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소, 개, 돼지 등과 함께 인류와 가장 오랜 시간 동안 함께한 동물이다. 후기 구석기시대에 그려진 프랑스 라스코 동굴 벽화에는 무려 300마리가 넘는 말이 그려져 있고, 근처 다른 유적에서도 말뼈가 출토되었다. 말을 길들인 것은 노력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 말의 강인한 체력과 속도는 자동차 등장 이전까지 유일한 육로 이동 수단이었고, 고대 전쟁에서 ‘기병(騎兵)’은 승리를 판가름낼 수 있는 중요한 요소였다.
이제는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하늘과 땅, 바다를 신속하게 다닐 수 있지만, 말은 여전히 강한 힘과 빠른 속도를 상징하는 존재이다. 이와 같은 말의 성격이 신성화된 사례가 바로 ‘용마(龍馬)’이다. 용과 말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알려진 용마는 어진 성군을 상징하는 매개체로, 동양 문화 속 창조신의 동반자로 등장한다.
서양의 해마, 히포캄푸스
고대인들은 말과 함께라면 어디든지 갈 수 있다고 믿었다. 육지는 물론이요, 하늘과 바다까지 섭렵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동물이 바로 말이다. 이에 창공을 가르는 서양의 ‘페가수스(Pegasus)’와 동양의 ‘천마(天馬)’는 영웅을 보좌하거나 죽은 이의 영혼을 안내하는 메신저 역할을 했다. 현재 고구려 고분벽화와 경주 천마총(天馬塚) 출토 다래에 그려진 천마는 무덤 주인을 천상계로 바래다주는 ‘승선사상(昇仙思想)’의 의미가 담겨 있다.
(좌)청동 그릇 문양의 벨레로폰과 페가수스, 그리스 기원전 5세기. ⓒ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우)경주 천마총 출토 말다래, 신라 4-5세기. ⓒ 국립경주박물관
그렇다면 바다를 달리는 말은 무엇이 있을까? 우선, 서양 문화 속 바다를 상징하는 말의 대표 사례는 ‘히포캄푸스(Hippocampus)‘가 있다. 그리스어로 말을 의미하는 단어 ‘히포(Hippo)’와 바다생물을 의미하는 ‘캄푸스(Campus)’의 합성어인 히포캄푸스는 ‘바다의 말’을 뜻하며 ‘히포캠프(Hippocamp)’ 혹은 ‘히포캄포이(Hippokampoi)’라고도 부른다.
(좌)히포캄푸스상, 그리스 기원전 3세기. ⓒ 미국 LA카운티박물관 (우)트리톤과 히포캄푸스 장식 펜던트, 독일 19세기경. ⓒ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
히포캄푸스는 말의 상반신과 물고기 하반신을 지닌 모습이며, '유니콘(Unicorn)'처럼 이마에 뿔이 있거나, 페가수스처럼 날개 달린 이미지로도 표현된다. 이와 같은 히포캄푸스는 현대사회에도 영향을 미친다. 현재 우리가 ‘해마(海馬, Sea horse)’라고 부르는 실고기과 어류의 학명과 뇌 구조 가운데 기억과 감정을 조절하는 기관 명칭이 바로 히포캄푸스에서 비롯된 것이다.
