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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리아트 Jul 24. 2024

[“나는 사과 하나로 파리를 놀라게 하겠다."-폴세잔]

정서우의 욕망의 미술 ③

세상을 바꾼 세 개의 사과
괴짜 같은 성격을 지녔던 현대미술의 아버지 폴 세잔
운명의 화가 피사로를 만난 후 혁신적인 작품을 탄생시켜
변화를 알아보는 '눈'         
“나는 사과 하나로 파리를 놀라게 하겠다.”
-세잔이 에밀 졸라에게 보낸 편지 속 내용


나도 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데 타인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 가족과 함께 있을 때의 나, 친구와 시간을 보낼 때의 나, 혼자 있을 때의 나. ‘나’라는 존재는 누구와 함께 있는지, 어떤 장소에 있는지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한다.


이것은 인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사물도 위, 옆, 아래 각도에 따라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이러한 변화의 본질을 두고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한다는 사실 뿐이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세상을 바꾼 세 개의 사과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는가? 첫 번째는 아담과 이브의 사과, 두 번째는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의 사과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사과가 바로 헤라클레이토스가 발견한 변화의 본질을 시각 이미지로 구현해 낸, 현대 미술의 아버지로 칭송받는 위대한 화가 폴 세잔(1839-1906)의 사과이다.


Paul Cézanne, Self-portrait in front of olive, 1880–81, Oil-on-canvas, 26 x 33.6 cm, wikipedia



1839년 프랑스 남쪽 엑상프로방스에서 태어난 세잔은 괴짜 같은 성격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는 굉장히 예민하면서도 관계에 있어 소극적이었던 탓에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주류 미술계가 중시하던 규칙을 거부했으며, 당시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던 모네, 피사로, 르누아르와 같은 인상파 화가들과 어울리는 걸 더 좋아했다.


홀로 작업실에서 집요하게 그림만 그리던 그의 초기작들은 전반적으로 톤이 어둡고 칙칙하다. 이러한 비사교적인 성격과 어둠을 품은 화풍은 마치 블랙홀처럼 그를 점점 더 고립 속으로 빨아들이는 듯했다. 이러한 특성은 훗날 세잔의 첫 개인전을 열고 그에게 날개를 달아주게 되는 미술상 앙브루아즈 볼라르(1866~1939)의 1914년 일기장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세잔이 작업하는 것을 직접 본 사람은 그의 작업 진행이 얼마나 더디고 고통스러운지를 알지 못할 것이다." 
-1914년  앙브루아즈 볼라르의 일기장

거의 제일 처음 그려진 볼라르의 초상. 오랫동안 같은 자세로 있기 힘들었던 볼라르가 자꾸 움직이자 세잔이 “저기에 있는 사과처럼 좀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으란 말이오!”라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는 일화로 유명하다.(Paul Cézanne, Portrait of Ambroise Vollard, 1899, oil on canvas, 120.5 x 39.9cm, wikipedia)


하지만 1873년, 세잔은 그의 운명을 바꿔줄 화가 피사로(1830-1903)를 만나게 된다.


피사로는 세잔의 재능을 알아본 특별한 사람이었다. 경청의 달인이자 모든 인상파 화가들의 스승이기도 했던 그는 고독과 불안이 가득 찬 세존의 내면에 안정을 불어넣었다. 또한 스스로 감정을 잘 다스릴 수 있는 방법과 밖으로 나가 야외에서 그려 보라는 등 그에게 그림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괴짜 세잔의 가치를 알아보고 새로운 길을 열어준 진정한 스승 피사로의 초상화. 그의 따뜻한 성품은 훗날 세잔이 자신을 “소박하면서도 위대한 피사로의 제자”라 소개한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Camille Pissarro, Self-Portrait with Hat, 1903, Oil-on-canvas, 41×33 cm, wikipedia)


피사로의 조언을 듣고 문밖을 나가기 시작한 세잔. 그는 이때부터 고독이 짙게 묻어 있는 과거의 그림자를 지우고, 특유의 관찰력과 함께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강렬한 색채를 사용하기 시작한다.


