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시 30
* 빗자루
자루란 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하나는 단위 명사로써 막대기 같은 물건을 셀 때 사용한다. 또 하나의 의미는 쌀 등을 담는 자루의 의미로 사용된다. 며칠 동안 미세 먼지로 하여 뉴스 채널마다 난리였다. 그러다 어제 내린 많은 비가, 미세 먼지를 쓸어버렸고 오늘 아침 가을 하늘은 말끔하게 청아하다. 그러다 문득 빗자루가 떠올랐다. 비로 미세먼지를 쓸었기에 비가 빗자루 역할을 한 것이다.
난 비를 좋아한다. 비는 세상의 먼지를 씻어준다. 다른 말로 하면 비는 빗자루가 되어 세상 먼지를 쓸어 깨끗하게 한다는 것. 그러고 보니 빗자루의 어원이 비에서 시작된 것은 아닌가 하는 정체불명의 상상을 한다. 빗자루를 비라고 말하니 전혀 엉뚱한 상상은 아닐 것이다.
비는 세상을 한바탕 청소하는 속성만 가진 것이 아니라 감성을 자극해 눈물을 흘리게도 한다. 비가 오면 흘리는 눈물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있는 자루에 담긴다. 그 자루를 난 비의 자루, 곧 빗자루라 말하고 싶다. 비가 오면 내 감성은 예민해진다. 평소에 잊고 지내던 그대가 생각나기도 한다. 시 속에 등장하는 그대란 것은 꼭 이성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어떤 시인이라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다. 사랑하는 사람일수도, 하나님이 될 수도, 친구가 될 수도,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희망이 될 수도 있다.
비가 내리는 날. 그대를 그리기 위해 연필을 깎는다. 연필은 곧 나 자신이다. 깎여져 나오는 것은 곧 눈물이다. 살을 깎는 아픔에 흘리는 눈물. 연필을 깎다보면 검은 심(心)이 나온다. 그 검은 심이 곧 눈물에 까맣게 된 마음이다. 너무 뾰족하게 갈 수가 없어 그냥 뭉툭한 채로 그대의 얼굴을 그린다. 눈물이 아려 희미하게 그려진 그대 모습이다. 그 모습을 자루에 담는다.
비가 그치면 가슴 속 아픔들의 조각인 눈물은 빗자루에 쓸려 자루에 담겨지고 난 다시 맑은 일상으로 돌아간다.
빗자루
그대 그리워 흘린 눈물
자루에 담아
가슴 속 깊은 곳에 두었지요.
발효된 눈물
하늘로 올라가더니
오늘 비가 되어 내리네요.
멍하니 비를 보니
빗방울 하나하나
모두그대 모습이라
가슴에 한 자루
눈물을 담습니다.
그대 모습 그리려
연필 한 자루를 깎았어요.
연필은 아프다 눈물을 흘렸어요.
깎다보니 까맣게 탄
내 마음이 보였어요.
차마 더는 깎을 수 없어
끝이 뭉툭하네요.
그대 모습 그렸어요.
언제나 선명한 그 모습이
오늘따라 희미하게 되었네요.
빗자루 들고
눈물을 쓸어 담습니다.
그대 그리워 흘린 눈물
자루에 담아
또 다시 가슴 속 깊은 곳에 둡니다.
비로소
내 하늘이 말끔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