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용석 경영지도사 Nov 08. 2020

영원한 도전자 정주영 회장

† 시작하며


2015년 정주영 회장의 생후 100주기가 되는 날, 그의 일대기를 몇 차례 집필했던 언론인 허영섭氏로부터 故 정주영 회장이 이루었던 업적 및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에 대해 수강할 수 있게 된 것은 개인적으로 무척이나 좋은 기회였다. 나는 이미 직장생활을 약 10년가량 해오면서 언제나 도전을 요구하는 기업, 사회환경 속에서 어떤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직장생활을 해왔던 것 같다. 이번 정주영 회장으로부터 배운 교훈은 내 개인적 삶과 사회생활에 있어 매우 좋은 귀감이 되었다.


그 이유를 지금부터 그의 이야기와 함께 시작해 보고자 한다.


[비가 온 뒤에 땅이 굳어지듯이]

정주영 회장은 강원도 통천군의 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가난하게 살지 않겠다는 의지로 네 번의 가출을 시도하면서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개척하려 하였다. 그도 처음에는 인천부두 등짐 노동부터 쌀가게 배달원까지 산전수전 다 겪은 미생(未生)이었다. 당시 그는 쌀가게, 자동차 정비소 등을 운영하며 생계를 유지하였지만 전쟁 등 정치적, 사회적 요인으로 여럿 거듭되는 사업실패를 경험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긍정적인 사고와 뛰어난 예지력으로, 향후 여러 산업분야의 놀라운 변화를 이끌어낸 대한민국 산업의 역사적인 인물이 되었다. 비가 온 뒤에야 땅이 굳어진다는 말도 있듯이, 그의 실패와 좌절은 미래의 찬란한 성공의 초석을 다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는 언제나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냈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정주영 회장의 말씀이 더욱더 가슴에 와 닿는 이유이다.

나 또한 사실 인생의 밑바닥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하였다. 대학 졸업 후 어려운 가정 형편과 취직할 곳이 마땅히 없어 신발에 들어가는 원단을 운송하는 단순노동부터 시작하였다. 나는 매일같이 공장에서 나오는 제품을 창고나 컨테이너에 운반하는 업무를 담당하였는데, 이런저런 갑(甲) 질에 시달리기까지 하며 육체적, 정신적 고통은 극에 달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힘든 일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인생의 밑바닥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세상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어떤 사소한 작은 것 하나조차도 소중하고 감사하게 여기게 되었다. 그 후로 나는 어느 곳에서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주어진 업무는 버릇처럼 최선을 다하게 되었고, 나의 업무역량을 남들보다 몇 배 더 빠르게 키워 나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시련은 나를 더욱 완성시켜주고 성장시켜 준 훌륭한 스승이었다.



[정주영 회장, 그가 우리 산업에 남긴 큰 업적]

정주영 회장이 대한민국 경제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지 현대를 살고 있는 스무 살 이상의 성인이라면 그가 남긴 유물과도 같은 업적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는 자동차, 건설, 중공업 등 대한민국의 산업 중심에서 국가경제의 부흥을 일으켰다. 대한민국의 후손들이 이만큼 성장하고 잘살게 된 원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는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했고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해 나간 장본인임은 틀림없다. 그가 남긴 유수한 업적을 통해 이미 우리나라는 세계 여러 산업분야에서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고, 앞으로도 우리의 미래를 스스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 없는 길도 만들어가며 끝없이 도전했던 그의 도전정신은 아직도 우리의 희망의 씨앗으로서 현재까지도 대한민국의 미래발전에 큰 의미를 주고 있다.』


[정주영 회장의 성공 비결]

