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다티스트 《장용근의 폴더: 가장자리의 기록》

by 데일리아트

7. 14. - 10. 12. 대구미술관

고흐의 그림에서 밤하늘의 감정을 보고, 쇼팽이나 베토벤의 음악에서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정조의 파동을 느끼며, 혹은 한 편의 영화 속 장면이 말이나 글로는 대체할 수 없는 강렬함으로 다가올 때, 우리는 그 매체가 지닌 힘의 정수를 맛보게 된다. 이런 경험을 할 때마다 우리는 '이것이야말로 가장 회화적인 작품이다.' 또는 '이보다 더 영화적인 표현은 없겠다.'며 감탄하게 된다.

사진작가 장용근의 작품을 마주하면 사진이라는 매체가 지닌 본질적 힘과 예술성의 정수가 무엇인지 뚜렷이 느낄 수 있다. 그의 작업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사진이 담아낼 수 있는 사회의 ‘가장자리’와 그 안의 인간적 서사, 그리고 시선의 깊이를 극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2025 다티스트에 선정된 사진작가 장용근의 개인전 《장용근의 폴더: 가장자리의 기록》 전시 오픈식이 2025년 7월 14일 대구미술관에서 개최됐다. 전시는 10월 12일까지 열린다. 다티스트(DArtist)는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작가를 선정하고 전시 및 연계프로그램, 아카이브 등을 지원하는 연례 전시 프로그램이다. 특히 올해는 다티스트 시리즈 최초로 사진작가를 선정했다. 회화와 조각 등 전통 장르와는 다른 사진만의 시각적 언어로 다티스트의 지평을 확장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이날 노중기 대구미술관 관장은 “현재 확장되고 있는 미술계의 흐름을 반영하여, 회화와 조각이 아닌 사진 분야의 작가를 다티스트로 선정했다”며 “이러한 선택이 문화 예술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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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회식에서 인사말 하는 장용근 작가 /출처: 대구미술관

장용근이 카메라를 통해 담아내는 대상들은 결코 표피적인 기록이나 단순한 정보 전달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각 장소와 인물에 내재된 역사와 감정, 사회적 맥락을 깊이 있게 포착하며 때로는 사소한 풍경과 흔한 일상에서도 존재의 본질과 인간의 내면을 드러낸다.

특히 그의 사진 속에서는 현실의 고통과 희망, 상처와 치유가 미묘하게 교차한다. 태백 탄광촌의 쇠락과 노동자의 삶, 대구 지하철 참사의 슬픔, 집장촌의 소외와 생존, 재개발 지역과 공사현장의 변화와 상실, 북한 및 일본 이주민의 이중적 정체성 등 다양한 피사체들은 작가만의 따뜻하고도 냉철한 시선을 통해 새로운 의미와 생명력을 얻는다.

결국 장용근의 렌즈는 단순한 기록 도구를 넘어, 사회와 인간에 대한 진정한 성찰의 창이 된다. 그의 사진을 마주할 때마다 우리는 익숙한 풍경 속에서 낯선 진실을 발견하고, 그 이면에 가려진 목소리와 기억에 조용히 귀 기울이게 된다.

첫 전시관인 3전시실에 전시 중인 〈도시채집〉(2003~2025) 시리즈는 기록 사진과 도시적 이미지의 집적과 콜라주를 통해 도시의 현실을 예술적 추상으로 탈바꿈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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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근. 대구지하철화재사고 현수막, 2003, Archival Pigment Print, 100x150cm.

재난과 일상, 사회와 미학이 교차하는 공간에서 도시의 안전과 인간의 존재에 대해 다시금 질문을 던진다. 그 안에는 작가 특유의 유머와 해학, 그리고 은유가 스며 있어 관람자는 자연스럽게 작가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다. 도심의 건물 벽을 빼곡히 뒤덮은 수많은 간판들은 때론 도시 풍경의 일부이자 한편으론 시각적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존재가 된다. 장용근 작가는 이런 흉물스럽게 느껴질 수 있는 간판들을 수백 장 기록하고, 이를 화면 위에 집적해 하나의 새로운 장면으로 재구성한다. 현란한 색과 문구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로또 상점 간판과 정치인들의 선거 현수막 역시 수백 개를 촬영해 작품 속에 조합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미지는 반복과 중첩, 색채의 충돌을 통해 익숙한 도시 일상을 미학적 언어로 탈바꿈시킨다. 일상의 단면이 예술적 추상과 사회 비판적 풍경으로 재탄생하는 순간, 관람자는 도시의 표면 이면에 숨겨진 삶과 욕망, 집단적 정서를 새로이 인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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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근, 아스팔트. 2008, Archival Pigment Print, 100x150cm.

