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ture Medicine에 게재된 빌게이츠 기고문 /사진: 이종욱
7월 16일 어제, 전 세계 과학계는 한 줄기 커다란 희망을 목도했다.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루게릭병, 전측두엽 치매 등 인간을 서서히 무너뜨리는 신경퇴행성 질환을 조기에 진단하고 치료하기 위한 세계 최대 규모의 단백질체 데이터세트가 공개된 것이다.
‘글로벌 신경퇴행성 단백질체학 컨소시엄(GNPC)’이 이끈 이번 프로젝트는 단순한 연구 성과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노화와 질병을 넘어 인간의 존엄, 삶의 질, 나아가 삶의 끝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에 대한 전 지구적 물음에 과학이 답변하려는 첫걸음이다.
이번 데이터세트는 혈장과 뇌척수액을 포함한 3만 5,000여 건의 임상 샘플을 기반으로 하여 2억 5,000만 개 이상의 고유 단백질 측정값을 담고 있다. 게이츠 벤처스가 주도하고, ‘네이처 메디신’과 ‘네이처 에이징’에 발표된 분석 논문들에 따르면, 이 방대한 단백질 정보는 특정 신경퇴행성 질환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단백질 생체표지들을 규명해 냈다. 이는 조기 진단의 가능성을 크게 넓혔고, 나아가 치료제 개발의 물꼬를 틀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이 프로젝트의 상징성과 방향성은 빌 게이츠의 기고문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그는 “거의 모든 질병은 주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한 가지 예외는 알츠하이머병이다”라는 인상적인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의 아버지가 알츠하이머로 세상을 떠났기에 개인적으로도 깊은 연관을 갖고 있지만, 그가 이 분야에 뛰어든 이유는 단지 감정적인 이유만은 아니다. 신경퇴행성 질환이 환자 개인과 가족, 나아가 사회 전체에 미치는 정서적·경제적 부담이 이제는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의 말처럼, 질병은 늘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가혹했다. 제때 검사를 받지 못하고, 치료를 시작할 기회를 잃으며, 죽음의 문턱 앞에서 사회적 약자는 너무 쉽게 무너졌다. 그러나 퇴행성 신경질환은 이와는 결이 다르다. 오히려 오랜 수명을 누릴 수 있는 부유층에서 더 많이 발병하는 경향이 있다. 통계의 착시일 수는 있지만, 이 질병은 가난과 부유, 국적과 문화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누구든 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인간의 존재 자체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더 나아가, 알츠하이머병은 단순한 기억 상실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정체성과 역사, 관계와 사랑이 서서히 지워지는 절망의 과정이다. 그래서 단백질 데이터와 AI 예측 기술이 밝히는 이 ‘조기 진단’과 ‘예방적 치료’의 가능성은 희망 그 자체다. 단백질 구조 예측의 패러다임을 바꾼 구글 딥마인드의 ‘AlphaFold’처럼, 인간의 생명에 관한 도전은 이제 막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실제로도 의료 현장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가까운 지인의 사례만 봐도 그렇다. 폐암 4기라는 무거운 진단에도 불구하고, DNA 유전자 기반 표적 항암치료를 통해 거의 완치에 가까운 회복을 이루고 있다. 1년에 30회 정맥주사를 맞으며, 지난달까지 20회를 완료했다고 한다. 예전 같았으면 사실상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진단이었지만, 지금은 생존과 회복의 가능성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기술과 과학이 진심으로 사람을 살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누가 더 오래 살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누가 더 잘 살아갈 수 있는가'로 패러다임을 이동시킨다. 오래 사는 것 자체가 축복이 되려면, 반드시 건강한 신체와 정신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긴 수명은 오히려 삶의 고통을 연장시키는 불행의 조건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절실히 ‘질 좋은 생존’이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GNPC의 발표는 단순한 과학적 진보를 넘어 인류가 직면한 윤리적·사회적 문제에도 시사점을 준다. 데이터의 공개, 과학자들의 국제적 협력, 공공성과 접근 가능성을 보장하려는 움직임은 기존의 이윤 중심의 제약 산업 패러다임을 넘어서는 전환의 시작점일 수 있다. 빌 게이츠는 이 점을 강조하며, “알츠하이머병 진단이 사형선고가 아닌 날이 가까워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것은 연구자들이 협력하고, 사회가 그들을 지속적으로 지원할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이 ‘긴 생명’의 시대를 준비하고 있는가? 오래 사는 것이 축복이 되기 위해 우리는 어떤 시스템을 갖춰야 할까? 과학의 진보는 빠르지만, 인간의 윤리와 제도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데이터 기반 치료와 정밀의학이 개인화되는 시대에, 의료 접근성과 정보 불균형, 치료 비용의 문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분명 새로운 시대의 문 앞에 서 있다. 인간의 뇌가 무너지는 과정을 더 이상 무기력하게 지켜보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고 있다. 죽음에 가까운 병으로 간주되던 알츠하이머와 루게릭병이, 이제는 조기 진단과 치료의 희망 속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맞이하고 있다.
[일상의 리흘라] 오래 사는 것이 축복이 되려면 < 일상의 리흘라 < 칼럼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