그의 성공기는 대한민국 산업 전반에 걸쳐 수많은 기업의 리더들 사이에서 회자되어 온 것을 몸소 느끼며 직장생활을 해온 것 같다. 즉 그는 중동 건설시장 진출, 88 올림픽 서울 유치, 사우디 주베일 항만공사 및 26만 톤급 대형 유조선 수주 등 기적과도 같은 업적을 남기며 대한민국 산업계의 신화를 창조해 왔다. 나는 정주영 회장의 성공 원인은 바로 그가 사회 초년병 시절부터 이미 두각을 드러냈다고 생각한다. 그는 ‘아도서비스’라는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할 때부터 아무런 속임 없이 정직하게 정비를 하며 고객들의 신용을 쌓았던 점과 1만 개 이상의 자동차 부품의 명칭을 모두 외워 해외 고객들의 환심을 끌었던 사례는 그의 근면, 성실함이 그대로 드러난 부분일 것이다. 또한 전경련 신축회관 공사 등과 같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위기를 기회로 바꾼 사건 등은 언론을 통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의 인생 성공은 얼핏 초라해 보일 수 있었던 그의 유일한 초등학교 졸업장과는 전혀 무관한 것 임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긍정적인 사고, 근면과 성실, 끊임없는 생각과 창의적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 도전과 실험정신, 그것이 바로 그가 성공했던 이유이다.』


[존재의 이유]

몇 년 전 어느 화창한 날, 회사의 한 임원께서 나를 부르시더니 어떤 어려운 도전 과제를 하나 던지면서 했던 얘기가 생각났다. 그는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조건 이번 과제를 성공적으로 완수할 수 있도록”, 당시 나는 그 과제의 갈피를 잡지 못해 잠시 어물거리며 마냥 벽만 보고 있었다. 자신감 없는 나의 표정을 눈치챈 그 임원께서는 단호하게 "이걸 못하면 회사를 떠나야 되지 않느냐? 네가 왜 채용되었고, 왜 여기서 돈을 받고 일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라” 고 직설적으로 얘기를 건넸다. 그랬다, 그 임무는 나의 사명이었다. 그것은 이 조직에서의 내가 존재하고 있었던 이유였던 것이었다. 당시 정주영 회장의 명언이 떠 올랐다. “이봐, 해봤어?” 그때 난 "왜 난 해보지도 않고 우물거렸을까?" 하며 자신감을 찾았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나에게 주어진 과제들을 과감히 도전하게 되었다.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여러 프로젝트에서 승승장구했고 사회 초년 시절의 커리어 하이(Career high) 시즌을 맞이 할 수 있었던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직장생활은 내리막길이 없다]

『직장생활은 언제나 내리막길이 아닌 오르막길이다. 만약 어떤 과제 하나를 성취하게 되면 그다음에는 더 어려운 과제가 주어지기 마련이다.』

언제나 변화를 두려워 말아야 하고 도전적인 자세로 직장생활을 하지 않으면 도태되어 버리기 일쑤이다. 나는 모든 도전 하나하나가 어떠한 경험을 가져다주고, 그 도전의 질이 클수록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큰 도전은 더 큰 경험과 이야깃거리를 만들고 직장생활의 보람과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자신의 이력서(Curriculum Vitae)에 많은 보람과 행복을 실을 수 있는 사람은 후회 없이 직장생활을 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앞으로도 시시각각으로 나에게 엄습해 오는 어떤 직장생활의 험난한 비탈길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도전해 나갈 것이다. 도전은 우리의 심장과도 같아 잠시라도 멈추게 된다면 모든 것이 끝난다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해야겠다.


[기적, 그것은 꿈을 꾸면 된다]

정주영 회장은 자동차 정비공 시절부터 대한민국 자동차산업에 대한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철학은 “그냥 프레임에 엔진을 얹고 바퀴를 달면 차는 만들어진다”라고 간단하게 생각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어쩌면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런 막연한 믿음 하나로 실천에 옮기기는 여간해선 아무나 하기 힘든 일이다. 어쩌면 그는 ‘몽상가’ 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몽상이 비로소 대한민국 자동차산업의 시발(始發)이 되었던 것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꿈을 꾼다는 것” 바로 그것이 기획적인 사고이다. 즉 많은 사람들이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을 될 수 있다고 믿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되게끔 하는 것이다.

사회과학 연구의 과학적 방법론 요건 중 하나는, 모든 연구결과에 대해 "수정 가능성"을 열어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의 대표적인 예가 『천동설』과 『지동설』이다. 지구를 중심으로 모든 별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고대의 절대적 우주관이 순식간에 바뀌게 될지 누가 알았으랴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 이제부터는 모든 것은 꿈을 꾸고 시작하면 된다는 정신으로 매사에 운명처럼 다가오는 수많은 도전을 너그러이 받아들여야겠다.



