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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창영 Mar 22. 2018

아내가 원하는 것 들어주기 프로젝트3

가족의 힘2

* 가족의 힘 2 (아내가 원하는 것 들어주기 프로젝트 3)    


울산 농수산물 시장을 나온 시간이 아침 8시였다. 아침을 먹지 않았기에 햄버거를 사서 먹으면서 여행하는 설렘에 들떠있었다. 고속도로에 진입하여 핸드폰으로 목적지인 서울 영등포를 찍으니 도착시간이 12시 40분 정도가 되었다. 계속 달리다 보니 핸드폰은 새로 생긴 영천, 상주 고속도로로 안내했다. 이 길은 처음 가는 길이었지만, 개통되었다는 소식은 진작에 들었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진입했다.


길은 막힘 없이 뻥 뚫려 있었고 상주를 지나자 충주로 향하는 중부 내륙고속도로로 진입했다. 괴산 휴게소에 들러 잠깐 휴식을 취하고 계속 나아가자 여주 부근에서 영동고속도로로 진입했다. 그리고는 서해안 고속도로까지. 시간은 한 30분 정도가 절약된 4시간 정도가 소요되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4개의 고속도로를 지나온 셈이었다.


사들고 간 회를 큰아들과 친구들에게 먹게 하고는 노태권 형님 부부를 만나고 돌아왔다. 큰아들을 보니 약간 살

이 빠져있었다. 새로운 사업장을 친구들과 함께 리모델링 공사를 한다고 힘이 들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자 예전에 어른들이 곧잘 하던 말이 생각났다.

“얼굴이 반쪽이 됐네.”


예전에는 이 말이 과장이 너무 심한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신기하게도 큰아들을 보자 그런 느낌이 들었다. 옛날 말은 틀린 게 없다는 생각도.

큰아들이 마치는 시간이 한참이 남아 있었고 운전하느라 피곤한 나는 근처 숙소에 가서 잠을 잤고, 아내와 둘째는 근처에 있는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았다. 일을 마친 큰아들을 기다려 그가 사는 원룸으로 가서 울산에서 가져간 이불이랑 짐을 올려놓고, 그곳에 있던 겨울이불이랑 옷 등을 가져오기 위해 차에 실었다. 그리고는 함께 저녁을 먹었다. 식사를 마친 후 어디 구경하러 가기에는 시간이 어중간했다. 경복궁엘 가자, 이태원 엘 가자, 석 촌 쌍호수에 가자. 의견이 분분했지만 결국 찜질방에 가서 쉬기로 했다.     


두 아들을 데리고 먼저 목욕탕엘 갔다. 무척 오랜만에 함께 갔는데, 세 명이 모두 말수가 없었다. 여자들 같으면 아마도 재잘재잘 말들이 많았으리라. 탕에 들어가 앉아 있는 두 아들을 보니 세월이 참 빠르다는 걸 느꼈고 듬직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둘째는 살이 너무 많이 쪄서

“꼭 일본 스모 선수 같네.”


라면서 웃었다.

목욕탕을 나와서 찜질방으로 올라갔는데, 모두는 피곤하였던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한참을 자던 중 어디서 숨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한 사람이 어찌나 코를 심하게 골던지 도저히 잠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그때가 새벽 세 시 정도 되었다. 잠을 잘 다른 장소를 물색했으나 어디를 가나 꼭 한 사람씩은 코를 고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잠귀가 밝아 옆에서 소리가 들리면 잠을 이루지 못한다. 1시간 정도를 돌아다니다 적당한 장소를 발견하고 누웠는데, 그곳은 냉기가 느껴질 정도로 추웠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다 결국은 선잠을 자다가 깨어났다.


아침에 일어나니 큰아들도 잠을 설쳤다고 한다. 그런데 아내와 둘째는 세상모르고 잠을 잤다고 한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건지. 찜질방을 나와서 아침을 먹자고 하니 아들이 시간이 없다고 하여 함께 아침을 먹지 못했다. 아내가 잔소리 한마디를 했다.

“여기까지 와서 함께 아침을 먹어야지. 시간이 없으면 미리 준비를 해야 할 것 아니야?”


