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 독립 영화 배우] 〈아들에게 가는 길〉

by 데일리아트

스크린의 가장 최전방에서 작품을 완성하는 존재는 두말 할 것도 없이 배우일 것이다. 그들에 의해 영화의 완성도가 결정된다. 지금, 주목받아야 할 영화 배우들을 소개한다. ‘발굴! 독립 영화배우’는 단지 연기 잘하는 배우를 넘어, 자신만의 색을 지닌 배우들의 진짜 이야기를 조명하는 기획이다.

첫 순서는 2017년 개봉한 〈아들에게 가는 길〉에서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아들을 둔 아버지(성락 역)를 연기한 배우 서성광이다. 영화를 만들기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았다. 감독을 맡은 최위안 감독은 2014년 서울영상위원회로부터 독립영화 제작지원금을 받은 후에도 1억여 원 남짓의 추가 제작비를 마련해야 했다. 막상 촬영에 들어가자도 '장애인 영화를 누가 보겠느냐'는 사회적 편견과 냉대에 가로막혀, 2년이 지난 후에야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 영화에서 농인의 아버지를 맡은 배우 서성광도 영화 제작만큼 고되고 힘든 사연이 있었다. 배우 서성광은 독립영화 배우라기 보다는 예전 인기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맞선남 역으로 주가를 올렸던 배우다. 배우가 연기한 영화와 드라마 제작 이야기와 함께 서성광 배우의 연기 철학을 듣는다. 참 진솔한 배우 서성광의 매력 속으로 빠져보자. 독자들도 빠져나오기 힘들 것이다.

- 연기에 들어선 동기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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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채 합격 후 연기 시작 당시 /사진: 서성광

군대 전역을 하고 우연히 여의도에 가게 되었는데 걷다가 들어간 곳이 모 방송국이었습니다. 방송국 안 야외 벤치에 앉아있는데 견학을 온 유치원생들이 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아저씨는 뭐하는 사람이에요?”

당황스러운 질문이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학생도 아니고 직장인도 아닌, 무얼 하고 싶은지도 모르는 사람이었으니까요. 대답을 못했습니다.

“아, 신문팔이 아저씨구나!”

한 아이가 말했습니다. 제가 매고 있던 가방의 지퍼가 살짝 열려있었고 그 안에는 무가지들이 잔뜩 들어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돌아가고 멍하니 앉아 있다가 그중 하나를 펼쳤습니다. 일당 6만원이라는 구인광고가 보였습니다.

다음날 저는 드라마 촬영장에 가 있었습니다. 동시녹음 기사님의 보조가 되어서 카메라와 녹음기의 라인을 연결해주는 아르바이트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르바이트를 간 날, 쉬는 시간에 카메라 감독님이 저를 부르셨습니다.

“방송국 공채 탤런트 시험 봐 봐.”

당황스러운 제안이었습니다. 그냥 흘려듣고 아르바이트는 끝이 났습니다. 4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이런 저런 일을 하다가 취업을 하게 되었는데 회사가 폐업을 했습니다. 일자리를 잃고 낙심한 순간, 모 방송국 공채 탤런트 시험 공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원서를 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무식하면 용감했습니다. 그 해 겨울, 방송국의 그 야외 벤치에서 합격한 동기들과 단체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카메라 감독님이 추천한 방송국이 아니라 제가 정처 없이 떠돌다 우연히 들어간 방송국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연기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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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내이름은 김삼순'에서 맞선남으로 유명해졌다. /출처: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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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 가는 길' 포스터

- 독립영화 〈아들에게 가는 길〉에서는 가족이라는 주제를 섬세하게 풀어냈다. 촬영하면서 감정적으로 가장 몰입되었던 장면은 어떤 부분이었나?

아쉽게도 감정적으로 가장 몰입이 된 장면은 편집이 되어서 극장에서는 보지 못했습니다. 극중 아내에게 어머니의 죽음을 알리려고 가는 장면이었습니다. 병실 문 밖에서 잠이 든 아내를 바라보다가, 어떻게 전달해야 될지 몰라 눈물을 참고 들어가서 잠든 아내를 조심스럽게 깨우고, 눈을 겨우 뜬 아내에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하는 수어 장면.

아내와 어머니의 어린 시절 아픈 추억을 잘 알고 있는 남편이기에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다시 재회한 모녀의 영원한 이별을 알리는 장면은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납니다. 비록 그 장면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지만 〈아들에게 가는 길〉을 꼭 한 번 보시기를 당부드립니다. 색다른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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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틸 컷 /출처: 아들에게 가는 길

- 최위안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나? 감독이 굉장히 섬세한 연출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연기자 입장에서 어떤 디렉션이 인상 깊었는지, 혹은 놓치지 않고자 했던 디테일이 있었나?

첫 촬영 때는 분위기가 좋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인물에 대한 해석에 조금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죠. 저는 전반적으로 어두운 분위기가 될 수도 있는 영화라서 오히려 겉으로는 밝고 엉뚱하지만 속이 깊은 캐릭터로 표현하고 싶었는데, 감독이 시나리오를 집필하면서 생각했던 캐릭터와 달라 당황했던 것 같았어요.

