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올라갈 때는 성적은 상위권이었지만, 고2 때부터는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고 글만 많이 썼다. 많은 방황을 한 고등학교 시절 쓴 글이 대학노트로 치면 거의 500~600페이지 정도 될 거로 생각한다.
그 당시 우리 집 바로 옆에는 외삼촌이 살고 있었다. 외삼촌이 자기 집을 지을 때 우리 집에 잠시 와서 그 가족이 산 적이 있으며, 그때 외숙모와도 정이 많이 들었다. 외숙모는 서울 사람으로 교회에 다녔고 내가 많이 따랐던 분이었다. 그 당시 아버지는 혈압이 높아 두 번이나 쓰러졌고, 그때마다 아버지의 목덜미를 안마해주던 기억도 난다. 당시 외숙모는 30대 초반으로 예쁜 새댁이었다. 외숙모의 둘째 딸, 이름이 현경이었다. 태어나면서부터 병을 앓고 있었는데, 그만 죽고 말았다. 현경이를 참 많이 안아주었는데, 안아주면서 흥얼거리며 노래를 불러주었다.
처음으로 술을 마신 것도 그때였다. 학성공원 올라가는 계단에 앉아 새우깡 한 봉지를 안주로 25도였던 소주를 혼자 마셨다. 그리고 마신 모든 것을 올렸다. 그 몽롱한 기분과 속 쓰림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몸 세포와 정신 세포 모두는 아직까지 그날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때가 고1이었는데, 내가 공부를 하지 않았던 시기와 겹치는 것 같다. 이때부터 나의 아픔들은 볼펜으로 쓴 사연이 되었다. 지우개로는 결코 지워지지 않는, 아직까지 선명하게 남아있는.
연 feel
태어나 처음으로 잡는
필기구.
무엇이든 그릴 수 있고
무엇이든 쓸 수 있고
실수하면
머리에 지우개로
지울 수 있어 좋다.
처음엔 날카롭지만
쓸수록 무뎌짐이 좋다.
볼펜을 쓰고부터
실수하면
되돌릴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