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다티스트《장용근의 폴더: 가장자리의 기록》리뷰

by 데일리아트

7. 14. - 10. 12. 대구미술관

'2025 다티스트'에 선정된 사진작가 장용근의 개인전 《장용근의 폴더: 가장자리의 기록》 전시 오픈식이 2025년 7월 14일 대구미술관에서 개최됐다. 전시는 10월 12일까지 열린다. '다티스트(DArtist)'는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작가를 선정하고 전시 및 연계프로그램, 아카이브 등을 지원하는 연례 전시 프로그램이다. 특히 올해는 다티스트 시리즈 최초로 사진작가를 선정했는데, 회화와 조각 등 전통 장르와는 다른 사진만의 시각적 언어로 다티스트의 지평을 확장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장용근 작가의 작품 〈팩스토리〉는 산업화의 현장, 그리고 그 이면에 숨겨진 인간과 공동체의 흔적에 주목한다. 2007년부터 시작된 이 연작은 일반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공장 내부와 산업단지를 장엄하게 포착하면서, 산업화가 남긴 구조적 변화와 그 속에서 이동하는 개인, 공동체의 삶을 세심하게 기록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국가 주도의 공장 설립과 함께 이주한 마을 사람들, 동제를 위한 신당 등의 새로운 장면도 소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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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근, 한국수력원자력, 2008, Archival Pigment Print, 150x300cm

작가는 이러한 산업 현장의 풍경을 단순히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산업화 과정에서 주변부로 밀려난 인간의 표정과 마을의 변화, 역사적 순간에 깃든 집단성과 익명성, 그리고 곳곳에 남겨진 삶의 흔적을 섬세하게 담아낸다. 〈팩스토리〉는 과거의 기록 위에 현재의 확장된 시선을 더해, 시간이 흐르며 유동적으로 이어지는 산업화의 서사를 담는다. 이 작업은 ‘예술사진 같은 기록사진, 기록사진 같은 예술사진’이라는 작가의 신념처럼, 사회 구조 변화의 역동성과 그 이면에 감춰진 인간적 이야기를 함께 드러내며 우리가 평소 주목하지 않았던 산업 사회의 또 다른 진실과 마주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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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근, 한국항공우주산업주식회사, 2007, Archival Pigment Print,130x150cm

작가의 〈팩스토리〉를 마주하면 어린 시절 자동차와 기차, 비행기에 이끌리던 동심이 다시금 깨어나는 듯하다. 거대한 기계 구조물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미적 형상과 그 장엄함에 경탄이 일고, 동시에 자연 생태계와 어긋나는 산업의 풍경이 마음 한켠에 막연한 걱정과 염려로 퍼져나간다.

〈선명해지는 기억〉(2024-2025)은 장용근 작가가 조선인 강제 징용의 흔적을 따라가며 일본 내 조선인 집단 거주지에서 만난 재일조선인 2세 할머니들의 삶을 담은 작업이다. 조선인과 일본인 사이 경계에 선 이들은 흐릿했던 기억을 되짚으며 점차 자신의 이야기를 선명히 펼쳐낸다. 작가는 사진뿐 아니라 인터뷰 영상과 채집 자료 등 다층적인 매체를 통해 이들의 서사를 기록하며, 한국어와 일본어가 뒤섞인 말투 속에서 정체성의 흔들림과 생생한 시간을 포착한다. 이는 집단적 역사와 개인적 기억이 만나는 지점에서 이루어진 서사적이고 인물 중심적인 시도로, 기존 작품들과 차별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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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근, 홍은숙 할머니와 언니, 2025, Archival Pigment Print, 120x80cm

사진 속 홍은숙 할머니와 언니는 일제 강점기 조선인 강제 징용의 여파로 일본에서 이방인으로 살아온 재일조선인 2세다. 두 사람은 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의 경계 위에서 언어와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지만, 사진과 인터뷰를 통해 잊혀졌던 기억을 또렷이 되찾았다. 그들의 삶에는 가족의 아픔, 잃어버린 고향, 그리고 공동체의 기억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이를 통해 집단적 역사가 개인의 서사로 되살아난다.

아래 작품은 그들이 운영하는 시온식당의 모습을 담고 있다. 최근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 음식을 찾는 일본인 손님들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영상에서 홍은숙 할머니는 “일본인들이 한국 드라마에서 자장면을 보고 여기 와서 그걸 내놓으라고 해. 자장면이 사실 한국 음식이 아닌데도 말이야”라며 조용히 웃어보였다. 그 미소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마음 한켠이 먹먹해졌다. 내 감정만은 아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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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근, 시온식당, 2024, Archival Pigment Print, 40x60cm(2 작품)

이들이 살고있는 시모노세키 한국 마을은 ‘똥꿀마을’이다. 형무소와 분뇨처리장 등 혐오시설이 밀집한 열악한 환경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경사진 골목길로 오수가 흐르면서 위생 상태가 매우 나빴고, 일본 내 차별과 배제로 인해 조선인들이 이곳에 모여 살게 되면서 이 같은 별명이 붙었다. 이 이름은 사회적 소외와 고단한 역사를 상징한다. 1928년에 설립된 시모노세키교회는 똥굴마을 언덕 위에 자리하며, 일제 강점기 조선과 일본의 관문이었던 시모노세키에서 우국인사들의 활동 거점이자 일본의 움직임을 살피는 장소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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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근, 시모노세키교회, 2024, Archival Pigment Print, 60x90cm

시모노세키의 한국인들은 교회에서 서로를 위로하며 신앙을 통해 현실의 아픔을 견뎠다. 낯선 땅에서 교회는 공동체의 구심점이자 정체성을 지키는 버팀목이 되었고, 예배와 교제 속에서 소외와 상실의 감정을 나누며 작은 희망을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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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근, 홍은숙 할머니, 2025, Archival Pigment Print, 60x90cm

그들이 교회에서 성가를 부르는 모습은 흑인영가로 자신들의 고통을 노래했던 식민지 시대의 흑인들을 떠올리게 했다.