하지만 최 감독이 저를 믿고 촬영이 진행될수록 만족했다고 얘기했습니다. 석양이 지는 도로에 잠시 차를 세운 다음 아내의 수어를 담담히 들어주는 장면이 있었는데, 촬영이 끝나고 최 감독이 만족하며 저에게 몇 마디 했는데 오히려 저는 당황스러웠습니다. 감독이 원하시는 디테일한 연기와 맞아떨어진 순간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연기에 대한 플랜 자체를 잡지 않았어요. 무언가를 하려는 것보다 자연스러운 흐름에 맡기는 게 보는 입장에서는 더 디테일한 연기로 비춰질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배우는 자신의 캐릭터를 연기할 때, 우선 오디션을 통과해야하고 촬영이 진행되면 감독과 다른 배우들과 스텝들의 공감을 얻어야하고 완성이 되고 난 다음에는 관객이나 시청자에게 감동도 줘야하는 무게를 짊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배우가 자신의 연기 철학을 담아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감독과 배우 사이에는 이런 궁합같은 것이 있어야 합니다. 서로가 통하면 어떤 일이 벌어져도 믿고 함께하며 서로가 맞지 않으면 사소한 씬 하나도 이해 차이가 생기고 불협화음이 납니다. 하지만 궁합이 맞고 불협화음이 있고는 작품의 성공과는 상관이 없을 때도 있습니다. 참 재미있어요.

- 눈이 펑펑 내리던 날, 내복 차림으로 문밖에 나서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배우로서 그 장면을 어떻게 준비했고, 직접 체감한 감정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아마도 그 때는 많이 추웠고 아이가 정말 떨고 있었습니다. 아이를 안고 문을 두드리며 안으로 들여보내달라는 수어를 하는데 의도치 않게 관객들은 그 장면에서 많이 웃으셨던 것 같습니다. 정말 추워서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추위를 체감한 게 관객들에게는 재밌었나 봅니다.

일기 예보에 눈이 내린다는 정보가 없는 날이었습니다. 지방 촬영장에 처음 도착했는데 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해서 원래 찍으려던 씬을 다음으로 넘기고 마지막 엔딩 씬을 먼저 촬영하게 되었습니다. 스텝들이 고생을 많이 한 씬 입니다. 펑펑 내리는 눈을 고스란히 다 맞으면서 촬영에 들어갔습니다. 그런 순간에 배우로서 준비 할 것은 NG를 내지 않고 한 번에 촬영을 끝내기 위한 고도의 집중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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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틸 컷 /출처: 아들에게 가는 길

- 2개월간의 수화 연습 과정 중 가장 힘들거나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었나?

2개월은 정말 짧은 시간이었죠. 캐스팅 당시, 저는 연기자의 길을 그만두기로 결심한 시기였어요. 연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로 동대문에 일을 다니기 시작한 지 2주 정도 된 날이었습니다.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같이 작업을 한 적이 있던 프로듀서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다짜고짜 용산으로 소주 한 잔 하러 오라는 겁니다. 프로듀서는 감독의 집 겸 영화사에서 저를 맞았어요. 내가 잘못 왔구나 했죠. 감독은 몇 마디 나누더니 저에게 농인 역할을 제안했어요. 수어를 해야 되는데 2개월 뒤 촬영이라는 겁니다. 저는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었어요. 이미 영화는 안 하기로 마음 속으로 결정을 했었기 때문이죠. 그 역할을 하지도 않겠지만 아무리 연기라도 처음 해 보는 수어를 2개월 안에 마스터한다는 것은 정말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오는 가방에는 시나리오가 들어 있었어요. 6개월 동안 남자 배우를 못 찾았다고 했습니다. 이미 아내 역을 맡은 배우는 수어를 배우기 시작한지 꽤 오래되었고 저는 일 끝나고 퇴근해야 연습할 시간이 있었죠. 그런데 바로 거절을 못했습니다. 3일을 고민하다가 시나리오를 돌려주려고 갔죠. 그런데 누군가가 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뒤돌아보니 예전에 캐스팅 되었던 영화에 같이 출연했던 배우였습니다.

아쉽게도 그 영화는 촬영을 20%나 진행하고도 투자자의 투자 중단으로 촬영을 마치지 못했던 작품이었습니다. 선배는 배우 일을 그만두고 아들역할을 맡은 아역배우의 매니지먼트 대표자격으로 현장에 왔던 것입니다. 아버지 역할을 제가 하는 거냐고 너무 반가워하는 아역배우와 서 있는데, 순간 그냥 이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며가며 수어를 연습했고 퇴근하고 집에 오면 비몽사몽으로 거울 앞에서 연습했습니다. 수어는 기본이지만 실제 농인들의 표정이나 행동이 표현되어야 하기에 수어를 가르쳐 주시는 농인 선생님의 행동 하나하나를 받아들이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감독님이 쓴 시나리오를 실제 농인들이 의미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바꾸어서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제가 하는 수어도 중요하지만 상대 배우가 하는 수어의 의미도 알아야 리액션이 가능합니다. 시간이 너무 없어서 상대 배우의 수어는 익힐 시간이 없었습니다. 대신 상대 배우의 대사를 외웠습니다. 상대 배우의 대사를 머릿속으로 프린트하며 수어와 표정을 받아줘야 했습니다. 만약 다시 그런 일을 한다면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2주 촬영이 예정이었지만 보충 촬영까지 하다 보니 한 달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저는 회사를 그만두고 촬영장에 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냥 연기자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https://youtu.be/Gij6ihqZuao

2편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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