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다시 시작이야
*낭만부부
약숫골 도서관 옆에 “품”이라는 카페가 있다. 이곳은 아내의 지인의 아들이 운영하는 곳으로 가끔 아내와 데이트를 한다. 아내는 요즈음 수필에 푹 빠져있다. 약숫골 도서관에서 수필 강좌를 수강하는데, 오늘 수업한 다른 사람이 적은 수필을 보여주며 나의 생각을 물었다. 수필 작품에 대한 나의 견해를 이야기해주며 아내에게 직접 수필을 써볼 것을 권유했다. 전부터 글을 쓸 것을 권하였지만 망설이기만할 뿐 아내는 글을 쓸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아내는 말을 참 맛깔스럽게 한다. 그 말을 듣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말수가 그렇게 많지 않은 나에게는 아내의 끊임없이 솟아나는 말들이 신기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렇게 말을 잘 하면서 글로 표현하는 것은 어려워한다. 아마도 그것은 글을 쓰는 연습이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리라. 가끔 아내의 이야기를 듣다가
“당신이 지금 나에게 했던 말, 그대로 적으면 글이 될 것 같아.”
라고 말하며 글을 써볼 것을 권해보지만 아내는 계속 미적대었다. 수필 강좌 수강을 한 것도 글을 쓰고는 싶지만 잘 되지 않는 아내를 위해 내가 권유한 결과다. 하지만 몇 달을 수강했지만 여전히 글로 표현하기를 어려워했다.
아내가 보여 준 다른 수강생들의 글을 읽으며 나의 견해를 이야기한 후 전에 내가 써서 노트북에 저장해 둔 글을 찾아 아내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어떻게 쓰면 쉬운지 나름의 경험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자 아내는 큰맘을 먹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약 한 시간 정도 A4 한 장 분량의 글을 쓰고 나서 나에게 보여주었다. 아내의 글을 읽으니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생생하게 잘 담아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상으로 글이 아주 좋네. 이렇게 한 스무 편만 적어본다면, 아주 글을 잘 쓸 거라는 생각이 들어.”
하고 내 생각을 이야기해 주었다.
아내와 글을 쓰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창 밖에는 비가 왔다. 비가 오니 아내는 문득 생각이 났는지 웃으면서 말했다.
“전에 당신이 나한테 우산이 되어준다고 했지요? 그런데 그 우산이 찢어진 우산이었어요. 그 우산 쓰고 비 맞느라 엄철 고생 많았어요.”
농담처럼 한 말이었지만 아주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결혼을 할 때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세상의 모든 고통은 내가 막아주는 우산이 되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무던히도 아내 속을 썩였다. 술을 많이 마셨고 사업에 실패도 하였으며, 아내를 배려하여 우산을 씌어주기 보다는 내 절망에 허덕이며 우산을 찢어버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음에 감사한다. 가족을 돌아보고 가족들에게 우산이 되어줄 시간이 남아있음에 다행함을 느낀다.
“진작 좀 정신 차리지.”
라고 아내가 말했다.
“앞으로 잘 하면 되지. 이제 시작이야. 앞으로 기대해도 된다.”
정말 이제 시작이며 우리 부부에게는 다행히도 앞으로 많은 시간이 남아있다. 물론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겠지만, 이제까지 못 해준 것들을 살아가는 동안 그 이상으로 잘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부부나무
강가에 두 그루 나무가 있습니다.
몸은 비록 떨어져 있어도
같은 봄에 새순을 내고
같은 여름에 잎이 무성해지고
같은 가을에 열매를 맺습니다.
바람이 불면 같은 방향으로
흔들리며 잎들을 펄럭이고
겨울밤이 되면 주렁주렁
같은 별들을 열매로 맺습니다.
강가엔 지천으로 꽃이 피기도 하고
풀들이 말라 황량하기도 하지만
두 그루의 나무는 항상
그 자리에 있습니다.
두 그루의 나무는
몸은 비록 떨어져 있어도
하나입니다.
땅 속에서 서로를 향해 뿌리를 뻗어
뻗은 뿌리가 서로 얽혀
언젠가 부터 핏줄이 연결되었고
따뜻한 피가 두 나무의 가지,
잎들을 오고 가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