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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셜리shirley Jul 13. 2021

굿바이,멜버른 -사랑할 것들이 너무나 많았던 날들

-승무원면접 최합후 짧았던 호주워홀 마무리하기

  쿠알라룸푸르에서 승무원 최종면접을 본 지 1주일 후, 나는 메디컬 검사를 받기위해 다시 말레이시아로 가는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이번에는 회사에서 주는 직원티켓으로 가는 거라 기분이 색달랐다.

 메디컬은 정말이지 신체검사였고, 끊임없는 대기의 연속이었다. 반나절이 걸리는 시간동안 기본적인 신체검사를 마치고 입사  오리엔테이션 시간을 가졌다. 최종 오퍼는 2주후에 메일로 알려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출  없던 메디컬을 끝내고 다시 멜버른으로 돌아와  인생에서 가장 길었던 2주가 났다. 그리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던 어느 , 나에게 메일 하나가 도착했다.


최종오퍼를 축하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4월 22일부터 시작되는 승무원 트레이닝에 대한 알림과 준비해야 될 서류들이 첨부되어 있는 최종 합격메일이었다. 일하던 도중 핸드폰으로 그 메일을 확인한 순간 또다시 눈물이 울컥 차올랐다.

최종오퍼, 골든콜.

지난 3년간 이 순간만을 얼마나 기다려 왔던지.

      

하지만 동시에 안타까운 소식은, 내가 이 호주워홀을 곧 마무리해야 한다는 거였다. 4월 22일이 조인날짜였기에 적어도 4월 초까지는 한국으로 들어가서 해야할 일들을 처리해야 했다. 내가 최종오퍼를 받은건 2월말, 한달정도의 시간이 남았다는걸 깨닫자 마음 한구석에 아쉬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겨우 5개월남짓의 시간밖에 보내지 못하고 떠나야하다니.  너무나 원했던 승무원이지만, 나에게서 호주워홀 역시도 너무나 소중한 기간이었기에 이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돌아가야 하는 사실이 너무 안타까웠다. 평생 한번 올수 있는 호주 워홀, 이제 나이가 서른이 넘었기에 내 인생의 마지막 워홀이라 그런지 미련이 많이 남을 거 같았다.   

   

그래서 이 워홀의 마지막을 어떻게 잘 보내야 할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사실 돈을 더 많이 바짝 모으고 갈수도 있었지만, 내겐 이 호주를 만끽하는 것이 더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과감히 일하던 레스토랑에 3월 첫주까지만 근무하겠다고 노티스를 내고 3월 둘쨋주부터는 멜버른을 일주일정도 여행하듯이 즐긴 후 골드코스트-브리즈번-케언즈 까지의 2주정도의 여행을 가기로 결정했다. 사실 서호주 퍼스까지도 찍고 가고 싶었지만, 거긴 승무원이 된 이후 레이오버로도 갈수 있는 곳이니 이번은 멜버른에서부터 시작해 케언즈까지 해안을 따라 호주를 여유롭게 여행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케언즈에서 오사카까지의 직항을 타고 마지막으로 일본을 여행한 후 부산으로 귀국하는 게 나의 계획이었다.      


그렇게 계획한 후 시간은 무색하게도 빠르게 흘러갔다.

매일 출근시간 똑같은 시간에 타는 초록색 트램도, 저녁거리를 사러간 마트도, 단골카페의 라떼도 이제는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자 그 모든 것이 애틋해졌다. 나는 그 순간의 찰나들을 조금이나마 더 기억하고 싶어서 사진으로, 글로 남기기 시작했다.     

가고싶었던 사우스 멜버른의 예쁜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고 내가 좋아하던 플라그스타프 공원, 보태닉 가든의 잔디에 누워서 푸름을 만끽하고, 너무나 좋아하던 에드시런의 콘서트에서 좋아하는 노래들을 실컷 떼창하고,  이맘때쯤 열리는 뭄바페스티벌에서 모르는 이들과 함께 음악에 맞춰 춤추고, 빅토리아 나이트 마켓의 그 활기찬 분위기를 오롯이 느꼈다. 워홀이 끝나기전 꼭 가고 싶었던 그레이트오션로드에서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고, 페닌슐라 핫스프링이라는 온천에서는 선셋을 바라보며 원없이 온천을 즐기기도 했다. 한순간 한순간이 너무나 내겐 소중해서 잊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멜버른에서의 행복했던 시간을 뒤로하고, 이제는 정말 떠나야 할 날이 되었다. 짐을 모두 정리한 텅 빈 내 방을 돌아보자 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처음 멜버른에 막 도착 했을 때가 생각이 났다. 이 멀고 먼 땅에 홀로 내던져진 기분이 들었던, 집도 구하기 전의 호스텔에서의 날들. 일자리도 집도 없어 불안했던 그 춥고 어두웠던 시절이 생각났다. 하지만 그 이후로 무슨 복을 받았는지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집과 일자리를 구하면서 빠르게 적응했다. 호주로 오기 전 상처받고 낮아져있던 작았던 내가 점점 회복되고,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내가 너무나 간절히 바래왔던 승무원의 꿈을 이룰 수 있었던 것도 나의 내면과 회복된 자존감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이곳에서 나는 남들의 시선과 판단에서 자유로왔고, 축복받은 자연과 일한만큼의 정당한 댓가와 복지를 누릴수 있었다. 그리고 예쁜옷과 화장품이 없어도 맨얼굴로도 나다니는게 부끄럽지 않았고, 누구보다 마음만은 부유했다. 전전긍긍하며 누구와 비교하며 더 가지려고 쇼핑할 필요가 없었고,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그 일에 대해 아무도 깎아내리지 않아서 좋았다. 좋아하는 카페, 맛있는 음식, 아름다운 공원과 바다,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 그런것들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던 나날들이었다. 사랑할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래서 그것들을 오롯이 누릴 수 있었던 호주에서의 하루하루들은 내게는 더없이 따뜻한 날들이었다.         


아무것도 없이 빈손에 밑바닥부터 시작해야 했던 나에게 참 많은 것들을 안겨주었던,

너무나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었던,

무엇을 해야 행복 할수 있는지 알려주었던

포기하지 않은 꿈을 이룰 수 있게 해주었던.

내 생애 가장 반짝이고 행복했던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던 도시, 멜버른.     

너무나 고마웠고, 또 다시 만나. 꼭 다시 돌아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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