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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석 경영지도사 Jan 24. 2021

메르세데스 벤츠를 타고 출근합니다.

중소기업 카푸어의 소소한 일상

눈이 부시게 아침이 밝았다. 오늘도 어김없이 출근을 하기 위해서 준비를 한다. 도심 속 고층아파트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세상은 마치 바닥에 떨어뜨려진 달콤한 사탕 주위로 향하는 개미떼들의 행렬과 흡사하다. 이곳은 개미들과 함께 모터를 달고 움직이는 거대한 쇳덩어리들의 치열한 행군도 이어진다. 그 속에선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 질서가 작동하고 있다.




나의 삶은 멋지다. 그리고 훌륭하다. 나는 멋진 사람이다. 명품 슈트를 입고, 명품 시계, 명품 구두는 나의 삶이다. 나는 이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길 원한다. 어느 조직에서건 인격으로도 인정을 받을 것이며, 누구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질 것이다.









출근 전, 집안 거실에서 즉석에서 만들어지는 스타벅스 못지않은 커피를 나 홀로 내려 마신다. 나의 인생을 몇 가지 단어로 표현하자면 '고급', '프리스티지', '노블레스', '명품' 등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오전 8시, 드디어 나도 저 개미들의 행렬의 가담할 시간이 왔다. 그러나 30대 초반인 나의 출근 행렬은 뭔가 좀 특별하다. 남들의 부러움과 시선을 한 몸에 받아야 한다. 나의 고품격 라이프스타일은 TV 언론에 보도될 듯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과 관심을 가질 것이며, 이 사회 속의 지위는 업그레이드되며, 남들이 가질 수 없는 특별한 권리와 권한을 부여받게 된다.


나의 차가 고속도로에 등장하는 순간, 도로의 모든 신호체계는 나를 위한 것이 된다. 나의 미세한 움직임은 다른 차량에 두려움이 된다. 나의 거칠고 과감한 질주는 다른 운전자들의 경적의 침묵을 유발한다. 아무나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풍기며 나는 나만의 길을 간다. 



드디어 회사 앞에 도착했다.






약 15분을 달려, 회사에 도착한다. 아침 일찍 납품차량들이 공장동 적재장을 가득 메우고 직원들의 주차장을 꿰차고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내 소중한 차량을 어쩔 수 없이 길가 도로가에 주차를 할 수밖에 없다. 벤츠는 승차감보다 하차감이라고 하지만, 이 공단 주위에 보이는 사람들은 마치 좀비처럼 허겁지겁 달려가는 모습들 뿐이다. 다들 '출근 시간 20분 전 책상에 앉아 있어라'는 사장님, 혹은 직장상사의 충고 때문인가?, 매서운 레이더를 피해 무언의 위험이 주는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 무사히 자신의 책상에 열심히 일하고 있었던 것처럼 안착하는 것이 제일 시급한 과제인 것이다. 


거리는 사장님들의 주머니를 채워줄 물품들을 싣기 위해 납품차량들이 즐비하게 늘어섰다. 이 도로가의 한편에 나의 벤츠는 욕망의 공장 굴뚝이 내뿜는 연기와 하늘에서 떨어지는 기름 부산물을 그대로 마주 한다. 지나치는 차량들의 매연과 먼지, 간혹 무쇠 로봇과도 같은 덤프트럭의 투박한 강철 주먹이 나의 벤츠를 무심히 훑고 지나가기도 했다. 짧은 출근시간의 짜릿함을 감수하기에는 벤츠는 왠지 모르게 빨리 늙어가는 듯하다.





나는 00 중소기업 영업부 주임이다. 출근하자마자 상사의 큰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봐, 이주임, 20분 전에 출근해라고 했는데 지금 몇 시야? 오늘 납품할 물건 다 챙겨놨어? 얼른 작업복 하고 안전화 신고 현장 가서 확인하고 보고해!"


탈의실이 없어 탕비실에 들러 환복을 실시한다. 회사 작업복은  특별한 게 있는 게 아니라 몇 년 전 회사 체육대회 때 받은 알록달록한 색상의 등산복이다. 나는 현실세계로 돌아온 것이다.


사실, 나는 이 조직의 KGB 요원이다.



과거 냉전시대 러시아 KGB 요원처럼 감시, 첩보, 비밀업무 등을 수행하지는 않는다. KGB는 한국말로 '개잡부'라고 볼 수 있다. 러시아 KGB와 비교해 볼 때 어떤 종합적이고 특수한 업무를 수행한다는 공통점은 있다.


흔히 말해서 개잡부는 아침에 출근을 하며 국/내외에서 수신한 메일들을 접수하고 회신을 준다. 오늘 납품하기로 한 물량 준비가 되었는지 현장에 내려가서 포장 지시를 하고 배차를 한다. 납품차량이 도착하면 지게차로 팔레트 단위로 적재를 한다. 적재가 완료되면 사무실로 와서 출하와 판매 처리를 완료하고, 현장에 가서 재고현황을 확인한다. 가끔 현장 직원 결근이 생기면, 곧바로 라인에 투입되어 생산을 한다. 설비가 고장 나면 직접 기계를 고치기도 하고, 투입될 소재가 부족하면 직접 업체로 달려가서 물건을 공수해오기도 했다.


