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신비의 나라로 각인된 요르단을 방문한다. 서아시아의 요르단은 북쪽으로는 요단강과 사해, 그리고 시리아와 접해 있고, 남쪽으로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접해 있다.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장미의 도시 ‘페트라(Perta)’가 있고, 다른 지역의 사막과는 확연히 다른 ‘와디 럼(Wadi Rum)’ 이 있다. 체험해 본 그 어느 사막과도 다른 풍요로운 기록 유산과 색깔과 형태를 지닌 사막이다. 요르단에도 로마의 유적지가 있다. ‘중동의 폼페이’라는 제라쉬다.
예전 터키를 방문했을 때 에페소의 그리스 로마 도시 유적지가 인상 깊었다. 로마가 정복한 서유럽, 서아시아, 파키스탄, 인도 북서부에도 여지없이 로마의 도시 유적지가 있다. 알렉산더 대왕의 동서양 문화 융합 정책으로 생긴 헬레니즘 문화가, 로마 제국에 영향을 주며 서양 문명의 뿌리가 된다. 불편하지만 정복의 역사에서 새롭게 태어난 문화는, 인류 문화사적인 면에서 본다면 큰 의의가 아닐 수 없다.
수도 암만에서 느보산을 지나 사해로 가는 길은 기독교 성지다. 요단강과 사해의 역사적 장소들을 드디어 체험한다. 요르단을 체험해 보니 늘 느끼듯이, 간접 체험과 직접 체험에는 큰 간극이 있음을 알게 된다. 이슬람 국가인 요르단은 오래된 역사와 문화 그리고 그들만의 지리적, 문화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수도 암만에서 남쪽으로 사막 한가운데의 킹스 하이웨이를 3시간 여 달리면 페트라 베이스 캠프인 와디무사에 도착한다. 그리스어로 ‘바위’라는 뜻의 페트라는, BC 6세기 나바테아인이 서부 아라비아로 이주하면서 만들었다. 페트라는 고대 아라비아와 지중해, 아시아를 연결하는 무역로의 중심지다. 이들은 이 지역의 무역과 상권을 잡으면서 번성의 길을 걷는다.
온 도시가 붉은 바위인 거대도시 페트라는, 고대문명의 기술과 문화를 보여주는 인류 유산이다. 바위를 조각해서 만든 거대하고 신비스러운 건축물과 물을 관리하는 배수로 기술에서, 고대인들의 지혜와 도전 정신을 읽을 수 있다. 이곳의 방문은 과거와의 만남이며, 인간의 창의력이 자연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를 보여주는 예다.
페트라 입구의 시크 /사진: 이향남
시크의 신비한 바위들 /사진: 이향남
페트라 외곽 산 둘레를 한 바퀴 걸으며 유적을 상세히 보는 데는 4-5일 걸린다. 입구에서 높이가 200m, 폭이 2m 되는 협곡 사이 신비한 '길 (Siq)' 을 걸어 내려간다. 협곡의 길 옆 사암을 깎아 만든 수로에서 지금도 물 흐름을 보며 감탄한다. 거대한 붉은 바위들이 빚어내는 사방의 풍경에 눈이 바쁘다. 한참을 걸어 협곡과 시크 길이 끝나는 막다른 길에 다다르자, 길은 왼쪽으로 꺾이며 넓어진다. 바로 눈앞에 나타난 ‘알 카즈네 (Al Khazneh)’ 가 눈을 사로잡는다. 페트라를 건설한 나바테아 왕의 무덤이다. 보존 상태와 완성도가 뛰어남에 놀라움뿐이다.
페트라의 알 카즈네 /사진: 이향남
나바테아인 들의 건축물들을 하나하나 꿰뚫어 보면, 놀라운 지혜와 건축술에 탄복한다. 건축물을 지은 것이 아니라, 자연의 붉은 바위를 깎아내는 조각 방법으로 건축물을 만든다. 그러다 보니 도시는 다른 색이 끼어들지 않은 온통 붉은 색이다. 높은 곳에서 멀리 내려다보면 거대 도시 페트라는, 자연의 붉은 산들이 겹치고 겹쳐 만들어 내는 장관이, 마치 장미꽃들의 군락을 보는 듯하다.