시모노세키의 그린몰은 ‘리틀 부산’으로 불리는 일본 속 작은 한국이다. 역 근처에 펼쳐진 이 상점가는 한식당, 식재료점, 한복집 등이 모여 오랜 이주 역사를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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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근, 그린몰, 2025, Archival Pigment Print, 75x50cm

그린몰 초입에 우정을 상징하는 '부산문'이 세워져 두 도시의 연결고리가 되었으며, 최근 한류 영향으로 일본 손님도 늘었다. 이곳은 한국인과 일본인이 어울려 살아온 다문화 공간이자, 타향에서 뿌리를 지키려는 이민 공동체의 정체성과 교류의 장으로 남아 있다.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떠올리게 하는 정서가 이곳을 감싼다. 시모노세키와 부산을 잇는 부관페리 배 편은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과 문물이 오가던 통로였다. 이곳에는 고향을 떠난 재일동포와 이주민들이 함께 모여 살아가며, 낯선 땅에 뿌리내린 그리움과 향수가 깊게 깃들어 있다. 이별과 만남, 희망과 아픔이 함께 공존하는 곳이기에 간절한 귀향의 노래가 더욱 절절하게 마음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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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근, 부관연락선, 2025, Archival Pigment Print, 20x30cm

남속은이 할머니는 일제 강점기 어린 시절 일본으로 건너와 재일조선인으로 평생을 살아왔다. 본인의 뜻과는 상관없이 가족과 함께 낯선 땅에 정착했으며 일본 사회 속 차별과 가난, 정체성의 혼란을 견디며 힘겹게 살아왔다. 장용근 작가는 사진과 인터뷰를 통해 그가 겪은 이주와 가족사, 여성의 삶, 공동체의 변화 등 잊혀진 기억들을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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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근, 남속은이 할머니, 2025, Archival Pigment Print, 120x80cm

그밖에도 일본 오사카의 재일조선인 집단 거주지로, 조선인들이 전후 폐허가 된 군수공장에서 고철을 캐내 생계를 이어가던 아파치마을에 관한 작품이 있다. 일본 사회는 이들을 서부극의 '아파치족'에 빗대어 멸시했지만, 이는 구조적 가난과 차별에 맞선 생존의 방식이자 공동체적 연대의 상징이었다. 아파치마을은 차별과 박탈, 그 속에서도 삶을 지켜낸 재일조선인의 현실과 저항의 공간으로 장용근 작가 작품 속에서 주목받고 있다.

이 연작은 고려인들의 증명사진을 매개로 개인과 집단의 경계에 선 정체성을 조명한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중앙아시아로 이주했던 이들이 오랜 타국 생활 끝에 다시 ‘외국인’ 신분으로 한국에 돌아왔으나, 흐릿한 거소신고증 사진과 새롭게 촬영된 선명한 증명사진들이 한 화면에 겹쳐지며 그들 안팎의 모호한 정체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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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근, 고려인 외국인, 2025, Archival Pigment Print, 178x475cm

같은 뿌리를 지녔음에도 이방인으로 머무는 현실은 사진 속 낯선 전통 의상과 화려한 벽화 배경의 초상들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익숙한 얼굴과 낯선 풍경이 교차하는 포착은 한국 사회에서 ‘타자’로 존재하는 동포들의 복잡한 현실과 이주 정체성의 간극을 생생히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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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근, 겹쳐진 증명, 2025, Archival Pigment Print, 110x80cm

〈겹쳐진 증명〉은 여러 고려인의 증명사진이 한 이미지로 겹쳐진 작품이다. 흐릿한 신고증 사진과 새로 촬영한 초상이 교차하며, 같은 뿌리를 가졌음에도 여전히 ‘외국인’으로 남은 이들의 정체성 혼란과 소외를 상징한다. 익숙한 얼굴과 낯선 배경은 한국 사회에서 타자로 살아가는 현실을 담담하게 드러낸다.

〈앵두다방〉은 북한에서 탈출해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거쳐 한국에 정착한 자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들은 한국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시기에 다방을 인수해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낯선 환경 속에서 자매는 카운터와 주방을 오가며 손님을 맞이하고, 마을의 농번기에는 일손이 부족한 이웃을 도우며 지역 공동체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작가는 이들의 적응 과정을 감정적으로 부각하기보다, 평범한 일상과 근근이 이어가는 생업의 풍경을 담담하게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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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두다방과 고려인, 외국인'이 전시된 2전시실 전경 /사진: 장용근

장용근의 사진은 일상의 흔적, 사회의 가장자리, 그리고 집단과 개인의 서사를 깊이 있게 비춘다. 그의 렌즈 앞에서 우리는 평범했던 도시 풍경, 소외된 사람들의 일상, 이주와 상실의 현실, 그리고 역사적 고통과 희망이 교차하는 장면을 새롭게 발견한다. 그의 전시는 익숙한 세계의 이면과 침묵했던 존재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하며, 사진 예술이 가진 힘과 감동의 본질을 관객에게 또렷이 각인시킨다.

7월 14일, 전시 개막식과 프리뷰를 관람한 뒤 미술관을 나서자, 갑자기 검은 구름이 몰려와 비를 쏟았다가 이내 흩어졌다. 작가의 작품이 불러일으킨 감정처럼, 변화무쌍한 하늘이 더욱 깊은 여운을 남겼다. 10월 12일까지 이어지는 이 전시에서 많은 이들이 저마다의 감동을 만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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