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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셜리shirley Feb 26. 2021

살면서 누군가에게 인상깊었다는 말을 들을줄이야

-쿠알라룸푸르에서 마지막 승무원 면접

뜨겁다.


딱 그한마디 외에는  말레이시아를 설명할 수 없었다. 그만큼 적도 가까이의 동남아인 이곳의 더위는 강렬했다.  

사실 말레이시아는 그전 에미레이트 면접을 보러오느라 이미 두번이나 와본 곳이었지만 이 더위에는 여전히 적응할 수가 없었다.


호주의 여름과는 다른 습하고 무거운 공기, 쿠알라룸푸르 공항에 내려 시내로 이동하는 내내 적응되지 않는 더위에 가뜩이나 8시간동안 날아온 탓에 피곤한 몸이 더욱더 지쳐갔다.


다행히 승무원 스터디를 하며 친하게 지낸 동생이 말레이시아에 살고 있었고, 기꺼이 자기집에서 재워주겠다고 해서 너무나 든든하고 고마웠다. 동생의 집은 말레이시아 시내에서도 꽤 떨어진 동네여서 쿠알라룸푸르에서 지하철을 타고 30분을 더 들어가야 했다. 지하철로 지나치는 풍경은 사뭇 이국적이었다. 진짜 쿠알라룸푸르에 면접을 보러오다니, 도착하자마자 피곤해서 곯아떨어질줄 알았는데 어쩐지 두근거리는 마음에 쉽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다음날 아침, 이른새벽부터 일어나 면접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내가 한 메이크업중 가장 진한 메이크업이었던 듯 싶다. 에어아시아는 외국계 항공사라서 한국의 단아한 승무원과는 정반대로 굉장히 강렬하고 진한 메이크업을 선호한다고 했다. 사실 나는 진한 메이크업을 살면서 몇번 한적이 없었다. 원래도 그렇게 꾸미고 화장하는것에 크게 관심이 있던 편이 아니라서 내게는 승무원 면접 준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바로 그루밍(외모를 가꾸는 메이크업,헤어,옷 등을 총칭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오늘로서 마지막, 마치 마지막 경기를 앞둔 선수마냥 비장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오늘만큼은 영혼을 끌어모아 그루밍에 최선을 다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드디어 에어아시아 본사에 도착했다.

 본사 입구에는 이미 많은 지원자들이 모여있었다. 면접시간보다 한참 일찍 준비해서 도착했는데도 이렇게 다들 빨리 와 있다니, 모두들 저마다의 열정을 가지고 이곳까지 날아왔겠지. 그 간절함들은 말하지 않아도 알것 같았다.

이번 면접은 일본어 스피커를 뽑는 면접이라 한국인과 일본인들이 온것 같았다. 곧 면접관들이 와서 이력서를 받고 번호표를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한명씩 호명되면 면접관들이 있는 방으로 들어가 면접을 보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내 번호는 9번이었고 긴 대기 없이 면접을 보게되었다. 미친듯이 긴장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담담한 내 자신이 신기할 정도였다.


방으로 들어가자 히잡을 쓴 두명의 면접관과 굉장히 날카롭고 매서운 인상의 다른 한명의 면접관이 앉아있었다. 알고보니 그녀는 승무원 부서의 임원이자 부매니저 그러니까 승무원부서의 제 2인자쯤 되는 셈이었다. 그래서 엄청 긴장될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긴장되지 않았다.

나는 첫인상이 좌우한다는 면접팁이 기억나 웃으며 면접관들에게 악수를 먼저 건네며 인사했고, 바로 면접이 시작되었다.

늘 그렇듯 자기소개, 그리고 내가 가진 강점, 왜 승무원이 되고싶고 왜 우리회사에서 일하고 싶은지를 물어봤다. 이미 백번도 넘게 연습한 답변들이었지만 매번 면접때마다 항상 긴장한티를 숨길수 없었는데, 그날따라 너무나 자연스럽게 답변이 나왔다. 뭔가 정말 대화하는 느낌이랄까.. 아마 호주에서 계속해서 영어를 쓰는 환경이라 나도 모르게 영어로 얘기하는게 그렇게 어렵지 않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면접관들 역시 나에 대해서 정말 알고 싶어하는 느낌이었고, 꼬리질문들 역시 그래서 당황하지 않고 대답했던 것 같다. 일본유학에 대해서도 어떤과목들을 배웠고 너에게 어떤 영향을 줬는지 이런 질문들이었다. 공항에서 일했던 경험도 꼼꼼하게 질문을 받았다.

그리고 내 이력서에 적힌 호주주소를 보더니 너 설마 멜버른에서 여기까지 온거냐면서 놀라는 면접관들이었다. 왜 호주워홀을 선택했냐고 물어보자 나는 영어를 쓰면서 일하면서 경력을 쌓고 싶었고 호주의 서비스경력이 승무원으로 일하는데 도움이 될것 같아서 호주로 워홀을 오게되었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짧게 영어 기내방송문을 읽고, 지금 호주에서 일하는 곳에서 노티스는 언제 내고 조인할수 있는지를 물어보는데, 아직 합격한것도 아니지만 뭔가 희망이 보여서 그순간 얼마나 설렜던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날카롭고 매서운 인상의 면접관이 나에게 건넨 한마디는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You’re so impressive, shirley.
 정말 인상깊었어, 셜리.


그순간 정말 2년반동안 힘들게 준비했던 승무원 준비기간이 결코 헛되지 않았구나, 라고 느껴졌다. 만약  면접에서 비록 떨어지더라고 나는 절대 후회하지 않을만큼 모든걸 쏟아부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딘가 아쉽던 면접과 달리 이렇게 후련한 면접은 난생 처음이었다.




​다시 멜버른으로 돌아갈 비행기를 타기위해 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정말 이제는 비로소 나의 이 오랜꿈을 잘 보내줄수 있을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홀가분한 행복감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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