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야 예브게니예비치 케르니츠키 (Ilia Evgenievich Kernitskii)
"색은 감정이며, 감정은 언어입니다."
러시아 출신 화가 일리야 케르니츠키(Ilia Kernitskii, b.1980)의 이 한마디는 그의 예술 세계를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는 진술이다. 그의 회화는 언어보다 먼저 다가와 색으로 말을 걸고, 감정으로 마음을 두드린다. 그것은 단순한 시각적 재현을 넘어, '느끼는 행위' 자체를 회화의 본질로 삼는다.
1980년 러시아 극동 지역 하바롭스크에서 태어난 그는, 음악가였던 아버지와 창작 인형을 만들던 어머니 사이에서 자라며 예술을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로 받아들였다. 하바롭스크 지방 예술대학을 졸업한 후, 극동국립인문대학교에서 장식 및 응용미술을 전공하며 본격적으로 예술가의 길을 걸었다. 이후 회화, 드로잉, 조각,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동시대 미술의 경계를 유연하게 탐색해오고 있다.
그의 작업은 지역과 장르, 형식의 경계를 가볍게 넘나든다. 러시아를 비롯해 중국, 말레이시아, 스페인, 미국 등 다양한 국가에서 전시하였고, 2015년 러시아 창작예술가 연합으로부터 은메달을 수상했다. 현재는 중국 허베이미술대학에서 후학을 가르치며 예술가이자 교육자로서 활동하고 있다.
방학이면 그는 정해진 거처 없이 세계 곳곳을 여행하거나 중국의 여러 도시를 떠돌며 자연과 직접 마주한다. 어떤 도시는 물빛처럼 고요하고, 어떤 마을은 바람처럼 빠르게 다가온다. 그는 현장에서 느낀 빛과 공기, 감정의 결을 즉흥적으로 포착하며 붓을 든다.
정형화된 구도나 반복되는 패턴보다는, 순간의 감각에 충실한 붓질과 색의 조화가 두드러진다. 그의 여정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감정의 지형을 새롭게 그려나가는 과정이다.
작품 소개
일리야 케르니츠키, 베이징의 음악바, 2025
도시의 야경 속에서 전통 건축과 현대적 감성이 공존하는 풍경을 리듬감 있는 색채로 담았다. 기하학적인 붓질과 색의 대비가 도시의 에너지와 음악적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일리야 케르니츠키, 상하이 수상마을, 2025
수로와 아치형 다리, 고건축이 어우러진 수상 도시의 풍경이 부드러운 붓터치로 그려졌다. 하늘과 물빛이 이어지며 평화로운 일상의 순간이 서정적인 풍경으로 전환된다.
일리야 케르니츠키, 마음의 소망, 2025
푸른 하늘 아래 소원을 담은 붉은 리본들이 오래된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고, 그 뒤로는 흰색 전통 건물들이 평온하게 자리하고 있다. 일상 속의 간절한 염원이 자연과 조화롭게 어우러진 장면이 잔잔한 감동을 준다.
일리야 케르니츠키, 구름 속의 풍경, 2024
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논밭과 강줄기가 다채로운 색면으로 펼쳐지며 시선을 사로잡는다. 짙은 산 능선과 떠다니는 구름, 드넓은 하늘이 어우러져 탁 트인 시공간을 형성한다. 하늘 위에서 대지를 조망하듯, 자연의 리듬과 빛의 분포를 회화적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일리야 케르니츠키, 맑게 갠 날, 2020
들녘 위로 펼쳐진 푸른 하늘과 겹겹이 쌓인 구름이 광활한 자연의 숨결을 전한다. 거친 붓질과 다채로운 색의 층위가 대기의 흐름과 정서적 긴장을 생생히 그려낸다. 수평선 너머로 번지는 빛과 어둠이 어우러져, 순간의 감정을 담은 서정적 풍경을 완성한다.
일리야 케르니츠키, 바닐라 풍경, 2022
연노란 모래 언덕 위로 거칠게 흩어진 풀잎들이 강풍을 머금은 듯 생동감 있게 흔들린다. 간결하면서도 대담한 색면과 나이프 터치는 자연의 리듬과 공간감을 압축적으로 표현한다. 넓게 열린 하늘과 대비되는 낮은 시선의 구성은 고요하면서도 긴장된 순간을 시각화한다.
일리야 케르니츠키, 해바라기들, 2024
강렬한 노란색 배경 위에 추상적으로 분해된 해바라기 형상들이 역동적으로 펼쳐진다. 나이프와 두꺼운 물감의 질감 표현은 생명력 넘치는 여름의 정서를 시각적으로 전달한다. 해바라기의 형태는 해체되었지만, 그 안의 빛과 생동감은 화면 전체에 진하게 퍼져 있다.
그의 풍경화는 단지 장소의 재현이 아니다. 그는 그 장소에서 느껴지는 감정, 그리고 존재의 떨림을 섬세하게 붙잡아낸다. 중국 안후이의 안개 낀 산자락, 허베이의 늦은 오후 바람, 말레이시아의 습기 어린 공기조차도 그의 손끝에서 색의 언어로 변주된다. 그것은 외지인의 시선이 아니라, 그 풍경 안에서 '타자로 존재하는 자'의 정서적 기록이다.
그의 그림을 마주할 때면 자연스럽게 데이비드 호크니와 빈센트 반 고흐가 떠오른다. 색에 대한 과감한 접근, 빛을 포착하는 예민한 감각, 그리고 찰나의 인상을 빠르게 붙잡아내는 회화적 리듬은 이 세 화가를 하나의 흐름 속에 이어보게 만든다.
케르니츠키는 색으로 말하고, 빛으로 느끼며, 풍경 속 감정을 깊이 있게 전한다. 그의 그림 앞에서 우리는 단순히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스며 있는 시간과 감정을 함께 호흡하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는 예술이 건네는 가장 깊은 위로를 발견하게 된다.
[China Art 내가 만난 화가 ①] 색은 감정, 감정은 언어 - 케르니츠키 < 미술일반 < 미술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