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시 44
* 가을에 잘 어울리는 얼굴
젊었을 때는 열정이 있었다. 격정도 있었다. 화산이 폭발하는 것 같은 뜨거움이 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니 식어졌다. 이젠 젊었을 때의 그 뜨거운 열정이 없다. 열정을 여름에 비유한다면 지금은 가을이 되었다.
열정이 식었다. 이 말에는 어딘가 모르게 부정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 같다. 다시한번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표현이 적절한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열정이 식었다는 표현보다는 열정이 익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한 것은 아닌가? 젊어서는 열정이 앞선 나머지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하지만 나이가 오십이 넘어가니 젊었을 때보다 시행착오를 적게 겪는다. 그만큼 경험이 쌓였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식었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표현한다는 것은 어딘지 모르게 부적절한 것 같다. 그래서 앞으로 난 열정이 식었다는 표현보다 열정이 익었다는 표현을 쓰고 싶다. 여름이 지나야 가을이 오는 것처럼, 여름의 떫은 맛 나는 과정을 거쳐야 달콤한 감이 되는 것처럼 열정도 그렇게 익어가는 것이다. 열정은 식는 것이 아닌 익는 것이다.
시란 것은 낯설게 하기가 생명이다. 표현의 낯설음도 있겠으나 의미의 낯설음도 있다. 낯설음이란 것은 익숙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익숙하지 않음은 새로운 표현이나 의미를 부여할 때라야 가능하다. 말 한 마디가 관습적인 생각을 변화시킨다. 그것이 시의 낯설음이고, 그것이 시의 힘이다.
아메리카노가 식는 동안
아메리카노 마시며
글 쓰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아메리카노는 봄, 가을이 없다.
아이스와 핫뿐이다.
아니다. 식으면
봄이 되거나 가을이 된다.
아메리카노가 식는 것처럼
삶에도 식어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아니다 식는다는 말보다
익는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살결 검게 태우는 열정과
머릿속 얼리는 냉정을
익히는 것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혀 끝 자극하는 식당 밥보다
싱거운 된장국에 침샘이 돌게
시간은 그렇게 익어갔다.
아메리카노가 식어가는 만큼
생각도 가을처럼 익어갔고
어느 새 익는 것이 익숙해져
가을이 잘 어울리는 얼굴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