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시 24
*빚과 빛 사이의 점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낸 적이 있다. 한참 술을 좋아하던 30대 초반이었다. 결혼해서 둘째를 낳은 지 얼마 후에 일어난 사고였다. 술을 워낙 즐겨마시던 때였고, 그때는 지금처럼 대리운전이 활성화되지도 않은 때였다. 그때 직장에서 엄청 스트레스를 받은 때였고,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지만 둘째까지 생긴 마당에 회사를 그만둘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그들은 세상에서 내가 짊어지고 가야할 빚이었다. 어찌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 내던져진 그야말로 절망의 연속이었다. 그날도 상사에게 엄청 스트레스를 받고 근처 술집에서 혼자 술을 마셨다. 그런 후 차를 몰고 집으로 오던 중 신호등에 대기 중이던 차를 그대로 받아버렸다. 4중 충돌이었다. 내 차는 불이 붙었다. 다행히 에어백이 터져 몸은 크게 다치지 않았다. 차를 받던 그 순간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고 바둑이라면 한 수 물리고 싶었다.
병원에 입원을 했다. 같은 병실에 나를 포함해 네 명이 입원하고 있었는데, 나만 가해자였고 다른 사람들은 피해자였다. 죽고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잠자던 중 꿈을 꾸었다. 어릴 적 나의 방에 있었고, 저승사자가 그 옆방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저승사자를 따라갈 마음의 준비를 하고 기다렸으나, 저승사자는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순간 아내와 두 아이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잠을 깼다. 그런 후 절망에는 끝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죽는 것으로 절망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내와 아이들에게 그 절망이 이어진다는 것을 느꼈다. 그때 다시 느꼈다. 아내와 두 아들, 내 가족들은 나의 빛이 된다는 것을. 빚과 빛 사이에는 점 하나가 있다. 난 잠시 그 점에 머물렀다. 교통사고가 나고 회복되어 현실로 돌아오기까지의 그 기간은 빚과 빛 사이의 점이었다.
빚과 빛 사이의 점에서
절망은 가슴의 허기
허기를 채우려 술을 마심.
취중운전 중 사고가 났고
절망 속에 익사함.
절망에는 바닥이 없다.
단지 계단이 있을 뿐.
바다로 통하는 익사하는
하지만 익사가 하나의 문이 되어
또 다시 내려가야 하는 계단.
계단을 계속 내려가니
어릴 적 방이 있었고
그 옆방에서 짐을 꾸리며
저승사자를 기다렸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저승사자는 오지 않았다.
순간 떠오른 아내와 두 아들의 얼굴
‘그들은 내 생애의 빚이다.’
엘리베이터를 타듯 수면으로
갑자기 몸이 솟구치며
정신을 차렸다.
걸어왔다가 실려 가는 사람도 있지만
실려 왔다 걸어 나간다.
아내와 두 아들
빚이었다가 빛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