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데일리아트 Jul 24. 2024

세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음악

[김정식의 재즈 에세이]

세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음악


재즈 이야기를 시작하며 스스로에게 물어 봤다. 다른 음악, 다른 예술과 비교할 때 재즈가 갖는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일까? 그 물음에 대하여 큰 고민 없이 나온 답은 ‘낭만성’이었다. 재즈를 이성적인 머리로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열정적인 연주를 지켜보고 있자면 각각의 감성을 흔들어 놓는 낭만적 요소로 가득 차 있음을 느끼게 된다.

존 콜트레인, 김정식 그림

원래의 음계에서 반음을 끌어내린 블루노트(blue note), 화성의 모호함을 추구하는 각종 텐션 음, 그리고 간혹 의도적으로 거칠고 투박하게 연주하는 악기 소리가 그러하다. 또 수시로 행해지는 불규칙한 당김음(싱커페이션, syncopation)과 대칭을 이루지 않아 뒤뚱거리는 듯한 스윙 리듬, 거기에 악보를 보지 않고 끝없이 연주하는 즉흥 연주 등, 대부분 이전의 음악 전통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독특한 연주 방식이다. 이것들을 하나하나 개별적으로 살펴보면 다소 부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숙련된 재즈 밴드의 연주를 통해 듣게 된다면 다른 음악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독특한 매력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누군가는 재즈를 ‘삐딱한 음악’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는데, 모든 사람이 이러한 낭만성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낭만주의의 전주곡으로 여겨지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쓴 괴테도 고전적인 것은 건강하고 낭만적인 것은 병적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물론 그 시대상을 꼬집어 한 말이겠지만 우리는 타인의 낭만성에 대해 그리 관대하지 못하다. 누구나 낯선 것보다는 익숙한 것을 통해 즐거움을 얻고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빌 에반스, 김정식 그림

엄격한 형식 안에서 질서와 조화의 미를 추구하는 고전음악의 경우를 살펴보자. 교향곡, 교향시, 소나타 등은 처음 듣는 음악이라도 그 형식과 화성 진행의 익숙함으로 우리는 그것을 쉽게 받아들인다. 처음 듣는 가요나 팝송은 이보다 훨씬 감상이 용이하다. 낯선 노래를 듣더라도 이 노래가 어떻게 전개되고 어느 부분에서 최고조에 다다를지 어림잡아 예상할 수 있다. 그것은 가요 형식이라는 보편적인 작곡의 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반면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는 재즈는 위와 같은 청자에 대한 배려가 미약하다.


대신 자신만의 언어로 노래하는 시인처럼,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연주로 관객에게 보답한다. 연주자는 최소화한 형식 안에서 우연적이고 창의적인 즉흥 연주를 전개한다. 그 각각의 노래가 하나의 리듬으로 만나서 앙상블을 이루고 매 순간 새로운 연주가 탄생하는 것이다. 1959년 발매된 트럼펫 연주자, 마일즈 데이비스의 〈Kind Of Blue>는 이런 재즈의 낭만성을 가장 많이 머금은 앨범이라 할 수 있다. 수백 년 동안 사용하지 않고 있던 중세 시대의 교회 선법(Church Mode)을 가져와 당시의 시류에서 크게 벗어난 새로운 재즈 연주를 펼쳐 보였다.


밴드 리더인 마일즈 데이비스는 작곡을 하고 자신의 곡에 맞는 연주자를 섭외하여 최고의 앙상블을 꾸렸다. 존 콜트레인, 캐논볼 애덜리 등 최고의 연주 기량을 자랑하던 연주자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역사에 길이 남을 연주를 이끌어냈던 것이다. 이 앨범은 2009년도에 발매 50주년을 기념하여 '레거시 에디션'으로 발매되었다. 여기에는 대표곡인 ‘So What’의 60년대 라이브 연주 음원과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연주곡을 담고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기존 앨범에 실렸던 ‘Flamenco Sketches’가 ‘Alternate Track’으로 더 수록된 것이다.

마일즈 데이비스, 김정식 그림

말 그대로 그 날 연주되었지만 선택받지 못한 트랙을 보너스로 넣은 셈인데, 원래 앨범에 실린 동명의 곡과 코드 진행만 같을 뿐, 멜로디도 다르고 코드도 더 길게 배치되어 있다. 모드의 변환을 중요시했을 뿐 레코딩 당시 솔로 연주는 물론 멜로디까지 즉흥적으로 연주되었음을 알 수 있다. ‘So What’의 라이브 연주 역시 빠른 템포로 강하게 연주하여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이처럼 늘 새로운 방식을 수용하여 변화를 추구하고, 똑같은 것을 반복하지 않는 재즈의 낭만적 기질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그것은 17세기 식민지 시대에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로 끌려온 아프로-아메리칸의 근본적인 근성일 수도 있고, 척박한 인종차별 속에서 생겨난 새로운 사회적 기질일 수도 있다. 어쩌면 유럽인들의 문화에 내재해 있던 낭만성이 흑인들의 자유분방한 표현 양식을 빌려 새롭게 대두된 것일 수도 있다.


재즈평론가 필립 위셰는 자신의 저서 《재즈(Le Jazz)》에서 "재즈는 역사상 가장 전설적인 문화적 이종교배에 성공한 예술 표현 형식"이라고 말한 바 있다. 언제나 그렇듯 융합은 새롭고 힘 있는 창조물을 만들어 낸다. 20세기의 패권 국가로 발돋움하는 미국이라는 거대한 용광로에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이민자들이 가져온 문화가 뒤섞이기 시작했다. 이 에세이는 그중에 가장 두드러진 문화, 예술적 산물인 '재즈'가 만들어지고 변화하는 모습을 다양한 시각을 통해 조망해 보고자 한다.



https://www.d-art.co.kr/news/articleView.html?idxno=858

작가의 이전글 미국 드영미술관 de Young Museum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