(좌)포세이돈과 히포캄푸스 모자이크, 로마 3세기. ⓒ 튀니지 수스고고학박물관 (우)히포캄푸스가 새겨진 페키니아 동전 문양의 히포캄푸스, 레바논 기원전 5-6세기. ⓒ 베이루트 국립고고학박물관
히포캄푸스는 주로 고대 그리스와 로마 미술에서 볼 수 있다. 바다의 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포세이돈(Poseidon)’과 ‘테티스(Tethys)’, ‘트리톤(Triton)’ 등 바다의 신을 태우고 있다. 특히, 포세이돈의 경우 히포캄푸스가 끄는 마차를 몰며 지진과 해일을 일으키며 등장하는데 로마의 문학가 ‘스타티우스(Statius, 45-96)’의 『아킬레스(Achilleid)』에는 그 모습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잔잔한 해수면 위로 우뚝 솟은 바다의 신이 삼지창으로 히포캄푸스 무리를 몰고 온다. 히포캄푸스들은 앞발로 물보라와 물거품을 일으키며 빠르게 질주하고, 뒤꼬리는 거칠게 요동치며 모든 흔적을 지워버린다”
이처럼, 히포캄푸스는 바다의 신을 태운 명마이자 지진과 해일을 일으킬 만큼 강력한 힘을 지닌 존재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히포캄푸스의 시작이 유럽이 아니라 중동지역인 소아시아였다는 것이다. 현재 시리아와 레바논에 해당하는 ‘페키니아(Phoenicia)’는 당시 무역의 중심지였던 지중해 ‘티레(Tyre)’를 수도로 삼은 국가로, 해상 교역을 통해 발전한 왕국인 만큼 바다와 관련된 무수한 신화와 상징물이 탄생했다. 여기서 히포캄푸스는 페키니아의 수호신인 ‘멜카르트(Melqart)’를 태우고 수면을 달리고 있다. 이와 같은 히포캄푸스는 후대 그리스와 로마에도 전파되어 이들이 섬긴 바다의 신을 태운 모습으로 표현된다.
바다의 지배자, 용마
서양에 히포캄푸스가 있다면 동양에는 용마가 있다. 용마는 물과 관련 깊은 동물로 빠른 발놀림으로 물 위를 달리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또한 용마는 명마를 지칭하는 단어로 쓰이기도 하는데 『주례(周禮)』에는 “말의 크기가 8자 이상이면 용(龍)이라 하고 7자 이상이면 내(騋)라고 하며 6자 이상이면 마(馬)라고 한다.”라는 설명이 있다. 고대 동양에서 힘이 세고 뛰어난 말을 용에 빗대어 표현한 셈이다.
(좌)『삼재도회』 도설 용마, 중국 명대 1609년. ⓒ 『삼재도회』 (우)전윤두서, 팔준도 중 용등자, 조선후기. ⓒ 국립중앙박물관
상상 속에 등장하는 용마의 외모는 용과 말이 섞인 기이한 모습이다. 중국 송나라 때 편찬된 설화집 『태평광기(太平廣記)』에는 운남성(雲南省) 경곡현(景谷縣)에 출현한 용마에 관한 기록이 있는데, 길이는 9척에 용의 모습을 하고 있고 몸에는 비늘과 단단한 껍질이 있으며 비늘에는 오색의 가로무늬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와 관련하여 중국 명나라 때 편찬된 『삼재도회(三才圖會)』와 『대명회전(大明會典)』에 표현된 용마는 온몸이 비늘로 덮여 있고 용의 뿔과 수염이 달린 진기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국왕과 창조신을 돕는 존재
태조 이성계(太祖 李成桂, 재위 1392-1398)에게는 조선 건국에 도움을 준 여덟 마리 말인 ‘팔준마(八駿馬)’가 있었다. 이 말들은 기린과 노닌다는 ‘유린청(游麟靑)’, 사자와 닮은 ‘사자황(獅子黃)’ 등 범상치 않은 이름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중에는 마치 용이 날아오르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는 자줏빛 말인 ‘용등자(龍騰紫)’도 있었다. 용의 몸짓을 지니고 있으니, 용등자는 곧 용마인 것이다.
이후, 조선 제7대 왕인 세조(世祖, 재위 1455-1468) 역시 자신의 열두 마리 ‘십이준마(十二駿馬)’에게 거창한 이름을 지어 주었는데 청룡의 빛깔을 지닌 ‘섭운리(籋雲螭)’, 날개 달린 용을 닮은 ‘익비룡(翼飛龍)’이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조선 왕실의 용마는 국왕만이 소유할 수 있는 명마인 동시에 왕권 계승의 정당성을 표방하는 상징물이었다.
(좌)『삼재도회』 도설 복희씨, 중국 명대 1609년. ⓒ 『삼재도회』 (우)『개벽연역통속지전』 도설 복희씨와 용마, 중국 청대 1635년. ⓒ 『개벽연역통속지전』
현재 미술로 표현된 용마는 의장기부터 민화에 이르기까지 꽤 많은 사례가 있다. 그런데 작품 속 용마를 보면 등에 정체불명의 물체를 얹고 있거나 점박이가 새겨진 모습이 확인된다. 이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정답부터 말하자면 용마 등 위에 표현된 것은 팔괘(八卦)의 초안이다.
