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과 함께 매일 출퇴근하던 규칙적인 생활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졌다. 출근도 퇴근도 식사 시간도 따로 없다. 24시간이 나의 것이다. 젊은 시절부터 그토록 바라던 소망을 이룬 셈이다. 그러나 나의 뇌는 계속 시간과 싸우고 있다. 초등학교 입학해서 대학 졸업 때까지 학교 생활 16년, 교사 발령받아 또 30여 년 넘기며 이어진 규칙적인 생활 습관은 쉽게 변할 수 없나 보다.
알람이 없어도 아침 6시면 잠이 깨고,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출퇴근을 그만두고 꽤 시간이 흘렀는데 나의 뇌세포에 입력된 회로 때문에 일하지 않아도 일하는 것 같은 피로감에서 헤어나질 못한다. 늦잠을 자며 이불속에서 게으르게 뒹굴기를 얼마나 고대했는데,그것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도 시간 흐르고 서서히 불규칙한 생활이 조금 익숙해질 즈음인터넷 여행카페를 검색하다가'미국 동서 횡단'이라는 글자가 눈에 훅 들어왔다. 아메리카 동서 횡단은 내가 오래도록 꿈꾸던 여행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장기간(24일) 캠핑여행이다.캠핑여행이라고. 나는 그때까지 미대륙 동서 횡단을 꿈꾸긴 하였으나 캠핑여행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았고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2016년, 그때는 지금처럼 캠핑카가 보급되기 전이고 어쩌다 캠핑카를 타고 전국을 다니는 이들이 방송에 출연하던 때이다. 호기심이 발동했다.
한참 여행 일정과 장소를 훑어보고여행을 신청했다.그런데 괜찮을까. 캠핑카에서 먹고 자고 여행한다니 호텔에 묵어도 힘든 해외여행을 캠핑카로 끝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생겼지만 도전해 보기로 맘먹었다. 50대 후반, 그 나이에 웬 캠핑여행이냐고 주위에서 걱정도 했지만, 미서부 대륙을 단순한 패키지여행으로 지나치기에는 너무 아쉬워 잠시 고민 끝에 선택하였다.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으나일반인의 해외여행이 전혀 불가능했던 1980년대부터나는 늘 입버릇처럼 언젠가는 세계 여행을 떠날 거라고 중얼거렸다. 어린 시절 김찬삼 교수의 세계 여행기는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였고 그가 무척이나 부러웠다. 그의 세계여행기는 지금은 고서가 되었지만 아직도 나의 책꽂이에 꽂혀있다. 나도 언제나는 이루리라. 그러나바쁜 일상 속에서마음은 세계를 날아다녔지만해외여행은 늘 나의 뒷전에 머물렀다. 늦은 결혼과 육아로 어미로서의 역할은 쉴 틈을 주지 않았다. 특히 결혼 전과 결혼 후의 생활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아이를 낳고 키우며 직장 생활을 하는 여성들이 겪는 고단함과 갈등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른다.
그래도 나름 잘 버티었고 아이들도 걱정했던 것보다 잘 성장하였으니 이제 나의 의무를 잠시 내려놓고 무리인 줄 알면서 캠핑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가족과 함께가 아닌 혼자 떠나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기회가 있을 때 날아 보고 싶었다.
2016년. 4~5월에 걸쳐 캠핑카로 미국 대륙을 횡단하였다. 태어나서 가장 호사스러운 여행을. 사실은 호사라기보다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눈 뜰 때마다 나름 힘든 고~생~길이기도 했지만,여행분위기를 한층 업그레이드시켜 준 처음 만난 훌륭한 여행 멤버들과생소했지만 잊을 수 없는 여행을 경험했다.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끝이 보이지 않는 직선도로, 미국 대륙 중앙의넓은 평원, 이동할 때마다 만나는 다양하고새로운자연, 캠핑카와 캠핑장, 미국와인과 맥주, 현실을 뒤로한 끝없는 나그네 길, 다양한 지형과 기후를 보이는 아메리카 대륙은 상상 이상의 신선한 충격이었다.
□ 횡단 일정
* 기간: 2016년 4월 27일 ~5월 20일
* 코스 : 로스앤젤레스(IN)-서부 국립공원-시카고-뉴욕(OUT)
* 캠핑 여행 : 여행카페 신청자 & 현지 캡틴 2명(운전 및 안내). 트레일러는 캠핑장에 고정시키고 사륜 지프차로 관광 및 트레킹을 이어감(6명씩 2개조로 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