협곡과 수로가 어깨동무한 시크가 끝나고 알 카즈네를 마주하면, 오른쪽으로 길이 넓어지면서 넓은 광장이 나타난다. 도시 내부로 접어든 것이다. 광장 중간 즈음에서 왼쪽에 있는 길을 따라 올라간다. 운송 역할을 하는 당나귀들이 여기저기 서 있고, 한 낮의 뜨거운 태양을 피해 그늘에 앉아 있는 당나귀들이 한가롭다. 여기는 그늘과 햇빛의 붉은 바위의 색 변화도 흥미롭다. 그늘이 덮고 있는 바위는 물에 젖은 듯한 좀 더 짙고 선명한 붉은색이며, 따가운 햇살을 받고 있는 바위는 오수에 조는 듯한 빛바랜 낙엽의 갈색이다.
페트라 광장 당나귀들의 휴식 /사진: 이향남
햇살을 머리에 이고 오르고 또 오른다. 기괴한 바위들이 얽히고설켜서 빚어낸 자연스럽게 생긴 길은 마치 외계 행성을 걷는 것 같다. 걷다 보니 유사한 느낌의 아이슬란드 화산이 남긴 ‘라우가르베키르 (Laugavegur Trail)’가 생각난다. 화산의 나라인 아이슬란드도 오랜 시간이 지나면 화산이 만들어 낸 페트라 못지않은 자연 생태계를 지니지 않을까 싶다. 자연은 인간의 영역 밖의 존재다.
숨이 차올라 바위를 베개 삼아 한 그루 작은 나무 아래 눕는다. 적막이 흐르고 나는 무한한 공기 안에 있다. 떠들썩한 옛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리고, 독특한 전통 옷을 입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 안에는 동물들의 소리도 간간이 섞여있다. 타임머신을 타고 나는 그들과 함께 여기 있다. 오르다 뒤돌아보면 발아래 펼쳐지는 풍광들이 이채롭다. 멀리 겹쳐진 붉은 바위산들의 라인이, 해질 녘 지리산 청회색 산들이 빚어내는 중첩의 산과 비슷하다. 안데스 산맥 가파른 언덕에서 내려다본 중첩의 청록색 산들과도 겹쳐진다. 자연이 주는 색들의 향연이며 아름다움이다. 나도 그 안에서 행복감에 젖는다.
신전이 나오고 물 한 모금으로 가쁜 숨을 고르는 쉼터를 지나니, 저 앞이 정상인 듯하다. 바위 사이사이 이어지는 미끄러운 꼬부랑길을 오르며, 정상에서 펼쳐질 풍광이 점점 기대된다. 길 옆 풍광을 훔쳐보며 앞만 보고 걷고 또 걸으니, 어느새 편편한 바위에 다다른다. 정상이다. 발아래 광야가 드넓다. 바위산 끝 절벽 아래 바로 광야가 펼쳐지다니···.
광야를 향해 소리 질러 외치고픈 말이 간절하다. 안개에 덮여 아스라한 몽롱한 광야. 저 멀리 하늘과 맞닿아 있다. 광야 뒤로 보이는 먼 곳이 말로만 듣던 가나안 땅이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해서 40여 년을 헤맸다는 광야. 그 역사적 장소를 멀리로나마 아스라이 바라보고 있다.
내려오는 길은 눈이 더 바쁘다. 발 아래 기기묘묘한 바위들에 시선을 뺏기고, 붉은 바위 색만의 풍광이 파란 하늘과 만나는 색의 조화를 본다. 시원한 맞바람은 송골송골 이마의 땀을 날리고, 옛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당나귀 소리가 가까이 들리면서 사람들의 움직임이 커지자, 내려오는 길이 막바지다.