여기서 말하는 팔괘란 우주 만물에 존재하는 모든 변화와 현상을 건(乾)·태(兌)·이(離)·진(震)·손(巽)·감(坎)·간(艮)·곤(坤)으로 이루어진 기호로 표기해 뜻과 구조, 질서 등을 정리한 것을 의미한다. 팔괘를 구성하는 각 기호에는 그에 해당하는 자연현상부터 방위, 신체 부위, 동물 등 만물의 요소가 배속되어 있다. 우리나라 태극기의 건·곤·감·이가 바로 팔괘 중 사괘에 해당하는데 각각 하늘과 땅, 불과 물을 뜻하며 이는 우주 만물의 밑바탕이 되는 기본 요소이다.
동양 신화에 의하면 이 팔괘를 만든 이는 창조의 신인 복희씨로 알려져 있다. 현재 『주역(周易)』을 비롯하여 『초사(楚辭)』, 『열자(列子)』 등 여러 기록에는 복희가 세상을 다스리면서 팔괘를 만들고 만물의 모든 이치를 통달했다는 내용이 확인된다. 그렇다면, 용마 등에 표현된 팔괘 기호와 복희씨는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좌)명현제왕사적도 중 복희씨와 용마, 조선후기. ⓒ 국립중앙박물관 (우)서울 경복궁 광화문 천장 홍예화 중 하도낙서, 1970년대 복원. ⓒ 김용덕 촬영
이 역시 수많은 기록에 찾아볼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5,500년 전 어느 날, 복희씨가 황하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강 한가운데가 분수처럼 솟구치더니 용마가 자신의 곁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복희씨는 서서히 다가오는 용마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용마 등 위에 있는 55점의 그림을 그대로 따라 그렸다. 이후 네모난 단에 앉아 용마 등 위에 있던 그림을 보고 팔방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를 듣고는 총 여덟 종류의 부호를 창조했다. 이것이 바로 ‘하마부도(河馬負圖)’ 설화로 음양의 세계관을 토대로 자연과 인간계에 존재하는 사물과 현상, 즉 ‘삼라만상(參羅萬像)’의 기초가 되는 팔괘의 시작이다.
이와 같은 하마무도 설화는 동양 유교에 근본이 되었고 중국 하남성 맹진현에는 복희씨와 용마 설화를 기념하는 ‘용마부도사(龍馬負圖寺)’가 건립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강에서 팔괘 그림을 얻었다는 뜻인 ‘하도(河圖)’는 또 다른 전설 속 인물인 우(禹) 임금이 낙수(洛水)에서 나타난 거북의 등껍질에서 글을 얻었다는 ‘낙귀부서(洛龜負書)’ 설화와 만나 ‘하도낙서(河圖洛書)’를 이루게 된다. 현재 경복궁 광화문(光化門) 홍예 천장화의 거북과 용마가 바로 하도낙서 설화를 형상화한 것이다. 이와 같은 용마와 거북은 민화로 표현된 문자도에서도 확인되며 유교 사상과 올바른 정치 이념의 뿌리를 새기고자 하는 뜻을 지니고 있다.
마치며
동양철학과 유교 정치의 근본이 된 하도낙서는 물에서 출현했다. 이는 생명의 근원인 물에서 우주의 근원과 진리를 깨달을 수 있음을 의미하며, 그 중심에는 물을 다스리는 용마가 있었다. 용마는 말의 관념이 극대화되어 탄생한 신령스러운 동물이다. 이에 용마는 예로부터 유교 사상을 표방하는 매개체로, 성군의 상징으로 비추어졌다. 결국, 용마가 출현하면 유교 문화 속 이상세계인 태평성대(太平聖代)가 도래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 국민주권정부가 새롭게 출범했다. 대한민국의 주인인 국민이 모두 웃을 수 있을 때 용마가 출현하는 태평성대가 도래한다는 것을 현 정부의 공직자들이 알고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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