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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경향

"좁은 문으로 들어가십시오"

by 자연처럼

최근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유럽에서는 많은 교회들이 문을 닫고 있다고 한다. 아마도 그 이유는 종교가 더는 영적인 안식처가 되지 못하고, 실망한 사람들이 교회 다니기를 그만두기 때문일 것이다.


세태가 변하면서 사람들은 종교보다 즐겁고 재미있는 것을 추구한다. 또한 사람​들​은 엄격한 도덕 규율보다는 자신​에게 너그러워지고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조언이나 충고보다자신의 귀에 거슬리지 않는 달콤한 말을 선호한다.


이러한 경향에 편승하여, 종교는 신자를 모으기 위해 하느님의 뜻과 생각보다 인간의 생각을 가르침으로 성서의 법을 왜곡하고 있다. 심지어 어떤 신자가 성서에서 금하는 심각한 규율을 어겨도 꾸짖지 않고 관용을 베푼다.


이러한 일은 일반 신자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누구보다 모범을 보여야 할 교직자가 부도덕이나 동성애와 같은 심각한 잘못을 저질러도 덮어주며 그 죄에 동참한다. 이로 인한 결과는 매우 심각하다.죄에 대한 경각심 대신 더욱 대담해져서 더 심각하고 빈번하게 죄를 저지르게 된다.악에 대한 현명한 답을 얻으려면 인간의 견해가 아닌 더 높은 차원의 지침이 필요하다.


하느님께서 주신 성서에서는 무엇이라고 가르칠까?


인간의 조언과는 달리 성서의 가르침은 시대가 변하거나 나라와 문화가 달라도 변하지 않으며 일관성이 있다.그중 한가지는 악에 대한 처벌이 죄에 대한 합당한 처벌이 신속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알려준다.만일 이러한 조처가 없다면 악은 더 대담해 지고 더 자주 일어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법정에서는 편파적인 판결이 난무한다.이로인한 결과는 법을 다루는 기관과 사람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


사람들은 법을 따르기 보다는 편법을 써서라도 처벌을 면하는 쪽으로 생각하게 한다.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만 있다면 부당한 과정이라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 보편화됨으로 불공정이 정의처럼 되고 있다.


그러면 참된 스승이신 예수의 가르침은 무엇일까?


그분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형주​를 지고 계속 나​를 따르십시오.” (마태복음 16:24 신세계역) 자신을 따르는 것​이 현명​하고 올바른 길​이지만 세상의 쉬운 길처럼 쉽지 않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가 예수의 가르침을 따라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그 가르침은 최상의 가르침이기 때문이다.그것이 증명되었고 현재도 그 가르침은 존중받고 있다. 예수께서 돌아가신지 수천년이 흘렀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그 가르침을 배우기를 즐겨한다. 또한 그 가르침이 훌륭한 이유는 최상의 지혜를 가지신 아버지 하느님으로 부터 그 지혜를 배웠기 때문이다.


예수의 가르침 중에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십시오. 멸망​에 이르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널찍​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반면​에, 생명​에 이르는 문​은 좁고 그 길​이 비좁아서 그것​을 찾아내는 사람​이 적습니다."(마태복음 7:13,14 신세계역)

눈과 귀가 가려진 신자들은 옳고 그름을 발견하기 매우 어려워 한다.참된 종교를 찾기를 아예 포기하거나 비교하지 않고 모두 비슷한 하다고 치부하며 대충 믿으려는 경향을 보인다. 사람들은 종교를 선택할 때 건물이 크고 사람이 많이 모이고 뭔가 자신에게 경제적 이득이 되는 것처럼 보이는 곳으로 향한다.


그 종교가 하느님과 예수의 가르침을 올바로 전달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고 그렇게 가르치는 교직자도 별로 없다.사람들은 어느새 참된 믿음의 가치인 현재의 행복과 미래에 대한 희망보다 현재의 일시적인 만족과 부귀영화를 얻는 데 더 관심을 갖는다.


이러한 일의 결과는 우리를 진정한 행복으로 인도하지 못한다.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경향을 따라서는 안된다.참 스승이신 예수의 가르침과 성서를 통해서 참된 행복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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