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가장 싫어했던 것을 만들어보고 싶어졌다

by 유성

초등학교 가정통신문에는 매번 짧은 글자가 집으로 날아왔다. ‘쉽게 주의가 분산되고 집중력이 산만하다’ 그런 탓에 집에서 회초리를 자주 맞고는 했다. 초등학교의 생일 편지에는 떠들지 말고, 덜 웃고, 장난을 조금 줄이라는 말만 가득했다. 그런 내게도 가장 조용할 때가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책상 위에 두 손을 올리고 글을 쓸 때였다. 글짓기를 해서 상을 받은 기억이 있지만, 어떤 글을 썼는지, 잘 썼는지, 못썼는지, 주제가 무엇이었는지, 아무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지금 돌이켜보면 글을 잘 써서 상을 받았기보다는 얼떨결에 받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초등학교 시절, 싫어하는 것이 여러 개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다름 아닌 ‘책’이었다. 잘못을 저지른 후 거짓말이 들통나기 싫어 입이라도 맞춘 것처럼 어른들은 모두 내게 똑같은 말을 내뱉었다. ‘책을 많이 읽어야 돼. 그래야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어. 알겠지?’ 자의적 행동이 아닌 강제적으로 책을 읽게 하였고, 그로 인해 책에 대한 반감이 더 쌓이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 부모님의 선택으로 인해 방과 후에 ‘속독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책상에 앉아 글을 빠르게 보는 연습을 하였는데 한 시간의 수업 시간은 마치 국방부의 시계 같았다.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중학교에 들어가고도 1년에 책을 한 번 사서 읽을까 말까였다. 그렇다고 고등학교 때는 달라졌을까?. 어찌 보면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여느 때와 같이 무료함을 느껴 책이라도 한번 볼까,라는 마음으로 도서관에 찾아갔더니 그곳에서 예상치 못하게 사랑을 싹 트위 한 여자를 보기 위해 매일 도서관에 찾아가 억지로라도 책을 읽었으니. 그렇다고 해서 집중해서 보았을까? 결코 그렇지 않았다. 읽는 둥 마는 둥 읽었고 온통 신경은 한 여자에게 쏠렸으니.


그 정도로 가장 싫어했던 '책'.


어느 순간부터는 가장 싫어했던 것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기 시작했던 것은 아마 군대를 전역하고 25살 때 즈음이었을 것이다. 휴대전화기를 꺼내 메모장에 느끼는 감정들과 생각들을 일일이 기록했다. 별것 없었다. 행복할 때는 이 행복이 오래 유지되었으면 좋겠다고 기록했고, 슬플 때는 이 슬픔 속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기록했으며 사랑의 아픔을 느낄 때는 그때의 감정을 글로 고스란히 적었다. 또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가벼운 발걸음 속에 묻어나는 책임감의 무게에 짓눌려 느끼는 아픔과 슬픔과 같은 어두컴컴한 감정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기록해 나갔다.


여태껏 내가 썼던 글 대부분은 나를 위로하기 위해 쓴 글이었을 것이다. 하나, 시간이 지난 지금은 힘들어했던, 기뻤던 경험들을 통한 나의 글이 누군가에게 긴 여운을 남기고, 한 편의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쓴 글이 모여 책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마음 한편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에게 내가 글을 쓴다거나 책을 내보고 싶다고 이야기하면 고개를 돌리고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코웃음 치던 사람도 있었고 '네가?'라며 비웃는 사람도 많았으며, '글 써서 돈 얼마나 된다고 글을 쓰냐?'라는 말도 듣기도 했지만 나는 그들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책을 낸다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소박한 꿈일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간절한 꿈이 되었다.


인생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아 몇 개월, 몇 년이 걸리지는 모르겠지만

훗날 만일 당신이 이 글을 종이책으로 보고 있다면 글에 대한 꿈은 이루어졌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이루어졌다. 그러니 당신도 이 글을 통해 용기를 잃지 않고 살아가길 바란다.

어떠한 바람이 불어 흔들린다 할지라도 꿋꿋하게 자신을 믿고 나아가기를.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다시금 다짐을 내뱉는다

'그래 나도 종이책을 한번 내보자!

누가 뭐라고 해도 나의 책을 꼭 만들자!'





글을 쓴다는 것은 고귀한 작업이며 막중한 책임감이 따른다.
간절한 이에게는 글 한 줄이 인생을 좌지우지하기 때문에.


keyword
작가의 이전글두려움이란 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