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문제인지 아니? - 항상 그 자리에 있는 HR
조직은 살아있는 유기체이다.
코스피 2000 시대가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3000을 넘어서 있고, 새로운 회사가 생겨나기도 하고, 그 회사가 성장을 하여 어느 순간 대기업의 반열에 들어가기도 한다. 반면 어떤 회사는 여러 가지 환경적인 이슈로 문을 닫기도 한다. 회사가 어려워지고 문을 닫기 직전이 되면 간혹 그 회사에 인공호흡을 하면서 회사가 다시 살아나기를 기대하기도 한다. 이를 보면 회사는 분명 살아있는 유기체가 맞는 것 같다. 마치 살아 숨 쉬는 사람 같기도 하다.
이러한 유기체를 구성하고 있는 각각의 장기들을 살펴보면 CEO가 있고, 회사의 성장을 위한 전략기획 기능, 회사의 자금이 잘 돌고 있는지 확인하고 이를 관리하는 재무 기능, 회사의 실질적 성장을 위해 매출을 일으키는 영업 기능, 영업에 필요한 재화를 만들어 내는 제조 기능, 적절한 영업, 제조 등을 위해 필요한 구매 기능 등, 다양한 기능들이 유기체를 이루며 조직의 성장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이러한 기능들은 조직이 성장함에 따라 그 기능들도 같이 역할이 확대되고 성장한다.
신생기업일 때의 재무 기능과 대기업일 때의 재무 기능은 그 역할의 범위와 알아야 하는 지식의 깊이가 다르다. 전략기획도, 영업도 마찬가지이다. 제조 기능도 100개를 만들어 낼 때와 100,000개를 만들어 낼 때 요구되는 역할, 프로세스 등은 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HR조직은 어떤가?
회사마다 HR조직이 없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신생기업, 스타트업 같은 경우의 HR은 복잡한 인사제도를 운영하지는 않는다. 주요 기능은 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채용 기능에 집중되어 있다. 평가제도, 보상제도를 운영하고 설계하기 위한 노력을 크게 할 필요 없다. 하지만, 조직이 커지고 안정적 사업을 유지하게 되면서 기능들이 하나씩 추가가 된다. 평가제도, 보상제도, 육성제도 등 조직의 성장에 따라 필요한 제도들을 추가하여 운영하게 된다. 그렇지만 한 번 생각해보자.
조직의 성장에 따라,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이러한 보상제도, 평가제도, 채용제도의 운영되는 모습이 달라지고 HR의 역할 또한 확장되고 있을까?
지금 수행되고 있는 HR조직의 역할은 인력을 채용하고, 채용된 인력을 배치, 발령 처리하고, 그 인력들의 성과를 측정할 수 있는 제도를 운영하고, 적절한 보상제도 및 육성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기능들이 10년 전에는 어땠을까?
10년 전에도 현업의 요청을 받아 인력을 채용하는 프로세스를 운영하고, 배치하고 발령 처리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성과관리 제도를 운영하여 그 결과에 따라 성과급을 지급하는 역할을 수행해왔다.
20년 전에는 달랐을까? 20년 전에도 같았다. 20년 전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했던 나에게도 모르긴 해도 지금과 크게 달라 보이진 않았다.
그러면 다른 직무들은 달라졌을까?
영업, 마케팅은 시대의 변화, 인구구성의 변화, 다양한 사회적 이슈 등에 민감하게 대응하면서 일하는 방식과 요구되는 지식들이 지속적으로 변화해왔다. 제조 생산 부분은 단시간에 많이 만들어내는 효율 지상주의에서 혁신을 요구하며 기존에 없던 새로운 방식의 제조 프로세스도 나타나고, 사회적 이슈, 트렌드에 대응하며 안전을 생산효율보다 앞세우기도 한다. 전략기획은 가만히 있어도 돈을 벌던 시절에는 그저 회사의 비즈니스 실적을 관리하면서 CEO에게 Reporting 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면, 요즘에는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내고, 기존 사업에서의 혁신을 일으키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있다. 인수 합병을 리드하고, 기존에 잘 수행하던 사업도 과감히 정리하기도 한다. 어딘가로 먼저 발을 내딛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 재무도 마찬가지 노력을 해오고 있다.
그런데, HR은 그러한 변화와 노력에 대해 다소 뒤처진 느낌을 받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단적으로 최근 내가 근무하고 있는 회사에서 컨설팅사와 같이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 같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가장 놀랐던 것은 십 년 전에 내가 컨설턴트로 근무할 때 활용했던 각종 슬라이드들이 아직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었다. 보통은 컨설팅사에서 업무 효율을 위해 매 프로젝트마다 슬라이드를 새롭게 만들지는 않는다. 기존 유사 프로젝트에서 사용되었던 보고서를 가져와서 약간의 수정을 거쳐 보고서에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분명 10년 전과 지금은 인적 구성도, 조직문화도, 평가보상을 바라보는 직원들의 인식도, 그리고 HR 트렌드도 모두 달라져 있을 텐데 보상제도, 평가제도 모두 10년도 훨씬 전에 사용되던 슬라이드가 그대로 사용되는 것을 보고, 과연 조직 내 HR조직이 변화를 추구하는 조직일까, 아니면 옛것을 고집하는 보수적 조직일까 의문이 들었다.
