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건축학개론' 포스터 /출처: 브레이크 뉴스
정릉에는 사랑이 있다. 첫사랑의 수줍은 떨림이 스며 있던 영화 〈건축학개론〉의 배경이자, 배우 이제훈이 그리움 가득한 눈빛으로 걷던 동네. 그리고 손을 비비며 장난기 섞인 웃음을 터뜨리던 납득이 조정석이 어딘가 골목 어귀에서 튀어나올 듯한 곳.
정릉은 그렇게 아련한 설렘과 소박한 웃음이 나란히 머무는 동네다. 그곳에는 계절마다 표정이 달라지는 나무와 오래된 집들이 있고, 시간을 천천히 써 내려간 사람들이 있었다. 박경리와 신경림, 이중섭, 최만린. 이름만 들어도 한국 근현대예술의 맥을 짚을 수 있는 이들이 정릉에 머물렀다.
정릉은 예술가들이 잠시 머물다 간 곳이 아니라 마음을 내어주고 살아낸 동네다. 그 중에서도 정릉동의 언덕 끝, 사람들의 발길이 조금 덜 닿는 조용한 골목 어귀에 다세대 주택과 ‘아트빌라’라는 이름이 붙은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풍경 속에 조각가 최만린의 삶과 예술이 고스란히 담긴 ‘성북구립최만린미술관’이 있다.
최만린미술관은 골목 왼쪽에 있다.
미술관으로 들어가는 골목은 꽤 좁았다. 차가 담벼락에 긁힐 뻔할 정도였지만 좁은 골목 안, 생각보다 단단하고 단아한 공간이 숨어 있었다.
최만린미술관 정문
정문도 나무로 되어 있어 정겹다. 겉보기엔 소박하지만, 이곳은 한국 추상조각의 개척자 최만린이 1988년부터 2018년까지 30년 동안 살며 작업을 이어온 집이다.
미술관 정원
지상 2층, 지하 1층 구조에 작은 앞마당이 딸려 있고, 통유리창 너머로는 높고 시원하게 열린 천장이 하늘을 향해 열려 있다.
미술관 전경 /출처: 최만린미술관
문을 열고 들어서면 누군가의 사적인 기억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감정을 일으킨다. 전시장 안은 갤러리이면서도 집이다.
미술관 계단
미술관 천장은 나무로 마감되어 있고, 그 아래로 놓인 계단은 조용한 긴장감을 준다. 가장 인상적으로 남은 것은 의외로 ‘계단’이었다. 최만린미술관의 중심을 관통하는 이 계단은 단순한 이동 동선 이상의 역할을 한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다음 층에 대한 기대와 궁금증이 생기고, 위에서 내려다보면 조심스러운 발걸음과 함께 지난 시간들이 떠오른다. 공간 전체가 일종의 수직적 서사 구조를 이루는 듯한 인상을 준다. 사선의 천장, 반듯한 계단 사이에서 소리가 공명하듯 시선도 울린다.
미술관은 작가가 살았던 그대로의 모습을 최대한 유지하며 2020년 성북구립미술관(관장 김보라)의 운영 시설로 다시 문을 열었다. 현관, 창문, 문고리, 벽감, 나무 계단까지 건축가의 손을 최소화한 리모델링으로 삶과 예술이 공존했던 공간의 온기를 그대로 담아냈다. 이곳에는 작가의 숨결이 깃든 126점의 작품도 함께 기증되었다.
무역협회 앞, 최만린 작품 /사진: 최영식
최만린은 공공 조각의 선구자였다. 강남구 무역협회에서 을지로 은행 앞까지 그의 작품은 우리 곁에 있다. 그럼에도 그가 살았던 이 집만큼 조각이 가깝고 따뜻하게 느껴지는 곳은 없다.
전시 포스터 /출처: 최만린미술관
개관 5주년을 맞은 이 미술관에서는 2025년 4월부터 6월까지 기획전 《조각가의 사람들》 1부 <시대의 조각들>이 열리고 있다. 전시는 조각가 최만린의 타계 5주기를 기념하며 그와 한 시대를 살아낸 다섯 조각가의 작품을 조명한다. 김종영, 권진규, 송영수, 박병욱, 그리고 최만린. 한국 근현대 조각사의 맥을 이루는 이들 다섯 작가의 작품들을 한 공간에서 마주한다는 것은 단순한 기념 전시 이상의 울림을 전한다.
