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는 강

by 윤창영

이야기가 있는 시 21


* 방황하는 강


울산에서 50년 넘게 살아오면서 참 많이도 태화강변을 찾았다. 어린 시절에는 낚시를 했고 멱을 감았지만, 그 이후에는 많은 날들을 강변에서 방황했다. 태화강은 어느덧 내 무의식에 방황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20대 시절 많은 날들을 태화강을 찾아가 소주를 나발 불었다. 그 당시 태화강은 썩어 악취가 나는 강이었다. 그 악취 나는 강이 내 삶이라는 절망에 사로잡혔다. 특히 비가 내리는 날이면 태화강변을 찾아가 어김없이 비를 맞으며 소주를 마셨다.

태화강변에서 다리를 쳐다보면 그 위를 달리는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이 두 개비의 담배를 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개비의 담배를 한 번에 피웠을 때의 어지러움이 꼭 내 머릿속 같았다. 다리 위에는 가로등이 길게 설치되어 있었다. 그 가로등 불빛이 강물에 내려 출렁이는 물결 따라 흔들렸는데, 그것이 꼭 비틀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꼭 소주 두 병을 마시고 비틀대는 내 모습 같았다.

도로 위가 현실이라면 도로보다 낮은 강변은 현실보다 낮은 위치를 의미한다. 다리 위의 불빛이 희망을 상징한다면, 불빛이 강물에 그림자로 내려 물결에 출렁이는 것은 곧 희망이 추락하여 강물 위에서 비틀거리는 것으로 생각했다. 한 마디로 절망이다. 20대에 ‘방황하는 강’이란 시를 적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40대에 그 시를 바탕으로 다시 이 시(그 태화강변에서)를 적었다. 20년이 지나 마흔 살이 넘어도 그 방황은 끝나지 않았다. 아내와 두 아들을 가진 가장이 되어서도 그 방황의 끈을 끊어버리지 못한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시인의 숙명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떨어져 내린 강변에서 앉은뱅이 용쓰듯 판도마임을 했다. 그때는 “보이지 않던 모기의 피”(20대에는 이유를 몰랐던 고통)까지 보였다. 50대 중반이 넘은 지금, 난 그 방황의 끈을 끊을 수 있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자 비로소 제대로 세상을 볼 수 있는 것 같고, 글도 제대로 쓸 수 있는 것 같다. 나이의 무게는 내 흔들림을 고정시켜주었다.



그 태화강변에서


별이 없었던, 젊은 날의 태화강변.


강에 내린 가로등 불빛의 기인 불 그림자가 비틀대던 떨어져 내린 강변.

다리 위를 달리는 자동차가 두 개비의 담배를 물었다고 생각한 그때

난 벌써 소주 두 병을 깐 후였다.


윙윙대던 모기 탓에 스스로 얼굴을 때리던 판토마임.

그때는 뵈지 않던 내 얼굴에서 죽은 모기의 그 붉은 피까지 선명하게 떠오른다.

내 피를 빤 모기의 피는

내 피인가 모기의 피인가,

이런 생각도 했었지.


떨어져 내린 그 밤의 그 자리.

밑에 깔려 아우성치던 풀들이 몇 번이나 시들었다가 다시 자라났을 테지만

이미 떠났다고 생각한 그 태화강변을 나는 결코 떠나지 못 했다.

이 질긴 방황의 끈.


예전과 연속된 불빛 그림자는 여전히 비틀거리고

여전히 비는 내리고 여전히 나는 소주를 나발 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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