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주 시인의 시는 일반적으로 쉽다고 이야기되고 있다. 그리고 그 말은 사실이었다. 이 시집에는 100편 가량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대부분이 읽기가 편하다. 최근 시집을 잘 읽지 않았다. 아니 읽을 수가 없었다. 시가 너무 어려워 이해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시를 보는 관점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대중적이냐, 문학성이냐. 이 두 가지가 오랜 논쟁거리가 되고 있고 현재도 마찬가지다. 어느 입장에 서느냐에 따라 다른 한 쪽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이다. 나는 쉬운 시를 쓰자는 쪽이고 그렇다보니 문학성을 고집하는 시에 부정적이다. 하지만 나의 입장을 한 발자국 양보하고 이야기하면, 두 가지 모두가 다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어느 쪽을 주장하든지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거는 분명하기 때문이다.
나태주의 이 시집은 쉬운 시에 속한다. 쉬운 시가 가치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쉬운 시로도 얼마든지 사유의 영역을 확보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랜만에 시집을 끝까지 읽을 수가 있었다. 어떤 시집이나 그러하듯 그 시집에 수록된 모든 시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럴 필요도 없다. 또한, 유명한 시인의 시집이라 하더라도 그 속에 수록된 모든 시가 보석일 수도 없다. 내가 쓴 시중에서도 애착이 가는 것이 있고, 덜 가는 것이 있는 것처럼 다른 시인의 시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간혹 난 별 의미를 두지 않은 시가 독자에게는 좋은 시로 인식될 수도 있고, 내가 의미를 둔 시중에서도 독자가 별로 공감하지 않는 시도 있다. 시집을 읽다가 자신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시가 있으면 그냥 공감하면 된다. 그것으로 시집을 읽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이 시집의 맨 끝에는 시인의 시작 노트가 있다. 그곳에는 성경 말씀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젖이란 것은 동물을 헤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음식이라는 말이 나온다. 또한, 꿀은 식물을 헤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음식이라는 말이 나온다. 시인다운 시각이다.
사람이 아프면 병원에 간다. 그러면 의사는 그 병에 맞는 처방을 해준다.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은 많은 병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 사람이 시를 읽는다. 그렇다면 그 사람의 병을 치료해주시는 못할망정 위안이 되게 해주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시인은 말한다. 그것을 내 식대로 이해하여 서술한다면, 만약 시가 어렵다면 독자는 이해하지도 못하는 것에서 위안을 찾을 수가 있을 것인가? 그렇기에 나태주 시인의 이 시집이 귀한 가치를 지니는 것이 되는 것이다.
뿌리의 힘
쓰러진 꽃도
함부로 밟거나
잘라서는 안 된다
꽃이 필 때까지
꽃이 질 때까지
기다려주어야 한다
그 꽃 한 송이 피우기 위해
뿌리는 얼마나 애를 쓰고
줄기와 이파리는 또
얼마나 울고 불며
매달리고 달래며
그랬을 것이냐
우리는 비록 몰라도
아주는 모른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나태주의 ‘뿌리의 힘’ 전문
이 글을 읽고 풀 한 포기도 가벼이 밟아서는 안 된다는 느낌이 든다. 그 풀 한 포기를 세상에 내어놓기 위해 뿌리는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길가에 잡초 한 포기가 그러할 진대 사람이야 오죽하겠는가? 자식 하나를 세상에 내어놓기 위해 그 부모는 얼마나 고생했을까? 그렇기에 이 시를 읽으니 한 사람이라도 소중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시에서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나태주 시인의 사람 사랑하는 마음을 읽을 수가 있다.
“그래 시는 이렇게 써야 한다.”
2019.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