오늘은 납품한 물량이 불량으로 부족해서 긴급 출고를 해야 하는 상황이 놓였다. 회사에 가용하는 납품차량이 모두 밖에 나가 있어 어쩔 수 없이 나의 '벤츠'의 뒷좌석에 싣고 가야 한다. 차량 안은 순식간에 그리스 냄새로 진동을 하고, 시트에도 무거운 중량물로 구겨지기 시작했다.


납품물량으로 꽉 찬 뒷좌석, 이 차는 나의 삶을 나타내 주는 '벤츠'이다.


내가 추구하는 삶의 소중함과 행복이 짓밟히는 기분이다.



물량 공급을 위해 고객사 자재창고 앞에 도착했다. 여러 장의 A4지 물품 리스트가 놓인 클립보드를 한 손으로 들고 잔뜩 불만 어린 눈초리로 내 차의 동선을 주시하고 있는 고객사 신입 자재 관리자가 보인다. 


나는 차량에 내리자마자 90도로 그 담당자에게 인사를 건네지만, 그 고객사 자재 담당자는 인사를 받아주기는 커녕 거드름일 피우며 면박을 주기 시작한다. 그는 일단 물품을 컨테이너에 바로 실어라고 지시한다. 뒷좌석에 실려있는 물품을 나 혼자 옮기는 데는 여러 차례 왔다 갔다 해야 할 상황이지만 이 자재 당자는 여전히 팔짱을 끼고 나의 노동력의 성실함과 신속함을 삐딱하게 감시하고 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자재 담당자는 내가 나온 고등학교의 3년 후배 녀석이었다.


녀석도 나 같은 협력업체 벤더 직원들을 무작정 갈구라는 지시를 상사로부터 받았을 것이다. 

그래야 나 같은 협력사 놈들이 말도 잘 듣고, 그 담당자가 편할 거라고....


물건을 나르는 동안 마치 봉건시대 지주에게 감시당하는 노예가 된 듯하다. 적재가 끝나면 그 녀석의 2차 면박이 이어진다. 자존심은 구겨질 대로 구겨졌고, 이건 아니다 싶어 진짜 한번 부딪혀야겠다는 생각이 들 즈음에 문자 한 통이 날아왔다. 



나는 어찌 되었던 이 상황을 감수해야만 한다.
한쪽 방향으로 꺾인 권리를 다른 방향으로 구부리는 것은
현실세계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상사는 수고했다는 말보다. 발생한 문제에 대해 나의 과오만을 이야기할 뿐이다. 거래처에서 당한 그 수모에 이어 내가 기댈 직장이란 곳에서도 맹렬한 비난만 있을 뿐이다.

어디에도 내편이 없다. 이것이 보통의 중소기업 현실인가?


낮은 자존감, 한마디로 말해 내 인생은 'C'급 인생이다. 업무를 끝내고 어둑해진 밤거리를 헤집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내가 바라는 삶이 무척이나 훼손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내가 느끼고 싶은 짧은 순간의 행복도 나에게는 중요하다. 

'금융자본주의', '가치투자', '노후대비', '저축', '투자'

모두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오늘 하루의 내 삶도 중요하다. 


나는 그물에 걸려 자본주의 양식장에서 길러지고 있는 한 마리 물고기일 수 있다.

내 삶은 항상 '낚임'의 연속 일 수도 있다.


하지만 너무나도 큰 세상을 보려고 할수록, 치열한 경쟁을 이겨 내려고 할수록

내 삶은 피곤해진다. 오히려 그것이 내 삶의 행복을 더욱 옥죄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선택한 행복은 필연적 경쟁을 멀리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벤츠를 타는 것이다.




주말이면, 나를 설레게 하는 여인이나 친구들을 만나, 고급스러운 일상과 행복을 상징하는 

벤츠와 함께 하는 것이다. 내가 감수해야 했던 수모는 그저 나 홀로 받아들이면 된다. 

차량 뒷좌석에 가득 실려있었던 그리스로 무장한 열처리된 쇳덩이들이 남긴 자국도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누군가에게 행복을 주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있어서는 삶의 기쁨이다. 결혼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삶이 속임수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생각이 점점 깊어지는 가운데,

벤츠의 고급스러운 콕핏 모듈에서는 갑자기 연비 부족 시그널을 보낸다. 



'에라이, 기름도 부족하네'


기름을 가득 넣고 싶었으나 오늘 문자에 찍혔던 잔액을 확인했기 때문에 창문을 내리고 겸손한 자세로 외친다.


아저씨, 만원치 넣어주세요



다시 시동을 켜고, 우렁차게 시작하는 차량 엔진 소리가 왠지 웃프다. 그래도 앞으로 행복한 사람들을 만나서 보낼 시간을 생각하면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진다.


나는 내일도 벤츠를 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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