막바지 광장에서 맞은편 붉은 바위산을 향한다. 거기에는 사암 바위를 안쪽으로 깎아 만든 왕가의 무덤들이 있다. 가는 길엔 일반인의 무덤도 있다. 붉은색 바위의 깎인 단면을 관찰하면 거기에는 오묘한 색들이 공존한다. 나무의 나이테처럼 서로 다른 퇴적층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 낸 선과 색이 아름답고 신비롭다.
페트라 왕가의 무덤 /사진: 이향남
페트라 일반인의 무덤 /사진: 이향남
감탄이 끝나기도 전에 거기서 조금만 걸어가면 다른 거대한 바위산을 마주한다. 바위산 가운데를 절단한 듯한 틈 사이로 걸어 들어가면 미로가 이어지며, 어디서부터인지 신선한 물줄기가 나타난다. 아슬아슬한 절벽 길, 발 아래로 세찬 소리의 계곡물이 흐른다. 게다가 밖은 뙤약볕인데 여기는 서늘하기까지 하다. 메마른 바위산들과 뙤약볕이 작열하는 건조한 이곳에서, 청량한 물소리는 찌든 무더위의 반전이다. 축 처진 장미꽃이 생기를 찾듯 몸이 다시 살아난다. 나오는 길에 시원한 그늘에서, 이글거리는 태양으로 달궈진 바깥 풍경을 보니 천국과 지옥 같다.
산을 내려와 로마 유적 도시로 향한다. ‘석주 기둥 길(Colonnade Street)’ 이 시선을 빼앗는다. 거대한 신전과 궁전, 원형극장, 상점, 시장, 분수대 등 건축물의 웅장함에서 뿜어져 나오는 규모와 신비스러움과 기술에 압도된다. 로마제국의 위용을 느낄 수 있는 신전도 그러하거니와 바위산을 깎아 만든 원형극장의 규모와 기술에 감탄한다. 2000년 전에 돌과 바위를 깎아 이런 도시를 만들었다니, 불가사의의 유적들에서 고대인들의 위대함을 경험한다.
유적 도시의 전체 규모와 구성을 보기 위해 맞은편 산으로 올라간다. 야트막해 보이는 산은 다가갈수록 거대하고 정상은 끝없이 올라가야 한다. 맞은편 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니 도시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거대해 보이던 건축물들이 장난감처럼 점점이 보인다. 로마 식민시대 유적을 보며 나바테아인들의 아픈 헤아림보다, 그들의 건축물과 어우러져 남아있는 역사와 문화의 현장이, 인류 문화에 끼치는 영향력에 대한 생각이 앞선다.
산에서 내려다 본 로마 유적 도시 /사진: 이향남
산을 내려와 지금은 낙타 탄 경찰과 기념품 가게 상인들의 휴식처로 사용하고 있는, 님파에움을 향해 간다. 흔치않은 나무 그늘이 있는 이곳을 지나, 유적 중 가장 깊숙이 숨겨진 ‘알 데이르 수도원( Al Deir Monastry)'으로 향한다. 정상까지는 1시간가량 900개의 계단을 따라 올라간다. 보고 또 봐도 신비롭기만 한 바위들이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2단 구조의 헬레니즘 양식을 띠고 있는 단아한 모습으로 3세기 경 나바테아인의 무덤이다.
페트라의 알 데이라 신전 /사진: 이향남
붉은 바위를 깎아 만든 알 데이르 수도원은 석양이 비칠 때 가장 아름답다는데 지켜보지 못해 아쉬움을 남긴다. 몇 년을 손꼽아 기다려 온 역사적 장소들을 원 없이 보고 나니 가슴 한편이 뿌듯하다. 머릿속엔 한 권의 역사책이 훓고 지나간 듯하다. 페트라가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임을 새삼 인식한다.
[오지 화가 이향남의 예술 기행 ⑤] 아시아 국가들의 자연 풍경과 색 1 < 오지화가 이향남의 예술기행 < 칼럼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