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漢江)은 한국인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세계인들은 전쟁의 폐허 속에 기적 같은 경제 성장을 이룬 한국을 한강(漢江)의 기적이라고 불러왔다. 이를 통해 한국은 선진국이 되면서 세계인이 부러워할 물질적인 풍요를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물질의 풍요에 이어 이번엔 정신과 마음의 풍요가 이루어졌다. 한국인 모두가 간절히 염원했던 노벨문학상의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스웨덴 한림원의 노벨문학상 발표는 오랜 기간의 가뭄으로 갈라진 논의 단비처럼 한국인들로 하여금 벅찬 감동을 안겨 주기에 충분했다.
많은 사람들은 마치 자신이 상을 받은 것처럼 기뻐하며 축하했다. 이로써 한강(韓江) 작가는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굳게 닫혀있었던 노벨문학상의 문을 열어젖힌 것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한국의 더 많은 숨은 작가들이 이 꿈을 향해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현재 한국을 찾고 있는 외국인들은 서울의 중심을 흐르는 한강(漢江 )의 매력에 푹 빠져있다. 돗자리를 펴고 '한강라면'도 끓여 먹으면서 바라보는 강의 모습은 잊지 못할 감동을 주고 있다. 그러므로 이번 한강(韓江) 작가의 수상을 계기로 한강(漢江)과 한강(韓江)의 유사점을 몇 가지 정리해 본다.
우선 한 가지는 바쁜 일상을 뒤로하고 우리가 강을 찾게 되면 마음이 한결 여유롭게 느껴진다. 마찬가지로 한강(韓江) 작가를 직접 만나 보지는 못했지만 그녀의 과거 행적을 통해 고통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넉넉한 마음을 읽을 수가 있다.
특히 요즘은 자신만을 위해 아침저녁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가운데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아파하고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여유로운 마음을 느끼게 한다. 글을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폭력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고 관심을 촉구하는 것이야말로 한강(韓江) 작가가 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또 한 가지 닮은 점은 마음이 들뜨지 않는다는 점이다. 노벨문학상을 받는 것은 모든 작가들의 꿈이다. 이런 최고의 상을 받아서 뛸 듯이 기뻐할 만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다. 언론의 축하 인터뷰도 차단하고 오히려 지금껏 운영해 왔던 개인 서점도 문을 닫았다.
그리고 개인과 집안의 경사이기도 하고, 학교와 나라의 경사이기도 한데 차분하기만 하다. 그리고 마을 잔치를 열려던 부모님께는 세상엔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은데 혼자 축하받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한강(韓江) 작가의 겸손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또 한 가지 인상 깊었던 점은 유구한 세월 동안 변함없이 흐르는 한강 (漢江)처럼 한강(韓江) 작가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모습이다. 사람의 마음이 주변의 환경에 따라 변하기 쉬운데 한강(韓江) 작가의 생각과 태도는 변함이 없어 보인다. 아마도 이런 작가의 모습이 자신의 작품들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렇듯 이번 노벨문학상을 계기로 더 많은 세계인들이 한강(韓江) 작가의 매력에 빠지게 될 것이다. 한강 (韓江) 작가의 책들을 통해 아픈 사람들을 사랑했던 작가의 따뜻한 마음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길 바란다. 이를 통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고통에 관심을 갖기를 바란다. 그래서 작가의 바람처럼 세계 도처에서 더 이상 고통받는 사람들이 없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그리고 한강(韓江) 작가가 그토록 알고 싶어 했던 세상엔 왜 이렇게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은가? 세계 도처에 만연한 폭력적인 세상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만일 하느님이 계시다면 왜 그분은 이러한 고통을 외면하고 계신가? 이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성경을 통해 깨닫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요한계시록 21:4 "그분은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더 이상 죽음이 없고, 슬픔과 부르짖음과 고통도 더는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다 사라져 버린 것이다."
시편 22:1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왜 나를 버리셨습니까? 왜 내게서 멀리 계시어 나를 구원하지 않으시고 내 고통의 외침을 듣지 않으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