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무실에 가득찬 애장품들
내가 처음 예술작품을 수집하게 된 건 아주 우연한 계기였다. 하지만 그 우연이 500여 점에 달하는 예술작품 컬렉션으로 이어질 줄은, 그땐 정말 상상도 못 했다. 지금은 150점 가량의 일반 작품과 350점 정도의 작가 자화상을 소장하고 있다. 작가의 얼굴, 곧 자화상만 모은다는 건 나름의 방향성과 고집이 있는 수집이다. 그 출발점에는 잊을 수 없는 세 작품이 있다.
나의 첫 컬렉션, 박정희 대통령 휘호
사람들은 보통 첫 수집품을 운명처럼 기억한다고들 한다. 내게 있어 첫 번째 작품은 단순한 예술작품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시대를 상징하는 상징물이자, 내 삶의 전환점이 된 '붓글씨'였다. 바로 대통령의 글씨, '대통령은 박정희'라는 등식이 자연스럽게 성립하는 유신시기에 쓴 글씨였다. 지금으로부터 45년 전, 교직에 계셨던 아버지는 어떻게 구했는지 박대통령의 글씨 작품 한 점을 보관하고 계셨다. 휘호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꿈과 사랑과 슬기가 샘솟는 어깨동무”
(1972년 1월 1일, 대통령 박정희)
『어깨동무』 나와 비슷한 연배는 알 것이다. 모든 어린이들이 갖고 싶어하는 어린이 잡지. 때로 『어깨동무』를 사면 딸려오는 장난감도 무지 많았다. 아마도 『어깨동무』를 발간하는 잡지사에 준 글씨인가? 힘이 느껴지는 필획과, 당대 국가 지도자가 직접 쓴 문구. 당시엔 그저 '대통령 글씨'라 하여 무게감 있게 여겼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시대정신을 담은 상징적인 메시지였다.
이 작품은 아버지의 서가에 오랫동안 보관되어 있던 것으로, 대학생이던 내가 어느 날 아버지께 양복 한 벌값을 해드리고 정식으로 양도받았다. 아마도 5남매 중에서 막내인 내에게 줄 요량으로 다른 형제들의 눈총 때문에 아버지가 이런 형식을 취했던 것 같다. 이 때는 액자도 없는 글씨여서 그림을 받은 후 인사동에서 액자를 사다가 넣어 보관했다.
그 순간부터 내 인생 첫 번째 예술작품 소장이 시작되었고, 이 휘호는 지금도 내 소장품 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상징적인 작품으로 자리하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평소 붓글씨에 능했고, 국정철학과 개인 신념을 붓에 담아 국민에게 전하곤 했다. '꿈과 사랑과 슬기'라는 단어 역시 단순한 미사여구가 아니라, 산업화 초기 대한민국 사회에 절실히 필요했던 가치들이었다. 정치적 평가를 떠나, 글씨 한 점이 지닌 힘과 의미는 지금 봐도 무겁고 진지하다.
자화상 수집가의 길로 들어서게 만든 변시지 화백의 작품
두 번째 작품은, 나를 본격적인 자화상 수집가의 길로 이끈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2011년 봄, 나는 직장생활 하며 시간여유가 있으면 인사동을 자주 들락거렸다. 인사동을 거닐다가 변시지 작가의 1호 크기 소품을 구입했다. 바닷가를 배경으로 소나무 한 그루, 그리고 그 아래 서 있는 노인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그림이었다. 구매가는 150만 원.
감정서를 받기 위해 알아본 결과, 변시지 작가는 제주도에서 직접 감정을 해준다는 소식을 들었다. 감정료는 작품당 70만 원, 항공료까지 더하면 구입가에 맞먹는 비용이었다. 망설이던 찰나, 작가 측에서 “서울 돈암동에 사는 아들을 방문할 예정”이라며 몇 달 뒤 대면 감정을 예약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선뜻 감정료를 먼저 지불하고 기다렸다.
그리고 2011년 7월 7일, 마침내 돈암동 작가의 아들 사무실에서 작가와 만났다. 내가 가져간 작품을 본 그는 “내 그림이 맞다”며 직접 감정서를 써주셨다. 내가 별도로 준비해 간 캔버스 보드에 사인을 부탁하자, 작가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또 한 점의 작품을 선사해 주셨다.
볼펜으로 그린 그림엔 찬란한 햇빛 아래 지팡이에 의지한 노인이 서 있었고, 멀리 수평선 아래엔 돛단배가 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작가 자신을 닮은 자화상인 듯했다. 즉석에서 써준 그 그림이 내가 돈을 지불하고 구매한 작품보다 더 멋져보였다. 나는 그 순간 ‘작가의 자화상을 모아보는 것도 의미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되었다. 그 한 점이, 오늘의 350점 자화상 컬렉션의 출발점이 되었다.
칼국수 집에서 얻은 박재동 화백의 작품
세 번째 작품은 2020년의 어느 겨울날,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얻었다. 학고재에서 열린 ‘현실과 발언’ 40주년 기념전과 토론회에 참석한 뒤, 민중미술 작가들과 함께 인근 칼국숫집에 들렀다. 박재동 작가도 함께였다. 식사를 기다리던 중, 박 작가는 수저가 담긴 종이 수젓집을 펼쳐 들고, 즉석에서 우리 일행 여섯 명을 위에서 아래로 빠르게 스케치했다. 마치 하나의 스냅사진 같았고, 각자의 얼굴에 당시의 대화와 분위기가 그대로 담겨 있었다.
가수 이제하의 자화상
그날의 그림은 내게 특별한 기억이 되었고, 이후 박 작가를 포함한 ‘현실과 발언’ 동인 작가들을 차례로 찾아가 자화상을 의뢰하게 되었다. 그렇게 수집의 폭은 넓어졌고, 나만의 예술 인맥과 기록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내게는 소중한 추억의 장면이기도 하고 이야기가 있는 재미있는 그림이다. 이후 '현실과 발언' 동인 멤버 중 생존 작가들을 거의 찾아 뵙고 자화상도 의뢰하여 소중하게 소장하게 되었다. 이제 본격적인 작품구매를 시작한지 15년 정도 되었다. 그동안 작품의뢰에 멋진 작품으로 도움을 주신 작가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린다. 누군가는 자화상을 보고 ‘단조롭다’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내겐 그 속에 각기 다른 인생, 시대, 그리고 눈빛이 담겨 있다. 작가가 자신의 얼굴을 그리고 나에게 넘겨준다는 건, 그만큼 진심 어린 교류였다고 믿는다.
[릴레이, 내가 사랑하는 예술품 ⑤] 이원주 대표 - 500점 컬렉션의 시작, 박대통령 휘호 < 미술일반 < 미술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