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 작가의 작업은 마치 잎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며 마음을 기울이는 동산바치(花匠)의 손길을 닮았다. 그녀는 자신을 ‘동산바치’라고 소개한다. 꽃과 풀,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피어나는 작고 소중한 것들에 귀를 기울이며, 그 감각을 조형 언어로 옮겨낸다.
그녀의 작품 속에는 평범한 일상에서 길어 올린 기억과 감정, 그리고 조용한 서사들이 담겨 있다.
“나는 달의 조각인 줄 알았는데, 그는 나에게 스스로 빛나는 별이라고 말해줬어요.”
이 문장처럼, 이브의 작업은 존재의 가치를 다시 바라보게 하고, 흐르는 시간 속에서 사라지기 쉬운 감정들을 다정히 붙잡는다.
강화플라스틱, 레진, 생화, 스테인리스 스틸 등 다양한 재료를 통해 형상화되는 그녀의 오브제들은 단지 조형의 대상이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위로의 형태이자 추억의 조각이기도 하다.
인터뷰에서는 동산을 가꾸듯 예술을 가꾸는 이브 작가의 작업 이야기, 창작의 배경이 된 기억과 감정, 그리고 조형의 과정에서 피어나는 생각들을 함께 나눈다.
작업하는 이브
-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안녕하세요. ‘동산바치’를 주제로 작업하고 있는 조각가 이브입니다.
- 작품에 등장하는 ‘동산바치’라는 개념이 인상 깊다. 이 단어를 어떻게 만나게 되었고, 왜 스스로에게 붙이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어릴 적 어머니는 주말마다 저희 삼 남매를 계곡에 데려가셨는데요, 그때마다 근처 시장에서 아오리사과 한 봉지를 사시곤 했어요. 그걸 사서 계곡 입구의 안전요원에게 반 나눠드리며 “수고하십니다” 한마디를 건네셨어요. 어린 제가 보기엔 늘 무표정하던 그분들이 그 순간만큼은 웃으시더라고요.
대학 시절에 문득 예전에 어머니와 함께 계곡에 갔던 그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이미 '기브앤테이크', 즉 받은 만큼 주는 그런 문화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나는 왜 사람을 만날 때마다 계산을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릴 적 어머니는 아무런 대가 없이 필요한 사람에게 주었는데. 그러면서 나눔의 의미를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 머리에 떠오르던 기억은 어머니의 아오리 사과를 받을 때 무표정한 안전요원의 얼굴에 번지던 미소였습니다. 안전요원의 이미지를 저는 ‘동산바치’로 바꾸었습니다. 그 주제로 작업을 시작하게 됐어요. '동산바치'는 순순한 우리말인데요, 꽃과 화초를 키워 가꾸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을 말합니다. 동산바치라는 말의 어감도 좋고 뜻도 좋고요, 안전요원도 무표정하게 일을 하지만 자신의 영역에서 사람들을 지키고 가꾸는 사람이잖아요.
처음에는 저 스스로가 '동산바치'가 되어 씨앗을 심고 정원을 가꾼다는 의미였지만, 지금은 제 작품을 보는 관객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정원을 가꾸는 동산바치가 되기를 바라며 작업하고 있습니다.
이브, 동산바치, 2025, petg에 아크릴 채색, 우레탄 마감, 33x35x72cm
이브, 균형의 씨앗(Daughter of Deliciosa), 2025, PLA에 아크릴 채색, 우레탄 마감, 24x24x52cm
이브. Daughter of Deliciosa, 2025, PLA에 아크릴채색, 우레탄 마감, 24x24x52cm
이브, 네 잎 클로버 속 세 잎 클로버, 2025, PETG에 아크릴채색,우레탄 마감, 52x52x30cm
- 이브의 작품에는 시적인 언어와 따뜻한 감정이 작품 곳곳에 배어 있다. 작가의 감정과 기억은 작업에 어떤 방식으로 스며드는가?
저는 특별한 무언가보다 일상의 사소한 순간들에서 더 큰 감동을 느끼는 사람 같아요. 자연을 보며 제 감정을 정리하고, 식물의 자람을 보며 제 안의 성장을 떠올리기도 해요.하늘을 보며 친구와 나눴던 고민을 풀기도 하고, 마른 꽃을 보며 누군가를 그리워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자연스러운 흐름 안에서 제가 받은 감정들이, 고스란히 작업에 스며드는 것 같아요. 결과보다 과정이 더 소중하다는 걸 매번 느끼게 되거든요.