엄마의 잔소리에 큰아들 인상이 굳어졌다.

“엄마, 어제 코 고는 소리 때문에 잠 한숨 못 잤어요. 오늘 200만 원짜리 홍보방송을 찍어야 하는데, 준비를 다 못해서 일찍 가서 준비하려고 하는 거예요.”

라고 화를 내며 말했다. 그 말에 미안해진 아내는

“아! 그랬구나.”


하면서 입을 다물었다. 아내는 항상 바른말을 하지만 받아들이는 아들들은 항상 그 바른말을 잔소리로 듣는 것이 문제다. 하지만 어쩌랴? 그것이 엄마의 본능이니. 큰아들을 작업실까지 태워주고 울산으로 향했다.     

내려올 때도 올라갈 때와 같은 코스로 왔다. 문경새재 휴게실에서 잠시 쉬었는데, 그 사이 아내가 곶감을 사 왔다. 12일 동안 휴가를 가진 것이 걸렸던지 아내가 


“이것 회사 이사님 갖다 주려고 하는데 당신 생각 어때요?”

라고 말하자 대뜸 둘째가

“할머니 줘요, 곶감 좋아하시던데.”

그 말을 듣자 둘째가 무척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하는 반성도 되었고. 아내에게

“그래, 그것은 할머니 갖다 드려요.”


그렇게 해서 그 곶감은 할머니에게 드리기로 하고 한참을 달려가니 아내가 문득 생각이 났던지

“경주 들렀다 가요. 언니 집 부근에 있는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좀 해야겠어요. 내일 휴가 끝나고 출근을 하니 좀 멋지게 해서 가야겠어요.”

“울산에 가서 하면 안 돼요? 몇 시간이나 기다려야 할 건데.”

“잠시 머리 커트만 하면 돼요.”

라는 말을 듣자 ‘아내가 원하는 것 들어주기 프로젝트’가 생각이 났고 바로

“아! 그렇게 해요. 기다려주지 뭐. 성호야 네 생각은 어때?”

“저는 피곤해서 자면 되니까 좋을 대로 하세요.”    


이렇게 해서 차는 경주로 향했다. 아내는 미용실로 가고 둘째는 차 안에서 자고 나는 처형이 운영하는 목욕탕엘 가서 쉬었다. 그런데 잠시면 끝이 난다는 머리 손질이 2시간 30분이나 걸렸다. 기다리면서 짜증도 났지만 ‘어차피 원하는 것 들어주는 것인데 기분 좋게 하자’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독였다. 머리 손질을 끝내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의 휴대폰이 울렸다. 큰아들이었다.


“어머니, 아침에 화내서 미안해요.”

“괜찮아. 우린 다 이해한다. 방송은 잘 마쳤니?”

“예, 내일 한 번 더 남았어요.”

“방송 때문에 네가 예민해져 그랬다는 거 다 안다. 전혀 신경 쓰지 말고 내일 방송 잘 해라.”

운전하면서 아내와 큰아들이 대화하는 것을 들으니 이것이 가족의 마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까지 가서 밥을 챙겨 먹이고 싶은 엄마의 마음, 화를 내었지만 금방 풀어져 마음이 쓰이는 아들의 마음. 할머니를 생각하는 둘째의 마음.


여기까지의 글은 남들이 모두 갖고 있는 특별할 것이 없는 마음이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특별한 마음이 된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도 바로 이런 것에 있다. 이런 특별할 것이 없는 마음이 바로 보물임을 알게 해주기 위해서다.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지나가버리면 특별할 것이 없는 일상이지만 의미 부여하기에 따라 특별하고 보물이 되는 것이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은 일상에서의 보물 찾기이다. 


서로서로 생각해주는 마음은 가족 구성원들에게 힘이 된다. 세상이라는 숲에서 자신이 자리한 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설 수 있으려면 자양분이 필요하다. 가족은 땅이며 그 땅속에서 서로에 대한 사랑은 자양분이 된다. 가족들은 이 자양분을 뿌리로 퍼 올려 가지며 잎에다 공급하는 것이다. 그 자양분을 먹고 나무는 튼튼하게 자라며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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