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화가 이향남의 예술 기행 ⑨] '히말라야'의 나라

by 데일리아트

안나푸르나 ABC(ANNAPURNA BASE CAMP, 약칭 ABC)를 향한 본격적인 시작점이다. 시커먼 돌산에는 칼바람이 휘몰아친다. 사력을 다하는 발걸음은 점점 느려지고 머리는 무거워지며 호흡은 빨라진다. 고산 증세가 나타나려 한다. 시커먼 돌산이 지나가니 온 천지가 하얗게 눈 덮인 능선이다. 먼저 간 사람들의 흔적인 꼬불꼬불한 길 만이 까만 선을 만들어낸다. 마치 흰 화선지에 먹 선이 지나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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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를 향한 오르막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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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를 향한 설원의 마지막 걸음 걸음

극한의 체력 소모와 정신적 육체적 인내력의 한계점이 오나 싶을 때, 목적지가 가까이 있음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보인다. 나는 잠시 고통을 잊고 정상에 대한 부푼 기대감이 가득하다. 산을 왜 오르냐 고 묻는다면 거기엔 인생길에 대한 현답이 있다.

사방을 둘러봐도 흰 눈 뿐인 설원. 길 아닌 길 위에서 포기하고 싶을 때, 힘겨운 한 발로 언덕을 겨우 차고 오르니 '아~ 이럴 수가!' 드디어 드넓은 평지가 보인다. 목적지다. 눈앞에 펼쳐진 풍광에 순간 숨이 멎는 듯하다. 별안간 이런 드넓은 평지가 나타날 줄이야. 허름한 산장에 배낭을 내던지고 고통도 잊은 채 평지로 다시 간다. 360도 거봉들의 설산이 둘러쳐진 한가운데 서서, 어둠이 내려앉는 웅장하고 찬란한 히말라야 봉우리들의 파노라마를 본다.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푸르디푸른 하늘은 신령이 있을 것만 같은 신비스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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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내리는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 평원 가운데서 바라본 360도 봉우리들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는 설원은 고요 속에 힘찬 용솟음의 기운을 발산한다. 대자연의 거대함 앞에 혼자 서 있다. 나도 모를 만감들로 가슴이 뜨거워진다. 그 뜨거움은 삶의 정신적 고통 속에서 헤맸던 나를 어루만져준다. 이 설원에 한줄기 뜨거운 눈물을 흩뿌린다. 지혜의 여신이 락슈미가 나를 인도해 주길 바래본다. 자연은 모든 것을 내어주는 어머니 품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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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의 여신 안나푸르나 앞에 서다.

찰나에 나는 어떤 거대한 기운을 느낀다. 내가 그 기운 안에 있다. 무아지경 (無我地境) 이다. 이러한 장관을 바라보며 즐기는 휴식과 저녁 식사의 감동은 어떤 단어로도 비유하기 어렵다. 그냥 가슴에 묻고 삶이 힘들 때마다 꺼내어 위로받으며 용기를 얻고 싶다.

머릿속에 언뜻 무언가 스쳐간다. 흰 캔버스 위에 어떤 선들이 그어진다. 보이지 않는 이 순간의 감동을 작품으로 재탄생시키고 싶다. 반 고흐는 말한다.

''그림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해야 잘 그리는 것인가? 그것은 화가가 느끼는 것과 화가가 할 수 있는 것 사이에 서 있는, 보이지 않는 철벽을 뚫는 것과 같다.”

붓으로 철벽이 뚫어질리 없으련만 붓 하나로 거대한 세계를 구현하는 예술가는 그래서 위대하다. 고흐의 그림에 대한 깊은 진정성이 배어 나오는 말이 이 순간 새삼 생각난다.

히말라야를 그리는 작가 강찬모가 있다. 그는 20여년을 ‘선’을 주제로 히말라야 체험을 그림으로 그린다. 부처님의 해탈 과정인 ‘선’이란 육체적 고행을 통한 정신 수행으로 해탈에 이름이다. 강찬모의 그림은 히말라야에서의 명상을 통한 범신론적 자연관이 작품의 주제이자 화두다. 그의 작품 속 히말라야를 볼 때마다 나는 가슴 한쪽이 숙연해지곤 한다. 그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 중 하나가 범신론적 자연관을 절실하게 전달하고자, 시각으로 표상하려는 작가의 실천적 의식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자연은 거기 그대로 있을 뿐인데 우리는 자연 앞에서 스스로 깨우치고 다시 태어나기도 한다. 자연은 인간의 스승이며 인간 앞에 무한한 위대한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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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남, Nomad life,2023, Oil on canvas, Hangi, Ceramics, 90x90cm

히말라야의 아침은 찬란하다. 걷는 동안 안나푸르나는 늘 마차 푸 차례와 동행한다. 푼 힐에서의 히말라야 일출은 마차 푸 차례를 먼저 비추고 안나푸르나를 만난다. 무수한 발자국을 남기며 걷고 또 걷는다. 나의 표상인 유니크한 신발 오브제는 일출을 만나 더욱 빛난다. 멈추지 않는 발걸음은 현재도 진행 중이며, 그것은 지구 밖 또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려 함의 몸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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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남, Nomad life, 2016, Oil on canvas, 72.5x60.5cm

창문 밖으로 설원의 히말라야 산군이 보인다. 거대한 산군 앞에서 내재된 욕망의 꿈틀거림을 느낀다. 가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그곳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딘다. 동경하는 세계는 움직여야 그 속내를 볼 수 있고 경험한다. 이제 창문 밖 꿈꾸던 세상으로 걸어 나간다. 그것은 정적인 공간에서 동적인 공간으로의 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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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남, Nomad life, 2016, Oil on canvas, 65x90.5cm

신발은 나의 표상이다. 그림에서 배경의 자연은 내가 발로 걷고 다녔던 오지의 장소이다. 나는 그곳을 걷고 또 걸으며, 정신적 평온과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나에게 ‘걷고 또 걷는’ 것이란 육체의 고통 속에서도 그 과정에서 사유하고 정신적 치유와 용기를 얻으며 또 다른 희망 세계로의 들어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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