〈아스팔트〉는 도시 도로 위 교통사고 흔적, 스프레이 자국 등을 기록한 사진이다. 작가는 무심히 지나치는 표면 위에 남은 흔적들을 통해 도시의 불안과 위험, 잊힌 기억을 드러낸다. 반복과 집합의 방식으로 구성된 이미지들은 도시의 이면과 인간 삶의 흔적들을 담담히 포착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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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근, 가리개, 200,4, Archival Pigment Print, 150x225cm.

〈가리개〉 역시 작가 특유의 해학과 관찰력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작품이다. 숙박업소 주차장 입구를 가리기 위해 설치된 가리개는 본래 무언가를 감추려는 용도로 존재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오히려 백여 개의 가리개가 오색찬란하게 한자리에 모여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낸다. 숨김의 물건이었던 가리개가 집단적으로 조합되면서, 숨기고자 했던 대상보다 더 강렬하게 존재를 외치며 유쾌한 역설과 해학을 뿜어낸다. 그 결과, 일상의 익숙한 풍경이 미묘한 유머와 아이러니로 재해석되며 우리에게 신선한 시각적 즐거움과 사유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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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전시실에 전시중인 '부서지고 세워지고; /출처: 대구미술관

〈부서지고 세워지고〉는 2017년부터 2023년까지 대구의 재개발 및 재건축 지역을 기록한 연작이다. 작가는 도시의 기능을 수행해 오던 삶의 터전이 사라지는 과정에서, 시간과 기억이 겹겹이 쌓인 장소의 종말과 새로운 시작이 교차하는 순간을 포착한다

재개발 직전의 어수선한 풍경에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과 버려진 일상 물건들이 뒤섞여 남아 있다. 폐허로 변한 잔해 속에서 드러난 흔적들은 자본의 논리에 따라 급변하는 도시 공간의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노후한 장소의 마지막 풍경에는 사람이 남긴 삶의 흔적과 역사, 그리고 시간이 고요히 머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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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구역 화성 파크드림 공사를 위한 철거 장면.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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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샾 리비테르 관련 철거 현장 2017

“자연의 혼란스러움과는 대조적으로 우리는 체계적으로 조직된 도시, 시스템화된 공간에서 살아간다. 많은 이들이 무방비한 자연 상태보다 도시는 더 안전하고 예측 가능한 곳이라고 믿지만, 때때로 도시는 오히려 자연보다 더 혼란스럽고 안전하지 못한 장소임을 절감하게 된다. 대구 가스 폭발, 지하철 참사와 같은 비극적인 사건들은 도시의 안전 신화에 균열을 낸다.

또한, 정부의 개발 정책 아래 우뚝 솟은 고층건물들은 그 화려함 뒤편에 사회적 약자인 서민들의 이탈과 상실을 동반한다. 결국, 시스템으로 포장된 도시의 질서 속에는 불합리와 부조리가 자리잡고 있으며, 그 이면에는 빛에 가려진 고통과 어려움, 그리고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가 숨겨져 있음을 마주하게 된다.” (장용근 작가 인터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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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근, 37호 보고서, 2017. Archival Pigment Print, 147x300cm.

한편 장용근 작가는 자갈마당이라는 성매매 집결지의 모습을 기록하며 사회적 약자의 시선에서 접근한다. 접근조차 쉽지 않은 골목에서 시작된 이 연작은, 현대사회가 ‘정상적 노동’의 범주 밖에 두는 삶에 깊이 주목한다. 오랜 시간에 걸쳐 집장촌을 조사하고, 실제 그곳의 사람들과 소통하며 촬영 동의를 받아 작업을 진행했다.

이번 전시는 이미 사라진 대구 자갈마당의 현장을 중심으로 표현한〈37호 보고서〉는 ‘미경’의 방과 그 안의 물건들을 담담하게 포착한 작품에 초점을 맞춘다. 사회적 기준이나 맥락이 개입되지 않은 사진 속에는, 공식적 기록에서 배제된 누군가의 일상과 진짜 현실이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 이렇듯 장용근 작가의 작업은 사라진 공간 속 인간적인 삶의 흔적을 섬세하게 드러내며, 관람자로 하여금 보이지 않았던 존재의 얼굴과 마주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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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근, 보이지 않는 노동, 2015, Archival Pigment Print, 105x70cm.

장용근 작가는 집장촌을 도덕적 판단 대신 중립적 시선으로 바라보며, 그곳에 살아가는 이들의 일상과 흔적을 기록한다. 사회적 낙인 뒤에 숨겨진 존재의 진실을 조명하고, 선정적 재현 대신 조용한 관찰을 통해 관람자가 스스로 사회의 주변부를 바라보게 유도한다. 집장촌은 그의 사진 안에서 차별이 아닌 이해와 성찰의 공간으로 재구성된다.

(내일 2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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