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에게 들려주는 서울 이야기 33] 우리나라 최초의

by 데일리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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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충단 공원의 수표교, 이재영

"안개낀 장충단 공원 누구를 찾아 왔나 낙엽송 고목을 말 없이 쓸어 안고 울고만 있을까

지난날 이 자리에 새긴 그 이름 뚜렷이 남은 이 글씨 다시 한번 어루만지며

떠나가는 장충단 공원" (안개낀 장충단 공원, 1967년, 작곡 배상태, 작곡 최치수, 노래 배호)

가수 배호(1942-1971)가 1967년에 부른 〈안개낀 장충단 공원〉의 가사다. 중저음의 묵직한 목소리로 라디오마다 흘러나왔던 이 노래를 기억하는 사람은 머리가 희끗한, 연식이 된 분들일 것이다. 이 노래에는 30세에 요절한 가수 배호에 대한 안타까움이 서려 있어 장충단 공원에 대한 기억과 함께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가사에는 한 남자가 헤어진 연인을 추억하기 위해 장충단 공원을 찾았지만 어쩔 수 없이 모든 것을 잊고 떠나야 한다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잊을 수 있으면 잊어야 하겠지만, 돌아선 여인을 잊기가 그리 쉬울까가? 가수 배호는 이 노래를 부르고 몇 년후 신장염으로 세상을 등졌다.

그런데 이 노래에 등장하는 가사 '지난날 이 자리에 새긴 그 이름'은 헤어진 연인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장충단(獎忠壇)이라는 묵직한 이름에 대한 내력과 역사의 깊이를 알면 노래 가사 저편에서 부르는 우리 선조의 목소리를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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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충단 비 /사진: 이재영

장충단(獎忠壇) 이름은 '충(忠)을 장려하는 곳'이라는 의미다. 충은 나라에 대한 선조들의 자세. 즉 이곳은 나라를 위해 순절한 애국지사들의 영혼을 모신 곳이다. '최초의 국립 현충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1895년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치욕스런 해다. 일본 자객들에 의해 경복궁 옥호루에서 명성황후가 시해되었다. 을미년에 발생한 일이라해서 을미사변(乙未事變)이라 한다. 이때 궁내부 대신 이경직, 시위대장 홍계훈 등 많은 대신과 군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오페라 〈명성황후〉는 이런 시대의 비극을 노래와 극에 담아 보는 사람들의 가슴을 저리게 한다.

아내를 잃은 고종은 1900년 한양 도성 남쪽, 적을 수비하던 남소영이 있던 이곳에 순국한 이들의 영령을 위로하기 위하여 장충단을 세웠다. 이후 1908년까지 이곳에서 매년 봄과 가을에 제사를 올렸다. 국망후 장충단은 폐지되었고, 1920년대 후반부터는 이곳 일대에 벚꽃을 심어 공원을 만들었다. 그래서 이곳을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이 찾는 주요 관광지였다. 나라를 빼앗기자 순국한 이들을 기리는 곳이 나들이하는 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어디 그뿐인가! 1932년 10월 26일에는 박문사(博文寺)라는 절까지 지었다. 박문(博文)은 이토(伊藤) 히로부미(博文)의 이름에서 온 말이다.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이등박문을 저격한 날인 1909년 10월 26일에 맞춰 조선총독부는 그를 기리는 원찰을 세웠다.

해방 이후 박문사는 철거되었지만, 1950년 6.25 한국 전쟁으로 장충단 사당과 부속 건물들이 훼파되었고, 장충단 비만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장충단의 글씨는 순종 황제가 황태자 시절에 쓴 예필이다.

2016년에 조성된 장충단 호국의 길을 따라 걷다 보면, 현재 장충단 공원에 남아 있는 장충단 비, 3·1독립운동 기념비, 이준 열사 동상, 이한응 선생 비, 유관순 열사 동상을 만날 수 있다.

“만세~~ 대한독립 만세~~”

“대한민국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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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동상 /사진: 이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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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열사 동상 /사진: 이재영

손자들이 장충단 공원에서 국립극장으로 올라가는 대로변에 있는 유관순 동상 앞에서 두 손을 번쩍 들고 뛰어다니며 함성을 지르자 지나가던 사람들도 박수로 화답했다. 나는 손자들과 함께 이곳을 산책하면서 장충단의 내력과 항일 동상으로 서 있는 항일투사들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만일 독립의 투쟁 의지와 자유에 대한 열망이 없었다면 과연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기만 해도 끔찍하다.

어쩌면 손자들과 한가롭게 공원을 거닐며 우리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의 선진국으로 도약한 대한민국은 식민 시대와 전쟁의 아픔 속에서 이뤄낸 한강의 기적이다. 이런 우리나라가 선진국이라는 것을 세계는 다 인정하는데 우리는 너무 우리에 대한 인식이 인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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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자 /사진: 이재영

“그때 대한민국은 엄청 가난했다면서요?”

“가난 정도가 아니었다.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나라 중 하나였지.”

내 어린 시절의 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앞집도 옆집도 하루 세끼를 꼬박 찾아 먹는 집이 드물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의 번영과 발전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 해답을 어린 손자들이 환호성으로 대신했다.

을미사변의 호국정신, 일제강점기 항일투쟁, 3·1 독립정신이 결국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이끌어준 것이다. 손자들은 수표교를 지나 작은 연못에서 사이좋게 노니는 오리 가족에게 정신이 팔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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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충단 공원의 연못 /사진: 이재영

현재 공원 내에 자리하고 있는 수표교는 원래 청계천에 있던 다리였으나 1965년 청계천 복개 공사를 하면서 이곳으로 옮겨왔다. 수표교라는 이름은 청계천의 홍수에 대비하기 위해 다리의 돌기둥에 수심을 측정하던 수표를 세우면서 붙인 이름이다. 수표교와 함께 있었던 수표는 현재 세종대왕 기념관에 옮겨져 있다.

장충단 공원은 동국대학교와 신라호텔 사이에 있다. 바로 건너편으로는 장충 체육관이 있다. 지하철 3호선 동국대입구역에서 내려 5번 출구로 나오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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