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주의 화가 열전 ⑨] 대상에서 주체로

by 데일리아트

메리 카사트(Mary Cassatt, 1844-1926)의 회화는 ‘응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한 여성의 시선이, 한 아이의 움직임이, 실내 공간의 공기와 온기를 이토록 섬세하게 포착할 수 있다면 그건 단지 기법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어떻게 보는가’에 대한 질문이자, 여성 화가로서 시대를 응시한 선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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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카사트, 특별석(In the Loge), 1878, 캔버스에 유채, 660.4x812.8mm, 보스턴미술관(Museum of Fine Arts, Boston)


1844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앨러게이니에서 태어난 카사트는 유럽 문화에 익숙한 가정에서 자라며 프랑스와 독일을 오가며 교육을 받았다. 미국으로 돌아와 필라델피아 펜실베이니아 미술 아카데미(Pennsylvania Academy of the Fine Arts)에 입학했으나, 여성이란 이유로 정규 미술 교육과 전시에 제약이 많았기에 1866년 단독으로 파리로 유학을 떠난다. 하지만 파리에서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국립 미술학교 입학이 허락되지 않았고, 카사트는 루브르에서 명화를 모사하고, 개인 아틀리에에서 그림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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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카사트, 차 한잔 (Cup of Tea), 1880,캔버스에 유채, 64.7 x 92 cm, 보스턴미술관 (Museum of Fine Arts, Boston)


카사트는 1874년 살롱전에 첫 입선한 이후, 파리에서 활동을 지속하며 프랑스 미술계에서 활동을 이어갔다. 작가로서 전환점은 1877년, 드가(Edgar Degas)와의 만남이었다. 그녀의 작품을 눈여겨 본 드가는 인상주의 전시에 그녀를 초대했고, 1879년부터 그녀는 인상주의의 핵심 일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드가는 그녀를 “남성 화가보다 더 확고한 시선을 가진 이”라며 높이 평가했고, 두 사람은 예술적 대화를 나눈 친구이자 동료였다. 그러나 카사트는 인상주의 내부에서도 독립적인 궤도를 걸었다. 거리와 도시의 환상보다는 가정의 내밀한 순간, 여성의 삶과 관계, 감정의 층위를 탐구하며 자신만의 회화 세계를 확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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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카사트, 아이의 목욕, 1893, 캔버스에 유채, 100.3x66.1cm, 시카고 미술관


그녀가 자주 그린 ‘모자상’은 단순히 모성애의 찬미로 해석되기보다는, 여성 화가에게 허용된 제한된 주제 가운데 전략적으로 선택된 것으로 볼 수 있다. 19세기 후반, 여성이 단독으로 외출하면 매춘부로 오해받던 시대적 맥락 속에서 여성에게 허락된 공간은 오직 ‘집’이었다. 미술사학자 그리젤다 폴록은 『모더니티와 여성성의 공간』에서, 남성과 동일한 장소에 있어도 여성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 공간을 경험했다고 말한다. 베르트 모리조의 <테라스에서>처럼, 여성은 발코니에 머무는 존재였으며 도시를 자유롭게 배회하는 ‘관찰자’의 위치에는 설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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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카사트, 푸른 색 안락의자에 앉은 어린소녀(Young girl in a blue armchair), 1878, 캔버스에 유채, 89.5 x 129.8cm,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카사트는 그 한계를 정직하게 받아들이되, 그 내부에서 새로운 시각을 구성했다. 대표작 <푸른 안락의자에 앉은 소녀>에는 소녀가 긴장하지 않은 자세로 깊이 기댄 채, 손을 뺨에 얹고 시선을 멀리 던지고 있다. 그녀는 더 이상 관찰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시선을 드러내는 존재였다. 이는 당대 남성 화가들이 반복해온 ‘정숙한 소녀’나 ‘이상화된 누드’와는 전혀 다른 여성 이미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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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르누아르, 특별석(The loge), 1874,캔버스에 유채, 80 x 63.5 cm, 코톨드미술연구소(Courtauld Institute of Art, London) (우) 메리 카사트, 특별석(The loge), 1882, 캔버스에 유채, 111.1 x 95.3cm, 워싱턴 내셔녈 갤러리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


비슷한 시기 르누아르가 그린 <특별석(The Loge)>과 메리 카사트의 같은 제목의 작품은, 여성 인물의 위치와 시선을 둘러싼 해석의 차이를 보여준다. 르누아르의 여인은 관능적으로 정면을 응시하며, 뒤편 남성은 오페라글라스를 들고 여성을 관찰한다. 반면 카사트의 <특별석>에서 여성들은 단단한 자세로 객석을 응시하고 있다. 부채로 얼굴을 가린 여성은 스스로를 보호하는 동시에 그 시선에 방해받지 않는다. 이처럼 카사트의 인물은 공간을 인식하는 주체로 존재한다. 이 차이는 응시의 권력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명확히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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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카사트, 젊은 엄마의 바느질, 1900, 캔버스에 유채, 92.4 × 73.7 cm, 메트로폴리탄미술관(Metropolitan Museum of Art)


<어머니와 아이> 연작 또한 단순히 아름답고 경건한 모정의 이미지로 읽히기에는 복합적인 함의를 지닌다. 작품 속 어머니의 손길과 표정, 그리고 일상적 리듬 안에서 포착된 피로와 응시는, 모성애가 타고나는 감정이 아니라 특정 사회적 역할을 통해 학습되고 내면화된 감정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결혼하지 않았고 아이를 낳지 않았던 카사트가 지속적으로 모성 이미지를 그린 것은, 그것이 여성 화가로서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표현 주제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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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카사트, 모자상(mother and child), 약 1890, 캔버스에 유채, 위치타미술관(Wichita Art Museum)


20세기 중반 이후, 린다 노클린의 『왜 위대한 여성 예술가는 없는가?』와 그리젤다 폴록의 연구를 통해 카사트의 회화는 인상주의 내부에서 간과되었던 여성 주체성의 형상화 방식으로 재조명되었다. 이로써 그녀의 작업은 단지 개별 여성 예술가의 성취를 넘어, 시각문화 속에서 성별에 따라 구조화된 응시의 권력과 표현의 양상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게 만드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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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카사트, 자화상, 1878, 종이에 과슈, 60.5x41cm, 메트로폴리탄미술관(Metropolitan Museum of Art)


카사트의 회화는 인상주의의 양식적 실험을 넘어서, 여성의 감각과 경험, 그리고 사회적 역할에 대한 사유의 장을 열었다. 그녀는 당시 여성에게 허락된 주제와 공간을 받아들이되, 그 안에서 새로운 시선을 구축했고, 그림을 통해 ‘관찰당하는 여성’에서 ‘관찰하는 주체’로의 전환을 시도했다. 우리는 종종 인상주의를 ‘빛과 인상의 회화’로만 기억한다. 그러나 그 안에는 삶을 천천히 응시하던 한 여성 화가의 시선이 분명히 존재한다.


카사트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그림으로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그녀의 그림 앞에서 멈춘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으며, 누구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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