체력의 피로도도 크고 마감시간을 훌쩍 넘어 퇴근하는 날이 허다했다. 남들은 쉬는 토요일에 일하는 주6일을 일하는 건 분명히 힘든일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 6일간의 근무를 버틸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다.    


 먼저 한국보다 훨씬 높은 시급, 내가 일했을 당시 법적인 tax job시급이 18불이었다. 물론 그마저도 세금을 떼면 16불 남짓이지만 한국돈으로 13000원에 가까운 돈이다. 게다가 나는 시프트를 많이 받은 편이라 한 주당 주급이 많게는 800불가까이를 받게 되었다. 게다가 오전 근무가 오후 시프트로 바뀐 즈음, 운좋게 구한 세컨드잡인 카페 바리스타 일까지 합치자 주당 1000불을 훌쩍 넘는 웨이지를 받게 되었다. 즉 한달에 300만원 이상의 월급을 받는 셈이다.

그리고 호주는 주급시스템이기 때문에 주별로 조금씩 계획하면서 소비가 가능하다. 큰돈을 월급으로 받게 되면 뭔가 큰 소비를 하게 되는데 호주에서는 눈앞에 큰 돈이 통장에 찍히지는 않지만 번만큼의 소비를 할 수 있는 시스템 때문에 생각보다 과소비가 줄게 되었다.     


그리고 호주에서는 내가 일하는 카페나 레스토랑 웨이트리스 일이 알바가 아닌 job으로 인정받는 사실이었다. 한국에서 이러한 서비스 업종은 아무리 정직원으로 일하더라도 알바로 치부되고 그 특히나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그 ‘알바’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았다. 그 나이까지 뭘했길래 아직도 알바하고 있냐는 차가운 시선들이 나로 하여금 박탈감을 느끼게 했다.

하지만 커피가 유명한 이곳 멜버른에서는 바리스타는 전문직으로 인정받는 고급인력이었다. 나는 그래서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고, 남들의 시선에서도 자유로울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주 7일을 일하는 워홀러들도 많다고 들었는데 나는 단 하루라도 쉴 수 있는 일요일이 있었다. 내게 그 하루의 휴일이 너무나 소중했고, 그 소중한 시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특히 카페를 너무나 좋아하는 나에게 멜버른은 원더랜드였다. 지나가다 점찍어둔 카페를 가서 커피를 시키고 다이어리를 쓰는 시간은 내게 휴일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시간들 중 하나였다. 그러다가 바람을 쐬고 싶을 때면 트램을 타고 근교 세인트 킬다 해변으로 가기도 했고, 집앞 공원에서 누워 음악을 들었다. 가끔 시티로 나가 쇼핑몰을 구경하며 아이쇼핑을 하는 것도 좋았다. 한국에서는 그렇게 사고 싶은 것들이 많았는데 신기하게도 호주에서는 그런 물욕이 크게 들지 않았다. 똑같은 옷을 입어도 전혀 부족함을 느끼지 못했다. 물론 가끔 필요한 옷들을 사긴 했지만 허영심에 옷들을 사는 일들이 확연히 줄었다.

나는 지금까지 더 소비하고 소유할수록 행복할 줄 알았는데, 남들에게 드러내고 싶은 허영심들이 여과기에 걸러지듯 거르고 나니 지금 가진 것들로도 충분히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자연히 쇼핑에 쓰는 돈을 줄이니 저축할 수 있는 돈이 많아진 것도 사실이었다.     






내가 가진 워홀비자는 딱 1년. 분명히 1년이라는 한정된 시간이었다. 그래서 내겐 하루도 그냥 허투루 넘길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었고, 그래서 더더욱 부지런히 내 일상들에 충실하고 싶었다. 오전오후 주6일이라는 꽤나 타이트한 근무 속에서도 나는 조금씩 늘어가는 통장잔고들과, 일한만큼 충분히 누리는 쉼,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이 호주에서의 환경덕분에 잘 버텨낼 수 있었다.

 물론 타이트한 근무일정으로 녹초가 돼서 집으로 돌아오거나, 일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들로 힘든 날들은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호주로 온 이후부터 텅 비어있던 내 내면에 단단한 무언가를 쌓고 있는 느낌이었다. 정말 작은 조약돌 같은 경험들이지만, 그것들이 조금씩 탑처럼 쌓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견고하게 자리 잡는 느낌.     


그리고 그 견고함을 받쳐주는 원동력은 - 출근길 나를 비추는 햇살, 푸르름, 동료들과 바쁜 주말디너를 멋지게 쳐낸 뿌듯함, 텀블러에 맥주를 담아 야라강 야경을 보며 친구들과 깔깔거리며 마신 순간, 룸메들과 거실에 모여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았던 사랑스러운 저녁들, 활기찬 선데이 마켓, 엘리자베스 스트릿의 무명아티스트의 피아노 버스킹, 월급 받은 날 산 15불짜리 새하얀 블라우스, 1불짜리 딸기를 득템한 럭키한 날, 오프날 밀크티를 마시며 거실에서 여유롭게 바라본 평화로운 멜버른의 오후....



나는 이곳에서 그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을 수 없는 순간들을 선물 받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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