- 작업에서 ‘자연스러움’과 ‘우연’의 의미가 자주 등장하는데, 그것이 작업의 구성이나 창작 태도에 어떤 영향을 주나?
저는 ‘자연스럽다’라는 말에 아주 깊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자연스러운 과정에서 결과보다 더 값진 일들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고 느껴요. 그 안에서 만나는 우연한 균형이 저에게는 가장 진실된 것 같아요. 그런 자연스러움이 결국 제 태도이자 철학이 되었습니다.
- 이브 작가의 작업실은 어떤 분위기인가? ‘정원을 가꾸는 작업실’이라고 느껴질 만큼 식물들이 많은데 어떤 공간인지 궁금하다. 그리고 작가에게 가장 의미 있는 식물은 어떤것인지 소개 부탁드린다.
맞아요. 제 작업실엔 정말 식물이 많아요. 요즘처럼 날씨가 좋을 땐 더 무럭무럭 자라주어서 저도 힘이 나요.
몬스테라 델리시오사(Monstera deliciosa) /사진: 이브
이 식물 중에서 저한테 가장 의미 있는 식물은 몬스테라 델리시오사(Monstera deliciosa)입니다. 이 식물은 저에게 많은 영감을 준 식물인데요, 어린잎과 성체의 잎이 아주 큰 차이를 가지고 있는 식물입니다. 그래서 처음 식물을 키울 때는 ‘정말 같은 식물이 맞아?’ 할 정도로 못 믿었던(?) 식물이에요. 처음에는 몬스테라 잎의 모양이 달라지는 걸 지켜보는 재미 때문에 좋아했었어요. 구멍이 하나도 없는 동그란 잎을 보는데 어느 순간 한쪽이 갈라지고 또 어느 날은 양쪽에 날개가 생기고 또 어떤 날엔 그 사이로 작은 구멍들이 생겨요. 새잎을 억지로 펴보기도 하고, 앉아서 식물 관찰하는 거. 그게 제 취미였거든요. 몬스테라가 자라는 과정을 담고 싶어서 어린잎 하나는 자르지 않고 성체 잎이랑 한 화분에 키우기도 했고요. 그런 일들을 스스로 천천히 보고 있자니 내 모습 같기도 했어요.
또 어떤 날은 몬스테라는 큰 잎들 사이에 구멍이랑 날개를 왜 이렇게 많을까? 생각하다가 찾아봤는데 '몸집이 크기 때문에 자기보다 아래에 사는 식물들에게 빛을 나누기 위해 구멍이 생기도록 진화했다'라는 가설도 있더라고요. 몬스테라의 외형도 너무 큰 매력이 있지만, 그 가설을 알고 난 후부터는 이 식물이 가진 특성들이 큰 매력으로 다가와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식물이 되었습니다.
이브 작가의 작업실 /사진: 이브
작업실의 공구들 /사진: 이브
- 자주 사용하는 도구나 공정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린다.
저에게 가장 의미 있는 재료는 사포입니다. 작업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재료라고 생각합니다. 작업 과정에서 저는 표면을 정리하는 과정을 특히 좋아하는데요, 사포로 표면을 갈아내고 다시 채우고, 또 갈아내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마무리 단계에 닿게 되죠. 무엇보다 시작할 때의 마음과 마무리할 때의 설레는 마음이 늘 비슷하거든요.
- 작업실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물건이나 풍경이 있다면 무엇인가?
작업실에 큰 문을 열면 산이 보여요. 그 풍경을 제일 좋아해요. 봄에는 연둣빛 초록을 보고 '초록이 이렇게 예쁠 수 있구나' 하고, 여름이면 '벌써 색이 짙어졌네', 가을엔 단풍을 기다리고, 겨울엔 눈 쌓인 산을 바라보며 계절을 느껴요. 그 산을 보면서 남편이랑 커피 한잔 마시는 시간이 참 소중하고, 여유롭습니다.
- 조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그리고 조각의 매력은 무엇인가 ?
중학생 때 우연히 길을 걷다 미술학원 창문에 붙은 석고상 사진이 눈에 꽂혔어요. 그게 계기가 되어 조각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대학 시절 어머니를 따라 대구 시골길을 돌다 본 과수원의 현수막에 'I am what I eat'이라는 문구가 또 한 번 제 마음에 큰 울림을 주었어요.
