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긋지긋했던 무더위가 가고 가을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이렇듯 해마다 변함없이 찾아오는 계절을 아무도 막을 수 없다. 이러한 시간을 보내면서 그동안 미처 알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된다.
그중 한 가지는 태어남의 기쁨은 잠시이고 그것이 곧 죽음을 향해 가는 출발점이었음을 알게 된다. 점차 기력이 떨어지고 갑작스럽게 몹쓸 병에라도 걸리게 되면 더욱 그 점을 실감하게 된다.
오전에 친구 사무실을 찾았다가 우연히 80대 어른을 만나 뵙게 되었다. 아직활력이 좋으시고 건전한 사고를 하시는 분으로 느껴졌다. 잠시 대화를 나누는 중 삶을 마감해 가면서 자식들에게 무엇을 물려줄까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고 하신다.
살아보니 사실 자식들에게 물려줄게 별로 없다고 하신다. 많은 돈도 의미가 없는 것 같고 마땅히 특별히 떠오르는 게 없어 늘 지니고 다니는 죽비는 어떨까 하고 혼자 생각하게 된다고 하신다.
불교에서 대나무로 만들어진 죽비는 참선 중에 늘 깨어있으라는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어르신은 정신을 놓지 않고 세상과 자신을 돌아보며 하루를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늘 죽비를 손에 들고 다니신다고 하신다. 크기가 약 1m 정도는 되어 보여서 항상 손에 가지고 다닌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이러한 번거로움을 마다하고 매일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죽비를 가지고 다니시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
한편으론 이 어른이 부단히 이런 노력을 기울이시는 것은 우리의 짧은 인생 속에 좀 더 많은 깨달음을 얻으시려는 노력이라고 생각된다. 이렇듯 우리는 잠시 방심하면 자신도 모르게 정신을 놓게 되고 의미 없는 하루를 보내게 될 수가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지나가는 계절을 막을 수 없듯이 언젠가는 죽음을 맞게 된다. 심지어 다른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의사라 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불행이 닥친 자신의 가족과 자신의 생명까지 어찌하지 못하는 난감한 상황을 맞이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한번 태어나서 죽을 목숨이라면 가슴에 사무치도록 아파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에게 죽음은 당연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자신에게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말이다. 그 점을 알 수 있는 것이 사랑 많으신 우리의 창조주께서는 첫 인간을 창조하시고 나서 그들이 에덴동산을 가꾸면서 영원히 살도록 계획하셨다. 하지만 한 천사의 반역과 첫 조상의 범죄로 인해 영원한 생명의 꿈이 좌절된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우주에서 전능하신 창조주의 원래 목적을 좌절시킬 수 있는 자는 없다. 그래서 창조주께서는 즉시 필요한 조처를 취하셨고 아들 예수를 이 땅으로 보냄으로 죄지은 인류가 다시 영원한 생명의 꿈을 가질 수 있도록 마련하셨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에게 결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안타까운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현대 과학과 의학의 건강한 삶과 생명 연장을 위한 뜨거운 노력들은 그 점을 잘 증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꿈은 결코 인간의 노력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오직 하느님과 예수를 통해서만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창조주 여호와께서는 성경을 통해 사람들이 영원한 생명의 길을 발견할 수 있도록 안내해 놓으셨다. 마치 어두운 밤길의 가로등처럼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친절히 안내해 주고 계신다.
그러므로 창조주께서 마련해 놓으신 생명의 길을 찾도록 하자. 이것이 본능이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인간이 자연의 이치를 벗어나서 살아갈 수 없듯이 하느님을 찾는 영적인 성향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젖먹이 아기가 엄마를 찾는 것이 자연스럽듯이 인간이 신을 찾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아직 우리에게 시간이 주어질 때 하느님을 찾는 노력을 하도록 하자.
전도서3:11 "하나님이 ···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요한복음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하느님과 그분이 보내신 자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