보상제도, 평가제도, 인력운영에 대한 HR의 역할 인식 등 과연 지난 세월 동안 HR이 무슨 변화의 노력을 했을까 하는 생각에 나부터도 반성을 하게 된다.
구글, MS 같은 기업에서는 HR에서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한다. 최근 많은 HR 트렌드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이러한 기업들로부터 인지되고 있다. 여기서 궁금했던 것은 그들은 새로운 HR측면의 시도들이 많이 이루어지고, 그것이 트렌드가 되고 있는데, 이러한 트렌드가 왜 한국에 있는 기업에서는 나오지 않을까?
왜 우리는 매번 그런 글로벌 기업의 트렌드를 따라가고만 있을까?
몇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것 중의 하나는 HR에 대한 역할 인식의 차이와 다른 하나는 실패를 두려워하는 분위기(노사 이슈 등)가 아닐까 싶다.
그래도 가장 큰 이유는 우리 기업에서 HR을 바라보고 있을 때, HR에 요구하는 역할이 제한적이어서 그런 것 같다. 예를 들어, 외국에서는 오래전부터 HR은 비즈니스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고 얘기를 해오고 지금은 비즈니스 드라이버가 되어야 한다고도 얘기하고 있다. 비즈니스 이슈에 대해 직접적인 역할을 강조해오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많은 기업에서 HR을 바라보고 있는 시각은 비즈니스에 간접적인 영향을 주는 지원조직의 인식이 매우 강하다.
CEO가 비즈니스 이슈를 논의하고 싶은 사람에 HR 책임자도 포함되어 있는지 보라.
일부 기업에서는 그런 역할을 잘하고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에서는 그렇지 않다.
비즈니스의 세계는 매우 다이내믹하고 이슈도 수만 가지 형태로 발생을 한다. 하지만 이에 HR이 같이 고민을 하고 대응을 하려면 HR의 역할 인식부터 달라져야 한다.
조직의 3분기 영업이익이 감소하고 있으면, 그 이유가 대외 환경적인 이유라 해도 HR은 우리 조직의 생산성을 높이고 이러한 이슈에 대응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코로나로 인해 영업 판매실적이 낮아지고 있을 때, 전략, 영업, 생산, 재무에서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고 시도를 했었다. 이러한 실적 개선을 위해 HR은 조직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새로운 고민도 하고 시도를 해야 하는 게 맞음에도 그러한 노력은 잘 보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영업이익이 떨어지고 있는 것에 대응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은 HR의 역할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조직이라는 유람선이 어느 날 침몰하고 있을 때, 이 배를 살려내기 위해서 영업, 재무, 전략 조직은 열심히 배안에 있는 물을 퍼내고 엔진을 재시동하며 빠져나가기 위한 노력을 한다. 이때 HR조직은 한 발짝 떨어져서 발만 동동 구르며 걱정을 하고 있는 모습이 현재 우리 HR의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HR은 같이 물을 퍼내는 작업에 동참하며, 이 배가 왜 가라앉았는지, 가라앉는 원인이 발생했을 때, 선원들이 적절한 초기 대응을 잘했는지, 내부의 원인을 찾아 다음에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그 배에 적정한 탑승 인원수는 몇 명이었는지, 그리고 위기 대응 시 적정한 능력을 갖추었는지 등을 판단해서 인력 관리도 해야 하고, 필요한 역량을 미리 갖출 수 있도록 육성도 해야 한다. 지금 우리 HR은 그런 노력을 하고 있을까?
무슨 일이든 기존에 하던 방식으로 하면 어렵지 않다. 익숙해지니까. 사람은 그렇게 익숙해지면 계속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려는 경향이 있다. 어쩌면 우리 HR조직들이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비즈니스가 바뀌고, 세상이 바뀌면서 일하는 모습도, 일하는 사람 구성도, 그들을 동기 부여시키는 방법도 다 달라지고 있다. 이럴 때, HR의 존재의 이유를 생각하면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해보자.
HR의 존재의 이유는 "비즈니스 성장"이다. 가장 큰 목적인 비즈니스 성장, 성공의 이미지를 그리면서 HR이 무슨 역할을 얼마나 더 어떻게 확장시켜나가야 할지 고민해야 할 때이다.
(다음 마지막 불편한 이야기는 '투명하지 않은 인사제도 운영'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