권진규, '여성상' /사진: 최영식
테라코타 흙냄새가 배어 있는 듯한 전시실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권진규의 여성상이다. 흙의 질감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테라코타 작품은 마치 누군가의 체온이 조각 위에 남아 있는 듯했다. “이 작가는 성북에 가장 먼저 자리를 잡은 분이었어요.” 김경민 학예연구사는 전시실을 둘러보던 기자에게 말을 건넸다. “해방 직후 성북동에 들어와 이쾌대가 운영하던 ‘성북회화연구소’를 다니며 본격적으로 조형의 길을 시작하셨죠.” 그가 말한 작가는 권진규. 한국 근현대 조각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자, 다섯 조각가들 중 성북이라는 공간에 창작의 씨앗을 가장 먼저 틔운 예술가였다.
그로부터 10여 년간, 조각가들이 성북에 하나 둘 모여들었다. 당시 김종영은 서울대 미대 교수로 재직 중이었고, 제자였던 최만린과 송영수, 후배 박병욱까지도 이곳에서 함께 시대를 살아냈다.
이들은 서양 조각의 영향을 받아 구상 조각을 실험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조형적 언어를 구축해 나갔다. 전시실 안쪽에는 이들이 남긴 인체 조각들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모두 1950-70년대에 제작된 작품들로 조형성과 감정이 균형을 이루는 형상들이다. 형태가 아닌 질감에서 조각가들의 고민과 시대적 감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송영수, 효, 1957, 개인소장 /사진: 최영식
최만린, 얼굴, 1969, 개인소장 /사진: 최영식
박병옥, 면면, 1980년대, 개인소장 /사진: 최영식
최만린, 이브 61-3, 1961, 성북구립미술관 소장 /사진: 최영식
이번 전시의 흥미로운 지점 중 하나는 작품 캡션이 없으면 누구의 작품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들이 공유한 조형 언어의 유사성이다. 각자 독립된 창작자이지만 시대와 공간, 교류 속에서 영향을 주고받으며 어느 순간 ‘함께 만든 감각’이 형성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발걸음을 멈춘 곳은, 최만린의 초기 석고 작품이 놓인 자리였다. 그는 이 작품으로 조각가로서의 첫 주목을 받았고, 생의 마지막까지 이 조각을 곁에 두었다. 지금은 미술관의 중심 공간에 설치되어, 전시가 바뀌어도 그 자리를 지킨다.
최만린, 이브 58-1, 1958 /사진: 최영식
“이 석고상은 돈이 없던 시절 (브론즈처럼 보이도록) 채색을 해서 전시했어요.” 김경민 학예사의 말처럼, 당시 젊은 작가들에게 조각은 곧 생계이자 실존이었다.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공간에서, 그들의 손끝이 닿았던 형상이 지금도 숨 쉬고 있는 것이다.
전시 사진
2층 아카이빙 공간에서 우연히 마주한 한 장의 사진은 전시의 또 다른 재미를 더해주었다. 그 사진에는 최만린 작가와 최불암 배우님이 한 공간에 담겨 있었는데, 알고 보니 두 분은 동서지간이었다. 그런데 실례를 무릅쓰고 솔직한 감상 하나를 덧붙이자면, 사진 속 외모만 놓고 보자면, 단연 최만린 작가가 한 수 위였다. 단정한 옷차림에 단단한 얼굴 선, 조각가의 카리스마가 사진 안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었다.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다섯 조각가들이 한 시대, 한 장소에서 교차하며 남긴 흔적의 가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번 《시대의 조각들》전은 작가 개인의 업적을 기리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 사이에 흐르던 교류와 영향을 구체적인 작품과 기록을 통해 보여주며 한국 현대조각의 흐름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다섯 작가의 이름은 이미 미술사 속에 굳건히 자리 잡고 있지만, 이번 전시는 그 이름들 사이에 존재했던 관계와 흐름에 다시 한번 주목하게 한다. 그 점에서 전시는 예술사적 가치와 함께,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여전히 의미있는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전시장 출구에는 ‘정릉 맛집 지도’가 비치되어 있다. 지역 주민들이 추천한 식당들이 손쉽게 정리되어 있어, 전시를 관람한 뒤 정릉 일대를 천천히 걸으며 동네의 맛까지 함께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예술과 일상의 경계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이 공간에서, 조각가의 시간을 지나 정릉이라는 장소의 현재로 스며드는 경험을 하도록 도와주는 미술관의 따뜻한 배려가 느껴진다.
조각도, 사람도, 공간도 이어진다 – 정릉의 한 미술관에서 < 리뷰 < 미술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