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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셜리shirley Mar 30. 2021

엄마, 나 합격했어. 그 한마디를 하기까지

- 외로웠던 그 길고 긴 터널의 끝자락에서

말레이시아에서의 나의 마지막 승무원 면접이 끝나고, 다시 멜버른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공항에서 공항 직원이 내게 밝게 인사하며 어디서 오는 길이냐고 묻길래 쿠알라룸푸르에서 캐빈크루 면접을 보고 오는 길이라고, 행운을 빌어달라고 하자 다음번에는 크루로 공항에서 만나! welcome back! 라며 인사를 건네는 그 순간 마음이 따뜻해졌다.  

 멜버른은 그랬다. 아무것도 없이 맨손으로 온 나를 따뜻하게 맞아준 도시. 그리고 어디를 다녀왔든 내게 더없이 따뜻한 곳이었다. 이제는 완연히 여름으로 옷을 갈아입은 듯 청량한 하늘과 햇살은 잘왔어-라며 맞아주는 멜버른의 인사처럼 느껴졌다.      


 다시금 워홀러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오전에는 최근에 구한 세컨잡 카페에서 바리스타로서 트레이닝을 받느라 눈코 뜰새없이 바빴고, 오후에는 원래 하던 한인레스토랑의 웨이트리스일을 마감까지 끝내고 나면 밤12시가 훌쩍 넘었다. 피곤하고 힘든 스케줄이었지만 이렇게 일을 할수 있음에 감사했고, 열심히 살고 있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면접은 끝났고, 결과가 나올때까지  열심히 내 일상에 충실하는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면접을 보고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았던 어느 날. 하루를 마무리하는 저녁즈음, 함께 면접본 지원자 중 연락처를 주고받았던 친구가 연락이 왔다. 지금 회사에서 면접 결과메일이 돌고 있는거 같으니 확인해보라고. 그때부터 미친 듯이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메일을 확인해보자 아직까지 내 메일함에는 어떤 메일도 오지 않았다. 동시에 메일을 돌리지 않아서 그런지 조금씩 시간차를 두고 면접결과를 메일로 받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점점 시간이 갈수록 초조해졌다. 그렇게 30분이 지났다.


다시 한번 떨리는 마음으로 메일을 확인하자 회사로부터 최종면접에 합격했고, 메디컬(신체검사)를 받으러 오라는 메일이 도착해있었다.

눈물이 울컥 차올랐다. 믿기지가 않았다. 늘 꿈꿔왔던 합격메일을 받는 순간이 나에게도 오다니.. 노트북을 붙잡고 한참을 오열했던거 같다. 그리고 가장 먼저 생각난 건 지구반대편에 있는 가족들이었다.      



사실 나는 호주로 오기 전 가족들에게 승무원준비를 관두겠다고 얘기했었고, 더 이상 면접보고 불합격하는 소식을 알리고 싶지 않아서 이번에 말레이시아에 가서 면접을 봤다는 얘기조차 하지 않았다. 실망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는 건 내게 그 어떤 것보다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가 승무원 면접에 합격하면 그 누구보다도 기뻐해줄 사람은 가족이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고 엄마에게 ‘엄마, 나 승무원 면접 합격했어.’ 라는 소식을 드디어 전했다. 전화사이로 잔뜩 물기에 젖은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딸 너무 수고했어.’ 그리고는 한참을 서로 울었다. 그동안 면접보느라 고생한 날들이 스쳐지나갔고 나를 서포트해주며 맘고생한 엄마의 마음 또한 느껴져서 한참을 울었던거 같다.    

  

면접복이며, 학원등록이며, 심지어 면접을 보기위해 유럽까지 건너가는 날 위해 아낌없이 서포트해준건 엄마였다. 물론 그동안 내가 돈을 벌면서 그 비용의 일부를 대긴 했지만 그래도 엄마의 지원이 없었더라면 그 많은 면접을 볼 기회조차 없었을 거다.


승무원 준비가 예상보다 길어지고 계속되는 면접에서 불합격하면서 나이는 차는데 언제까지 승무원만 준비할거냐며 걱정하는 엄마였다. 남들은 번듯한 직장 다니며 저마다 엄마의 자랑이 되는 모습들을 보고 부러워하는 엄마의 모습이 내게는 미안하면서도 너무 힘들었고 그래서 더더욱 한국에 남아있기 힘들었다. 호주로 워홀을 가겠다고 하자 더더욱 걱정하는 엄마였다. 꼭 거기까지 가야겠냐며 더더욱 걱정하는 엄마였지만 어떻게든 호주에서 잘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며 그렇게 떠나온 호주였다.

언제 그렇게 면접준비를 해서 말레이시아까지 다녀왔냐며 너무나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그렇게 끝까지 놓지 않더니 결국 해내는구나, 너무 고생했어. 라며 기뻐하는 엄마의 목소리를 듣자 합격한 사실이 더욱더 실감이 났다.     



이제 남은건 메디컬이라는 최종관문이다. 단순히 신체검사라고는 하지만 이 관문에서도 최선을 다해야 정말 최종적인 오퍼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메디컬 전은 어디까지나 예비합격, 최종오퍼를 받기전 까진 자만해서도 긴장을 늦춰서는 안된다는 얘기였다.      


 모두들 앞서나가 뒷모습조차 보이지도 않아 내게는 너무나 외로웠던 긴 터널, 나만 도태되는 것 같아 불안했던 그 끝이 보이지 않던 터널의 끝이 점점 보이기 시작한다. 비록 예비합격자이기는 하나 내게는 그 어떤 순간보다도 짜릿했던 성취감의 순간을 나는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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