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부른 소크라테스가 되자

by 슈퍼노바

가치란 도대체 무엇일까? 네이버 사전에 '가치'라 쓰고 그 의미를 찾아본다. 한자어로는 價値(가치)인데 둘 다 '값'을 의미하는 한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치의 의미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경제학적 의미로서의 가치와 철학적 의미로서의 가치이다. 보통 우리가 말하는 가치는 전자에 해당한다.


한 때 나는 '유물론', '물신성'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았다. 문득 내가 군대를 제대하고 대학에 복학했을 때, 한 교수가 했던 말이 생각이 났다. 그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오셀로를 가르치고 있던 중, 잠자는 학생들을 깨우기 위해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여러분들은 사랑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학생들은 지루함과 몽롱함 가운데서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 큰 고민 없이 비속어를 포함한 용어들로 가볍게 내뱉었다. 그러자 교수는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만의 답변을 늘어놓았다.


'여러분, 사랑이란 서로에게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그 감사하는 마음은 물질에서 옵니다. 저는 물질 주의자입니다.'


그의 답변은 아주 현실적이면서도 한 인간의 감정에 대한 냉혹한 가치의 상실이었다. '인간의 감정이 물질에 지배되다니...' 나는 그 이후로도 물질과 정신의 선후관계나 영향에 대해 그렇게 따져보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최근 '뇌과학'이라는 지식을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다양하게 접하게 되면서, 인간의 마음과 감정은 심장(Heart)에 있는 것이 아니라, '뇌'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사람의 감정, 마음, 생각은 1.4킬로그램의 뇌 속의 수천억 개나 되는 뉴런이 만들어 내는 산물일 뿐이었다. 나의 뇌 속세포라는 물질들은 전기적, 화학적 작용으로 나의 감정을 다스린다. 우리가 술을 마시는 행위도 뇌에 영향을 주어 감정을 변화시키는 것 중의 하나이다. 뉴런의 돌기들이 연결되는 구조를 시냅스(synapse)라고 하는데 술을 마시게 되는 경우 알코올이 시냅스 사이로 침투 해 뇌의 신경세 포간 정보교환을 방해하는 것이다. 즉, 술에 취하거나 일시적으로 기억을 소실하게 되는 것이다. 술에 취하면 없던 자신감도 생기게 되고, 평소에 알고 있던 자아의 파괴를 경험하게 된다. 술 먹고 다음날 항상 듣는 레퍼토리는 '술김에 그저 실수한 것일 뿐입니다.'라는 말이다. 어느 순간 나는 감정보다 물질이 먼저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편안함 마음을 얻기 위해 정신과 의사가 처방해주는 약물도 일종의 그런 것이었다. 친구들 간의 섭섭함과 고마움도 대부분 물질에 의존하고 있었다.


나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인 오셀로라는 흑인 장군의 이야기 속에서, 교수는 왜 ‘물질'이라는 단어를 이야기했었는지를 시간이 꽤 지나서야 이해했다. 오셀로라는 흑인 장군은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 데스데모나를 몇 가지 물질만으로 스스로를 오해의 함정에 빠뜨려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


유물론이란 것은 그저 '물질이 만능이다'라는 단순한 메시지를 전해주는 것이 아니다. 나의 삶과 주위의 많은 사람, 과학, 자연 그리고 우리 사회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게 해 줄 수 있는 철학이다. 혹시 '진심으로 사랑했던 인연과 결별한 적이 있는가?' 오래전 있었던 사랑은 이미 '죽었다'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것도 이 유물론에 비추어 볼 때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래서 물리적인 거리가 멀어져, 오래전 좋았던 인연들과도 관계가 끊어지거나 소홀하게 되는 경우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나에게 주었던 여러 인연들과 함께 만들어낸 철학과 의미는 현세 속 나의 삶을 이루어낸 변증법적 관계일 것이다. 그러므로 물질과 철학, 이 둘의 공존에 대한 존중을 나는 받아들여야 했다.


얼마 전 나는 취업을 목표로 여러 기업에 도전하고 있는 취준생(취업준비생)들에게 희망의 조언을 전하기 위해 강의에 나섰다. 이 강의 주제는 '어떻게 하면 취업을 잘할 수 있어요?'였다. 나는 이 강의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지도를 해야 한다는 의욕에 앞서 그만 '취업=물질'로만 생각하여, 참석한 수강생들에게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을까?'로 주제를 왜곡하여 강의를 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끄럽기 그지없다. 나 또한 이 '유물론'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채 강의에 나선 것이었다. 취업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은 맞다. 그러나 직장이란 생태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개인들의 독특한 삶의 가치를 쉽게 외면한 것이었다. 취업을 통해 삶의 가치를 발견하고 성과와 보람의 기쁨을 말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뒤늦게 밀려왔다.


19세기 영국의 대표적인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의 이야기를 적용해보면, 인생의 기쁨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것”에 있다. 그래서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물질이라는 것에 너무 집착하거나 혹은 물질을 너무 외면하여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려는 것은, 이 세상 모든 인간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인생 기쁨의 총량 중 절반을 훼손하는 게 아닌가 한다. 삶이란 철학적 가치도 물질이란 것에 얹혀 생을 더욱 아름답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전 07화직장인들에게 주어진 창과 방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