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용석 경영지도사 Jan 08. 2021

우리 회사는 보수적이야

"우리 회사는 보수적이기 때문에..."라는 표현은 여느 기업에서나 들리는 이야기이다. 나도 직장생활을 약 15년간 해오면서도, 어느 회사가 진보적이라는 이야기를 거의 들어보지 못한 것 같다. 그렇다면 진보와 보수의 정확한 뜻은 무엇일까? 유시민 작가의 책에서 보수는 '진화적으로 익숙하고, 생물학적으로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표현했었다. 그렇다면 보수는 변화를 싫어하고, 이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유, 무형의 어떤 가치를 놓치지 않으려는 본성이 아닐까? 진보는 보수의 반대말은 아니다. 다만 진보는 생물학적이나 진화적으로 덜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것일 수는 있다. 그래서 진보라 하면 그 독특한 낭만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몇 년 전 하프마라톤(21.0975km)을 완주하기도 했고, 무더운 여름날 자전거를 타고 하루 100km를 넘는 4대 강 종주를 강행한 적도 있다. 돌아보면 그곳에는 나름의 낭만과 추억이 있었다. 그것은 신체의 생물학적인 편안함을 거부하며 얻은 행복감 그 자체였다. 하지만, 섭씨 40도가 넘는 한 여름날, 소파에 앉아 에어컨 바람을 쐬며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에서도 충분한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진보든, 보수든, 사람은 자신만이 추구하는 삶 속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회사의 경영진은 성장과 발전 그리고 생존을 위해 직원들에게 '혁신'을 부추긴다. 치열한 경쟁적 속에서 자신만의 익숙함만을 찾는 것은 도태의 지름길이다. 노키아(Nokia)가 그랬고, 대한제국이 그랬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 경영진은 보수를 파괴하려 든다. 그러나 인간의 보수성향은 시간이 갈수록 강해지고, 그들만의 성역(聖域)을 이룬다. 이들은 강렬한 노동조합 일 수도 있고, 그저 그런 조직원일 수도 있고, 형편없는 꼰대일 수도 있다. 그래서 기업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항상 보수와 진보의 힘겨루기가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기업에서 보수가 되는 사람은 주로 누구 일까? 나는 이 질문에 대해 나름의 경험칙으로 정성적인 답을 내렸다.


보수적인 그들은 대개 편안한 환경 속에서 직장생활을 이어오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대개 그들은 하나의 업무나, 하나의 조직에서 비슷하거나 같은 업무를 오래 해온 사람들이다.


보수적인 성향의 사람들은 직장에서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고, 큰 굴곡 없이 정해진 업무를 통상적으로 오래 수행해오던 집단의 조직원들이 많았다. 그들은 변화를 거부한다. 말의 첫마디는 대개 부정어로 시작된다. 이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진화적인 자연스러움일 수 있다. 그러나 보수적으로 되는 이유는 '오직 그것만'을 고집해서 일 수도 있다.  인간은 누구나 나이가 든다. 나이가 들고 약해지면 보수적으로 변하게 된다.

진보적인 사람들의 성향을 살펴보면, 남들과 다른 어떤 자원이 있다. 그것은 지적인 능력 일 수도 있고, 체력일 수도 있고, 통장의 잔고 일 수도 있고, 자판 두들기는 속도일 수도 있다. 자원이 없으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지키려는 성향은 더욱 커진다. 그렇기 때문에 보수는 더욱 치열하게 사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보수의 반대말을 '자유'라고 표현하는지도 모르겠다.


기업이란 주주와 그 관계된 이해관계자들의 자본주의를 위해 20대 젊은 청춘부터 아버지뻘 나이가 되는 사람들이 책임과 역할을 부여받고, 오직 기업의 이익만을 위해 근로하는 삶의 공동체이다. 이들은 노역, 노동, 근로, 열정, 근무라는 다양한 표현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이 시간이 갈수록 보수적이 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지나친 보수는 조직을 조금씩 썩어가게 한다. 반면 지나친 진보는 조직기반을 단번에 파괴해 버릴 수도 있다.


말라버린 자원, 고갈된 열정, 텅 빈 통장, 이직의 두려움, 이 모두가 그들을 보수로 만드는 것이다. 대기업에서 대거 신입사원을 채용하는 일과 오래된 근로자를 집으로 보내야 하는 일도, 일종의 보수와 진보의 충돌이라고 볼 수 있다.




나의 일상의 삶 속에서도 보수와 진보는 나의 내면 속에서 항상 충돌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필요한 카드를 꺼내 들뿐이다. 기업에서 보수적인 사람들로 인해 받은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인 상처도, 진보적인 것으로부터 멀어지고 싶은 심정과 불안도, 어찌 보면 나 자신과 기업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21년 1월 남부지방에 을씨년스럽게 흩날리는 눈보라를 바라보며, 과거에 순수했던 마음과, 앞으로도 순수하길 바라는 마음은 이러한 복잡한 감정을 다소 사그라들게 한다.


작가의 이전글 Black Bird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