그 문구에서 출발한 첫 번째 〈동산바치〉 작업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시를 하다 보면 관객분들께 작품에 관해 설명할 기회가 자주 생기는데요,
그럴 때마다 저는 아주 사적인 이야기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나눈다는 점에서 참 신기해요. 사실 사회에서는 처음 본 사람들과 깊은 이야기를 나누거나 공감하는 일이 쉽지 않잖아요. 그런데 전시장 안에서는 제 사소한 고민부터, 나름의 철학까지도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어요. 그리고 그걸 들어주는 분들과 서로 마음을 주고받을 때, ‘조각가’라는 직업, 그리고 ‘예술가’라는 존재가 참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브, I am what I eat, 2025, PLA에 아크릴채색, 우레탄마감, 49x50x72cm
-지금까지 참여했던 다양한 전시나 프로젝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린다.
《시작의 궤도》라는 이름의 구미 폐공장 프로젝트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제가 '이구예나'팀에 처음 참여했던 프로젝트이기도 하고, 앞으로 작가로서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던 시기에 ‘나는 이 길로 가고 싶다’라는 확신을 준 계기였어요.
처음이라 서툴렀지만, 그만큼 더 의미 깊었던 시간이었습니다. 항상 그 마음으로 작업하고 싶습니다.
이구예나의 '시작의 궤도' 프로젝트 /사진: 이브
프로젝트에 참여해서 작업을 하고 있는 이브작가 /사진: 정의지
- 본인을 ‘동산바치’라고 했는데, 앞으로 정원을 만들고 싶은가? 본인이 가꾸고 싶은 ‘정원’은 어떤 모습인가 ?
누구든지 편하게 들렀다 갈 수 있는 정원입니다. 누구든 오면 따뜻하고 편안한 모습, 언젠간 울창한 정원이 되겠죠.
- 마지막으로, 작업을 통해 세상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인가 ?
많은 사람이 사소한 일들에 기뻐했으면 좋겠어요. 작품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 '순이'는 완벽한 존재가 아니에요.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깨달음을 얻고, 배워가는 미숙한 과거의 나이자, 지금을 살아가는 나, 그리고 길을 찾아 걸어가는 미래의 모습이에요. 제 작업이 사소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주요 경력
SOLO EXHIBITION
2025 동산바치 (창원,Healing Gallery)
PROJECT
2023 전포동 폐가 프로젝트 <기억합시다 -예술가의 기억법>(부산,전포동 산 폐가 65-27일대)
2021 이구예나 폐공장 프로젝트 <The beginning-시작의 궤도> (구미, 삼풍전자 폐공장)
2021 이구예나 폐교 프로젝트 <우리가 어렸을 적 품었던 꿈> (상주, 두릉초등학교)
INTERNATIONAL EXHIBITION
2025 Future Art Fair (대만, 그랜드하얏트 타이페이)
2024 Art Kaohsiung (대만,보얼예술특구)
2022 Art Kaohsiung (대만,보얼예술특구)
GROUP EXHIBITION
2025 화랑미술제in수원(수원,수원컨벤션센터)
2025 김복진조각페스타 (청주,팔봉리 김복진생가)
2025 <MOSAIC CODE> (파주,AN갤러리)
2024 인천아시아아트쇼 (인천,송도컨벤시아)
2024 아트광주 (광주,김대중컨벤션센터)
2024 Art X SEOUL (서울,인터컨티넨탈 코엑스)
2024 <Trinity> 3인전 (인천, 배다리아트스테이1930)
2024 <Wonderland>야외조각전 (안동,경상북도교육청)
2024 송강미술관 야외조각전 (안동,송강미술관)
2024 <가온>(평택,프리퍼 갤러리)
2024 서울아트쇼 (서울, 코엑스)
2024 <이.모.작>(구미,브라운핸즈 구미라키비움)
2024 인천 아시아 아트쇼 (인천,송도컨벤시아)
2023 <동행-우리의 이야기>야외조각전 (아산,당림미술관)
2023 New Wave 3인전(진주,브라운핸즈진주MBC)
2023 <이구예나with 인천>(인천,배다리아트스테이1930)
2023 <Another Beginning> (구미,브라운핸즈)
2023 <Flower Dance> (아산,당림미술관)
2023 12회 국제조각페스타 (코엑스,>
2023 인사아트위크 (서울,올미아트스페이스)
2022 서울아트쇼 (서울,코엑스)
2022 인천 아시아 아트쇼 (인천,송도컨벤시아)
2022 Network Fair 더 현대 프리뷰(서울,더현대)
2022 <각자의 숨>(서울,올미아트스페이스)
2021 <Movement> (서울,한전아트센터)
[망치 든 조각가 ④] 자신의 예술동산을 가꾸는 '동산바치' - 이브 < 청년예술인 < 영아트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