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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시아 Dec 28. 2022

외국어에 대해서

2022.12.27

2023년에는 외국어를 배우는 것에 대해 조금 더 꾸준히 쓰고싶다. 외국어 배우는 일은 내가 사랑하는 일이며 나름 잘하는 일이니까. 여태까지 나는 영어, 일본어, 그리고 독일어를 배웠다. (심지어 독일어는 영어로 배웠다.) 그 외에도 중국어와 프랑스어를 약간 배웠다 (아랍어도 대학 때 잠깐 듣다가 포기했다). 앞으로는 터키어나 폴란드어가 배우고 싶다. 독문학 연구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지난 학기, 독일어 교육학 수업을 들으며, 나와 외국어 사이의 관계를 재조명했다. 나는 한국에서 한국인 부모님에게 태어나 한국 사람으로 18년 가까이 자랐다. 당연히 내 모국어는 한국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새는 영어로 글을 쓰는 게 훨씬 편하다. 외고 유학반을 다니며 청소년 때부터 영어를 가까이 했고, 미국 대학을 나와 이제 미국 대학원을 다니고 있으며, 친구들과도 와이프와도 영어로만 대화하니까. 한국에 이메일이라도 쓸 일이 있으면 네이버 영어사전은 필수다. (이 글을 쓰면서도 당연히 필요했다.) 교수님께 "전 외국인인데요" 라는 말을 꺼내면 놀란다. 학생들에게 "난 미국인이 아닌데" 라고 말하면 역시나 놀란다. 하지만 이렇게 숨쉬듯 영어를 해도 모국어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나는 지금 다니는 미국 대학에서 영작 강의를 할 수 없다. 조금이라도 문법이나 발음 실수를 하면 그건 내가 어딘가 모자란 외국인이라는 증거가 된다. 같은 실수를 영어가 모국어인 우리 학생들과 과동기들은 해도 되지만. 


그런 의미에서 내게 영어는 양날의 칼과 같다. 한편으로는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너무 쉽게 마음껏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미국에서 외국인으로 찍히지 않고 잘 동화되어 살 수 있게 도와준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내게 늘 상처를 줬다. 조금만 실수를 해도, 하나라도 모르는 말이 있으면, 역시 나는 이방인이고 그래서 안된다는 걸 일깨워줄 여지가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말에 대해 모질었던걸까? 나는 자주 "이 번역이 맞아?" 라는 질문을 듣는다. 영한번역이나 한영번역이나 둘 다. 뇌리에 가장 먼저 스치는 답은 "아니." 나라면 저렇게 번역하지 않았을텐데, 이건 뭘 몰라서 이렇게 번역한 것 같은데, 비판하고 싶은 마음이 제일 먼저 든다. 너'도' 어딘가 부족한 점이 있을거야. 기다려. 


비슷한 마음을 독일어 교육학에 들고 갔다. 내 독일어는 진짜 영어에 비하면 한참 부족하다. 당연하게도. 어른이 되어서 배웠을 뿐 아니라 배운지도 얼마 안되었고, 쓸 일은 거의 없으니까. 적어도 독일어를 모국어 뺨치게 해야 독일어를 가르칠 수 있는 것 아닐까? 하지만 이런 내 선입견을 교수님께서 시험대에 올렸다. 모국어라는 개념 자체가 그저 국수주의의 잔재일 뿐 아니라, 만약 모국어 화자의 특권이 있다면 외국어 화자의 특권도 있다고. 


맞는 말이다. 외국어 화자가 느끼고 쓰는 언어는 모국어 화자와는 너무 다르다. 언어를 정형화 시키려는 사람들은 이 다름을 '틀림'이라고 강요한다. '틀림'을 정하는 잣대는 길어졌다 짧아졌다 제멋대로다. 나는 여태까지 그 잣대에 맞춰 내 언어를 늘렸다가 줄였다, 장단을 맞춰주려 노력했다. 늘 실패했지만. 또 그 불공정한 기억을 토대로 남의 언어를 멋대로 재단해왔다.


이제 그만. 이제 나는 외국어 화자의 특권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 움직이고 진화하는 언어를 잠시나마 품은 사람으로서 글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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