[정주영 회장의 리더십이 남긴 우리의 과제]

정주영 회장이 가장 싫어했던 것 중의 하나가 “게으름”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게으름을 변명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사람을 제일 싫어했다고 한다. 그는 철저한 ‘현장 맨’으로 어떤 과제 수행 시 직접 확인하고 앞뒤로 꼼꼼히 살피고 준비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그는 모든 업무에 솔선수범은 기본이었다. 그렇다면 그의 리더십이 현대 우리 경제에 남기는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 산업이 상전벽해(桑田碧海)와 같이 부흥기가 있었다면 지금은 성숙기를 거쳐 정체기에 있다. 자원은 부족한데 철강, 반도체, 조선업은 침체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글로벌 환경 속에서 경쟁력은 조금씩 뒤쳐져 수출은 부진하고 이제 우리의 일자리까지 위협받고 있는 이 상황에서 우리가 과연 지금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어느 때 보다 급변하는 모든 변화를 두려워 말아야 하며, 도약을 위한 도전을 끊임없이 지속해야 한다. 이는 곧 국가산업 발전과 우리의 가정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기업의 역할이 가장 크다고 나는 생각한다.


경영학에서 가장 악덕한 기업은 부도덕한 행위를 했다거나, 직원들의 임금을 미루거나, 사기를 치는 기업이 아니다. 바로 '이익을 내지 못하는 기업'을 가장 악덕한 기업이라고 정의한다. 즉, 이익 추구 집단인 기업의 리더들은 정주영 회장의 사업철학과 그가 여러 산업현장에서 발휘한 리더십(Leadership)을 거울로 삼고, 산업 전반에 걸쳐 전체적인 관점으로 경영을 진단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여 기업 이윤추구에 있어 선구자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기업은 그 리더들을 지지해주고 후원해 줄 수 있는 팔로우십(fellowship)을 고양(高揚)하여 전 구성원이 같은 배에 탔으며 같은 목적지를 향해가고 있다는 '공동체 의식'을 제고해야 하지 않을까?


† 맺음말

이번 특강을 통해 나 자신은 물론, 내가 속한 조직과 회사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현대는 '글로벌리티(Globality)'라는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서 드넓은 시야와 새로운 아이디어로 변화, 혁신을 계속해서 시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다. 이것이 경영진이 금번 특강을 개최한 이유 일 것이다. 이제는 우리의 단기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그 어느 때 보다 우리 조직 구성원 하나하나는 그것을 제대로 인지하고, 선택된 목표를 향해 집중해야 할 시기이다.

이제부터 나는 정주영 회장의 리더십을 본받아, 현재 나와 같이 소속된 팀원들 모두가 조금 더 자율적인 분위기에서, 서슴없이 본연의 업무를 통해 작은 도전과 작은 성공부터 성취해 나갈 수 있는 조직문화를 이끌어 가고 싶다. 또한 나는 더 큰 세상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할 것이다. 과거 정주영 회장이 신문 하나를 보기 위해 매일같이 10km의 거리를 걸어 다녔다는 일화도 있듯이, 나부터라도 각종 신문, 글로벌 이슈, 경제상황 등을 좀 더 면밀히 살펴볼 줄 알고, 편향되고 편협한 생각을 벗어던져 전체적으로 생각할 줄 아는 인재가 되어야겠다.

현재 우리가 꿈꾸고 있는 비전과 우리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조직의 미션을 다시 한번 되짚어보고 성공을 위한 작은 실천부터 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더 큰 꿈을 바탕으로 미래 모두가 더욱 발전된 행복한 삶을 영위 하기를 앙망(仰望) 한다.



창 밖으로 보이는 맑은 하늘이 참 담백하다.
정주영 회장이 현재도 살아 있다면 과연 그는 또 어떤 진귀한 도전을 시작하려 했을까? 천고마비의 계절에 깊은 사고(思考)를 하게 되는 시간이다.
작가의 이전글 노을처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