이 작품을 통해 그가 그림을 대하는 태도를 완전히 바꾸었음을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Paul Cézanne, The Bathers, 1898–1905, Oil-on-canvas, 210.5 × 250.8 cm, wikipedia)


그는 빛에 따른 점차적인 색의 변화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과를 그리기 시작했는데, 바로 이 과정에서 그의 천재적인 집요함과 새롭게 눈을 뜬 표현 방식이 조화를 이루어 공간과 시간이 비틀어진 새로운 세상을 창조해 내게 되었다. <Still Life with Apples and a Pot of Primroses (1890)는 이러한 세잔의 변화를 잘 보여주는 작품 중 하나이다.


Paul Cézanne , Still Life with Apples and a Pot of Primroses, circa 1890, Oil-on-canvas, 73 x 92.4 cm, wikipedia


누군가는 그의 사과 그림을 단순한 정물화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현대 미술을 제대로 보는 눈을 갖기 위해선 세잔의 사과가 왜 위대한지를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위 사과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 보자. 나무 테이블과 흰 천 위에 놓인 수 많은 사과들. 그냥 바라보기만 한다면 그저 ‘사과’일 뿐이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님을 인지할 수 있다.




1. 사과가 그려진 시점이 통일되어 있지 않다.
(위에서 본 시점, 옆에서 본 시점, 대각선으로 본 시점 등 다양하다)
2. 원근법을 무시한 채 사과의 크기가 제각기 다르다
3. 생생한 사과와 시들어가는 사과가 공존한다.
(시간의 변화를 의미)
4. 굴러 떨어져야 할 위치에 놓여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사과
5. 사과의 입체성을 강조하기 위한 인위적이고 투박스러운 명암
6. 테이블 면의 위치가 맞지 않고 왜곡되어 있다.


인간의 눈은 카메라와 다르다. 우리는 사물을 한 가지 모습이 아닌 다양한 형태로 바라본다. 1초전의 나와 현재의 내가 다르듯이, 우리가 보는 사물도 어디에서 어떻게 보는지에 따라 실시간으로 변화한다.


세잔이 불멸이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아카데미즘으로 인해 당대 화가들이 보물처럼 여겨오던 원근법을 과감하게 파괴했다. 그리고 다양한 시각과 시간의 변화, 공간의 왜곡을 한 화폭에 모두 융합시킴으로써 그림 속에 새로운 세계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즉, 전통을 부숨으로써 모두에게 새로운 창조의 길과 무한한 가능성을 불어 넣어준 것이다.


또한 그는 자신이 바라보는 대상의 겉에 씌워진 잔가지를 쳐낸 후 사물의 본질을 구, 원기둥, 원뿔의 형상으로 보았다. 사물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 아닌, 자연의 내부 세계를 탐구한 것이다. 그의 창조적인 ‘눈’의 위력은 1882년부터 그리기 시작하여 30점 이상을 남긴, <생 빅투아르 산> 시리즈에서도 나타난다.



“나는 자연에서 구, 원뿔, 원기둥을 본다.”
-1904년 화가 에밀 베르나르에게 보낸 편지
Paul Cézanne, Mont Sainte-Victoire, 1902–04, oil on canvas, 73 x 91.9 cm, wikipedia



우리는 항상 무언가를 보면서 살아간다. 아침에 살포시 우리의 눈을 감싸며 인사를 건네는 태양, 언제나 책상 구석 같은 자리에서 차분히 나를 기다리고 있는 물 컵, 정해진 시간 약속된 장소에서 매일 같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아무 생각 없이 이것들을 바라보면, 세상은 어떠한 변화도 없이 그대로 멈춰 있는 듯하다. 하지만 잘 떠올려 보자. 분명 어떤 날은 구름이 태양을 덮었을 것이다. 물 컵에 들어있는 것이 물이 아닌 다른 것이 들어 있을 때가 있었을 것이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의 말과 표정, 옷차림은 끊임없이 변화했을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누군가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겠지만, 누군가는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



"같은 소재라도 다른 각도에서 보면 아주 강력하고 흥미진진한 대상이 돼. 그러니 앞으로 몇 달 간은 같은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관찰할 거야. 오른쪽으로 보면 전에 못 본 게 나와. 왼쪽으로 보면 또 전에 놓친 게 나오곤 해."
-1906년 9월 8일, 그가 아들에게 쓴 편지의 내용.



https://www.d-art.co.kr/news/articleView.html?idxno=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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